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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량 특파원 May 05. 2020

보스턴은 책의 도시라는데

나는 책을 읽지를 않네 #독서 #재미 #극기

독서.

코로나 때문에 집에 틀어박혀 있는 동안 책 읽기를 다짐하고 난 뒤 간신히 읽은 책은 달랑 2권이다. 

책을 손에 놓은 지 오래됐더니, 호흡이 긴 문장을 읽는 게 어색해지고 바로 내용이 이해되지 않으면 답답해하는 조급증까지 생겼다. 그것도 모자라 왠지 모를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한 작업으로서 내가 이렇게 된 이유를 책을 가까이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시중에 범람하는 재미난 콘텐츠와 미디어 때문으로 열심히 돌리고 있다. 

"책을 안 읽어도 그 핵심만 짚어주는 영상이 잘 나와 있는데 왜 힘들여서 책을 읽는가?"


빌 게이츠는 한 달에 14권의 책을 읽는단다. 

넷플릭스에서 방영 중인 빌 게이츠 인사이드에서 그는 시간당 150페이지를 읽어내는 속도로 책을 읽고, 좋은 기억력으로 책 내용을 거의 대부분(!) 숙지하여 저자마저도 깜짝 놀라게 한다고 한다. 참 부러운 능력이다. 

주름이 가득한 눈가를 무색게 하는 그의 빛나는 총기는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동기부여도, 문제 해결방법도, 답도 전부 책 속에서 잘 찾아내는 능력은 수십 년 간 다독해 온 자의 무기일 터, 이제라도 책을 열심히 읽다 보면 나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갑자기 희망이 부풀어 오른다. 




여기 보스턴은 책의 도시라고 알려져 있다. 솔직히 몰랐지만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이다.

어느 유명한 학자이자 칼럼니스트가 쓴 글에서는 미국의 주요 도시들마다 숭상하는 가치가 다른데 저마다 재미나고 독특한 특색이 있다고 소개한다. 


가령 샌프란시스코는 "누가 영향력을 가장 많이 끼치는지" 여부가 사람들의 화제이고, 

뉴욕은 "누가 돈이 가장 많은지" 여부가 관심사라고 한다.

샌프란시스코에 굵직한 테크 기업들이 즐비하고 스타트업이 유행이다 못해 활황이다 보니 사람들의 의식주에 파격적인 혁신을 가져다주는, '영향력' 있는 사람이 가장 위대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모양이다.

뉴욕은 부의 규모가 클수록 인정받으며 그 부를 상속받았는지, 아니면 부를 이룰 때 자수성가하였는지, 이상한 방법으로 벌었는지 이런 요소들은 따지지 않는다고 한다. 자본주의의 코어 도시다운 특색이다.


보스턴은 하버드와 MIT를 품은 대학도시답게 책으로 결딴을 낸다. 

"너는 지난 주말에(혹은 지난 휴가에) 무슨 책을 얼마나 읽었니"로 서로의 수준을 가늠한다고 한다. 

특별하고 어려우며 지적인 책을 읽은 사람일수록 모임에서 어깨가 으쓱해질 수 있다고 하니 한 발 건너서 보면 정말 특이한 인간 유형들이다(내가 책을 안 읽어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나도 한 때 책을 즐기던 시절이 있어서 독서의 즐거움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책의 도시 보스턴에서는 두꺼운 책을 들고 잔디밭이나 벤치에 걸터앉은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는 점도 특징이다. 뿐만 아니라 책을 읽을 수 있는 사회적 시설이 잘 마련되어 있는 점도 이 도시의 빼놓을 수 없는 특색이다. 

바로 깨끗하게 정비된 공공도서관들이 많다는 것인데, 최근에 이사해서 멀어졌지만 굉장히 크고 육중한 보스턴 공공도서관(Boston Public Library)이 도시 한복판(Copley Square)에 있다. 이에 더해 작은 브랜치 도서관들이 여기저기 있는 것으로 안다. 

나도 공공도서관에서 자주 여유로운 하루를 보내곤 했다. 층고가 높고 쾌적한 공공도서관(옛날 건축물이지만 굉장히 멋지다)은 공부하거나 책 읽는 사람들로 늘 붐볐다. 보스턴 사람들은 이곳에서 지적 결핍과 지적 배고픔은 물론 지적 허영심까지 채우겠다는 기세로 특이하고 재밌는 책들을 읽고 있었던 것일까?


보스턴 공공도서관의 중정에서 절친 닥터페퍼와 함께


보스턴이 책의 도시가 된 이유에는 날씨가 어둡고 침침한 날이 많아 집 안에 틀어박혀 책을 읽을 수밖에 없는 조건이 자주 형성될 수밖에 없다는 것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나와 같이 책 말고도 집에서 시각적으로 즐길 거리들이 많아졌다는 핑계를 댈 수 있으니, 몇십 년 후에도 보스턴이 여전히 책의 도시 일지는 알 수 없을 일이다. 




그러나, 여전히 독서는 왠지 내가 계속 수행해야 할 과업 같아서 책을 안 읽으면 죄책감이 마일리지처럼 쌓인다. 쓰지 않는 근육은 퇴화된다는 말처럼 책을 읽지 않다 보면 나중에는 활자를 읽어도 내용이 이전처럼 이해가 잘 되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 탓이다. 

더불어 글 못쓰는 사람이 되고 싶지도 않다. 아무래도 독서와 글쓰기 능력은 비례한다는 굳은 믿음 때문이다. 

옛날 선조들은 책을 읽는 작업을 도 닦듯이 했다고 하니, 독서 습관 들이기는 극기 훈련에 비견될 만한 듯. 

당분간 이곳에 살게 된 이상 보스턴 사람들을 흉내라도 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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