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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량 특파원 Apr 28. 2020

요리와 레고는 한 끗 차이

잘 먹고 잘 살려고 시작했는데 의외로 재능이 있다? #요리 #레고

미국으로 날아온 뒤, 태어나 처음 시작한 일 중 하나가 요리였다. 엄마가 차려주시는 것을 먹거나 밖에서 사 먹으면서 때우고 아니면 맛집을 찾아다니면서 편리하게 취하는 것이 과거의 음식이었다면, 더 이상 신경 써서 챙겨주는 이 없으니 내 몸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잘 먹어야 하는 게 현재의 음식이 되었다. 어릴 적엔 먹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해서 밥 한술을 입에 물고 오랜 시간 돌아다니다 혼나거나 밥을 굶고 나가 노는 게 습관이었다던 사람이 음식을 맛있게 먹기 위해 스스로 힘써서 노력하게 된다면 누가 봐도 신기한 일이다.   


어쨌든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긴 했어도 하다 보니 의외로 재미가 있었다. 마치 레고를 조립하는 것처럼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블로그 레시피나 영상 레시피를 참고하여 거기서 가르쳐주는 순서대로 요리를 하면 꽤 그럴듯한 맛을 냈다. 난이도 역시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자화자찬일 수 있겠지만 레시피의 정량에 매몰되지 않고도 그 음식의 맛을 종종 내게 되니 자신감이 하늘로 솟았다. 그래 이거야, 나의 재능은 여기에 있었군.


다들 한 번쯤은 경험해보지 않았던가. 설명서를 읽으면서 조그만 블록들을 맞추다 보면 몇 시간은 훌쩍 지나 있고 멋진 성이나 자동차가 그럴듯한 모습으로 눈 앞에 놓여있는 경험을. 머릿속의 복잡한 생각, 괴로운 생각을 잊기엔 레고가 적격이라며 한때 어른들의 장난감으로 상한가를 치던 때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사실 그런 면에서 레고를 따라올 장난감은 없다. 서예를 배울 때 마음속의 잡념을 없애라는 가르침을 무수하게 들었어도 어려웠던 무념무상이, 레고를 조립할 때만 되면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다. 몇 시간 끙끙대고 나면 제대로 집중해서 공부한 사람처럼 얼굴은 맑게 상기되어 있고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그런데 늦깎이에 시작한 요리 역시도 레고를 조립하는 것과 비슷한 경험과 성취감을 선사해 주었다. 아무 생각 없이 요리 레시피를 따라서 재료를 깎고 썰고 다지고 끓이고 볶다 보면 (아직 플레이팅은 훌륭하지 못하나) 얼마 간의 고요한 시간이 지나 맛이 그럴싸한 음식이 짠! 하고 등장하는 것이었다. 그로 인한 기쁨은 조립으로 완성된 해리포터 시리즈 만큼이나 컸다.  


그것 뿐인가. 엥겔지수의 끝을 달리던 시절에 맛집을 돌아다니며 돈을 쓴 혀의 경험이 때때로 의외의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허투루 노는 자, 돈을 쓰는 자는 없다. 쓸모없어 보이는 생애의 모든 경험은 언젠가 다 쓰임이 있다. 물론 즐거운 자기 합리화다). 재료 간의 조화나 맛을 상상할 때 이 경험이 위력을 발휘하는 것을 보니, 탑다운식 학습(?)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또 한 번 착각을 시작한다. 알고 보면 나는 다른 게 아니라 정말 요리에 재능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상상의 나래는 망상으로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레고 디자이너와 셰프를 선망하던 한 순간의 나도 떠오른다. 




요리와 레고는 참 많이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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