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질의 연속, 30대 후반의 영어 고군분투기
한 때는 나도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었다, 대학 입시 전까지는.
외국어 고등학교를 다니기 전부터 졸업할 때까지 소위 토종 한국인으로서 나는 내 영어 실력에 큰 자부심이 있었다. 어린 시절 외국생활을 하다 온 친구들과 비교하여 전혀 뒤지지 않는 영어 성적을 가지고 나의 정체성을 착각하던 시절이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몇년 간, 아니 현재의 직업을 얻기까지 수년 간, 영어는 시험 면제용 공인성적을 위한 점수 따기 대비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손을 놓았던 대상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처참한 한국식 영어공부의 결과로 인해 현재의 나는 "하고 싶은 말은 많으나, 할 수 있는 말은 많지 않은" 이방인이 되어 구긴 자존심과 그래도 하고야 말겠다는 열정 그 사이 어느 지점을 왔다 갔다 하는 불안정한 stranger가 되어 보스턴 공공 도서관을 헤매었다. 사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이고, 다인종 다민족 국가이기에 나 같은 동양인은 그들을 기준으로 봐도 stranger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럼에도 자신 있는 문장을 제외하고는 대화를 이어가지 못하는 나의 영어 실력 때문에, 나는 나 스스로를 보스턴의 경계 어디쯤에 놓인, 말 못 하는 작은 체구의 동양인 여자라 여기고 있었다. 원래 성격상 나의 부족한 결점을 스스로 발견하면 움츠러드는데, 이건 뭐 너무나도 명백하게 드러나 어디에 숨길 수도 없는 상황을 매일 직면하게 되니 더욱 자신감을 잃어갔다.
영어 공부를 하게 된 건 다름이 아니라 대학원에 입학하기 위함이었고, 그 방법으로서의 독학은 일종의 도전이자 오만한 자신감의 발로였다. 즉, 나는 학원이나 사교육, 여타 다른 보조 없이도 해낼 수 있다는 오해였다. 대체 왜? 아무튼 나는 늘 부모님 세대보다 내가 영어로 말은 잘한다고 생각했었고 그 결과는 누구든 예상하던 바다. 미리 생각하지 않으면 말을 못 하니, 부모님이 공들여 돈 들여 키워 놓으신 나의 영어 성적이지만 그분들의 내 나이 때 실력과 별반 다를 바가 없음을 깨닫게 된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유튜브를 열심히 보고, Ted 강의 받아쓰기를 하던 나는 토플 성적표를 받아 들고 좌절했다. 역시나 한국인답게 Speaking과 Writing이 문제였다. Reading과 Listening은 이만하면 훌륭하다 할 점수였고, Writing 점수는 어느 정도 독학으로 올릴 수가 있었다. 그러나 말하기는 쉽지 않았다. 시험에 적합하게 훈련을 받으면 나아진다는데, 나는 욕심이 있었다. 시험용 트레이닝이 없이도 나는 말하기 실력을 올려 보이겠다고, 어떤 상황에서든 유창하지는 않더라도 막힘없이 말을 해 보이겠다고. 마음속의 결기는 7막 7장(홍정욱 저) 속 주인공과 다를 바가 없었지만 BPL(보스턴 공공 도서관)의 회화 클래스에서 만난 중국인 아줌마의 마구잡이식 영어는 나를 충격에 빠뜨렸다! 어휘의 배열이 중구난방이어도 자신의 의사를 명확하게 전달해서 좌중을 빵 터뜨렸던 그 아줌마의 영어가 나의 영어에 대한 기준을 완전히 무너뜨렸던 것이다.
영어공부에는 정통의 길이란 게 없다. 지난 겨울 난 결국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학원을 등록했다. 비록 사교육의 도움을 받는다는 사실로서 나의 이상한 결기(?)는 굴복당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이 도전은 아쉽게도 사교육의 조력을 받는 쪽으로 싱겁게 끝나긴 했지만 알다시피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일은 시험 성적을 받는 일로 그치지 않는다. 중국인 아줌마의 패기와 열정을 곱씹으면서 나는 오늘도 유투브를 열고 영어 영상에 집중하기로 다짐한다. 열심히 이코노미스트지나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를 읽다보면 언젠가는 나도 멋지게 영작을 잘 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