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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량 특파원 Apr 26. 2020

직장 내 괴롭힘, 소고

-당신에게 결정적으로 문제 있는 것이 아니다 #직장내괴롭힘 #근로기준법

머나먼 이국 땅에서 직장 내 괴롭힘에 관한 이야기라니, 갑자기 사레들렸냐는 반응, 이해할 수 있다. 사실 미국에 오기 여러 해 전에 회사를 다니던 나는 업무와 관련지어 혹은 업무와 상관없이 선임, 상사로부터 꽤나 지독한 괴롭힘을 당했던 경험이 있다. 흔히들 기싸움이라고 말하지 않던가? 사실 투닥거리는 기싸움은 귀여운 애교에 지나지 않을 정도였으니, 당시 내 하소연을 들어주던 친구들은 네가 무사히 살아남아줘서 다행이라고 얘기할 정도였다. 


출근한 다음 날 자유로이 의견을 개진하는 단톡 방에서 나와 따로 개톡을 파고는 "(나대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메시지를 내게 날리고, 별 거 아니란 듯이 자기 자료를 참고하라고 했지만 알고 보니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이 준비해야 하는 세미나였다던지, 자기를 찬양하거나 본인이 낸 의견에 동조해 주지 않으면 사람들 사이를 이간질시켜 버리거나, 다른 사람에게 악감정을 심어주고 그 감정을 이용하여 사소한 트집을 내게 잡게 만든 뒤 별일 아닌 일로 시말서까지 쓰게 만든다던지, 심지어 출근 기록까지 감시하고 트집을 잡아서는 나를 출근 시간도 제대로 안 지키는 사람으로 몰아버리던 그녀는 내가 다른 부서로 좌천되자마자 다른 직원을 시켜 내 출근 시간을 감시하라고 명령(?)을 내리기도 하였다(애초부터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상하관계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그녀는 자신의 비서도 아닌 상사의 비서한테 자기 구두를 구두가게에 맡기라는 지시를 서슴지 않았고, 작은 아버지 뻘은 족히 되어 보이는 나이 많은 직원을 10번은 오라 가라 하며 본인의 전신사진이 담긴 포스터를 뽀샵하게 만들기도 하고, 심지어 아무렇지 않게 이 직장에 생계가 달린 직원들의 버릇을 고쳐주겠다며 당사자한테 보직을 운운하는 태도까지 보이곤 했었다(ex "X 과장님, 그래서야 계속 과장할 수 있겠어요?"). 말은 다해 무엇하리.. 아마 그녀의 악행에 관한 썰을 풀자면 천일야화도 모자랄 것이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인스타에서는 세상 겸손하고 너그러운 인간처럼 댓글 달고 인친 making을 하는가 보던데, 글쎄다. 솔직히 몸서리 쳐질 정도의 인격이라 생각해서 나는 사이코 패스니, 쏘시오 패스니 각종 험한 인격장애의 정의를 밤새 눈에 불을 켜며 찾아본 시기도 있었다.


어찌 된 일일까, 나보다 선임이고 짬밥도 있고 회사 내에서 입지도 있었던 그녀가 왜 나를? 당시로서는 전혀 이해가 안 가는 것 투성이었기 때문에 나는 대표 상사를 만나 부디 나는 주목받지 못하는 자리에 놔주시고 항상 주목받는 업무는 그녀에게 주라 고까지 얘기하였음에도 괴롭힘은 끝나지 않았다. 내. 가. 회. 사. 를. 나. 갈. 때. 까. 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나는 당시 그녀가 나한테 보냈던 카톡과 단톡 방의 이상한 얘기들(주로 다른 사람 흉보는 얘기였다 왜냐면 늘 남 뒷담을 하는 것이 그녀의 주특기이자 취미였기에)을 전부 캡처해서 지금까지 보관 중이긴 하다. 지금도 여전히 본인이 돋보이는 데 열중이고, 미디어 출현도 서슴지 않는 그 인간(이라고 하기에도 아까움)에 대해서 언젠가는 그 어떤 것이라도 밝히게 될 날이 오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예전에 사람들은 직장 내 괴롭힘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그냥 네가 참아. 설마 그럴 리가 있겠어? 한데 어인 일인지 요즘 사람들은 참지 않는 모양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람들이 변한 게 아니라 시대가 변한 것 같다. 그리고 생각했던 것보다 광범위하게 이상한 사람들이 많아진 것도 같고(스트레스와 분노지수가 높은 사람들이 많아졌다), 아무래도 학교폭력 가해자들의 행태에 대한 고발과 유명인들의 과거가 맞물려 "약했던 피해자"들이 더 이상 참지 않고 폭로하는 시대가 된 것도 같다. 인터넷과 대중 민주주의라는 것은 때로 이러한 선한 자정작용에 기여한다.   


나 역시 수도 없이 이것을 어찌할까 고민했었다. 어찌하긴 뭘 어찌해, 친한 선배 조차도 나더러 어디 가서 처맞고 와서는 울기나 한다고 위로와 꾸지람이 뒤섞인 소리나 했으니, 참 답답했다. 누군가는 과거를 잊어버리고 행복하게 사는 길만이 너를 위한 길이라고 얘기하는데,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전혀 와 닿지 않는 모르시는 말씀! 내가 제일 세상에서 듣기 싫어하는 말이 똑같이 싸우면 똑같은 사람이 된다는 말, 둘 다 잘못했어, 이다. 가만히 있는 사람을 먼저 건드린 사람에게 그 잘못에 대한 사적, 공적 징벌을 내리는 것으로 왜 나는 그 저렴한 인간과 동급이 된다는 말인가? 공평한 척하면서 사실은 타인의 문제에 무관심하고 싶은 자들의 위로이니(물론 나의 지인들은 그런 피상적인 위로를 넘어선 진정한 위로를 해주었다. 까치가 은혜를 보답하는 심정으로 아직까지도 그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언젠가는 꼭 갚을 거라 다짐하면서), 이 글을 읽는 비슷한 처지의 여러분은 절대 그런 말에 흔들리거나 마음 약해지면 아니 되신다.


소제목에서도 말했다시피, 이 상황의 결정적 문제는 당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열등감인지 알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혀 직위를 남용하고 무조건 이겨야만 직성이 풀리고 자신만이 돋보이고 잘나야 하는, 이상한 몇몇의 인격들이 온 세상을 미꾸라지처럼 흐리고 있는 것이다. 


직장 내 괴롭힘은 이제 법제화된 금지 행위가 되었다. 이 법이 도입되어 시행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조금이라도 나와 같이 위로받은 사람이 있다면 앞으로가 더 중요함을 명심하자. 사람은 자고로 위기 상황에 대처할 때 흥분하지 말고 침착하고 치밀해야 한다(는 나자신에게도 무조건 적용된다).


근로기준법 제76조의 2와 제76조의 3에서는 행위 금지와 규정 위반 시의 조치가 규정되어 있다. 회사 내에서 누구든 다른 이에게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업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해서는 안되고, 만일 이러한 일을 겪은 피해 당사자가 회사에 이를 알리는 경우 회사는 이를 이유로 해고하는 등의 부당한 행위를 해서는 안되며, 가해자를 징계하는 등의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얼핏 보면, 그래도 들어갈 건 얼추 들어갔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 법이 사실상 보호하는 것은 피해 당사자가 "해고되지 않는 것" 뿐이고 회사가 가해자를 징계하지 않았을 경우에 제재를 가하는(피해 당사자가 제일 원하는 것이 바로 이것인데) 벌칙 규정은 없다. 매우 아쉽다.


그러나 이 근거법이 신설됨으로써 많은 회사들이 취업규칙 내지 근로 지침에 해당 내용을 넣어 개정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 전반적으로 이런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수많은 갑질과 못된 짓을 하는 회사 내 사람들의 입지는 결과적으로 좁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무시할 수가 없다. 


회사의 조치와 저 법규정에 기대서는 것만으로 훌륭한 대처를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필자와 같이 카톡을 캡처하든가, 아니면 부당한 지시가 담긴 메일을 보관하든가, 회사 내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녹음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녹음기를 들고 다니는 방법 등이 있지만 본인이 많이 피곤하다. 그래도 해내고야 말겠다고? 나는 솔직히 이 세상의 모든 피해자와 약자들이 조금 더 당돌하고 구체적으로 강해졌으면 한다. 누군가에게 의미 없이 엿을 줬던 인간들이 이 때문에 엿을 되받는 케이스들이 쌓이고 쌓인다면 결과적으로 눈치 보고 조심하는 문화가 생기지 않을까 싶어서. 하기사 교활하고 교묘한 인간들은 이 또한 빠져나가려고 노력하겠지만 결국은 들통나게 되어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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