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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만언니 Jun 02. 2023

참을 수 없는 어느 부부의 이중성에 대하여

대통령부부와 이태원유가족의 극적 콘트라스트

휴일 아침 동물 농장 보다가 날벼락을 맞은 건 나뿐만이 아닌가 보다. SNS는 실시간으로 키워드로 #동물농장윤석렬 이 잡혔고, 같은 시각 동물농장 게시판도 난리가 났다. 뭐 이들 부부의 관종력은 어제오늘 얘기도 아니다. 하지만 매번 새롭게 놀라긴 한다. 유퀴즈도 대구 서문시장 방문도 야구 시구도 뭐 그땐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말이다. 희한하게 동물농장은 달랐다.


이건 마치 휴일에 맘 편히 가드 내리고 쉬고 있는데 난데없이 티브이에서 누가 걸어 나와 머리가 백팔십도로 돌아가는 싸대기를 연속으로 때리는 거 같은 기분이었달까?


정말이지 그들의 얼굴을 티브이로 본 순간 그것도 아무런 예고 없이 동물농장에서 본 순간 나는 쾌. 불쾌의 차원이 아니라 귀밑까지 붉어지는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꼈다.

당시에는 그런 감정이 왜 들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렇지 않은가. 나 역시 유기견을 두 마리나 키우고 있다. 펫샵 소비의 패혜에 대해 말하라면 숨도 안 쉬고 일박이일 말할 수 있다. 만약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 “라는 말을 이완용이 무덤에서 기어 나와해도 일단은 고맙다고 할 것 같다. 그런데 대통령 부부가 동물농장에 나와 유기견을 입양하라고 하는데 왜 싫을까. 왜 이렇게까지 싫을까.

그건 방송 바로 며칠 전에 내가 이태원 참사 피해자 유가족을우연히 만났기 때문이었다. 두 개의 사건이 공교롭게 며칠 안 밖으로 일어났고, 두 개의 경험이 주는 그 강렬한 흑과 백의 대비를 비통함과 찬란함의 간극을 나는 도저히 견디기 어려웠던 것이었다.


지난 5월 24일 나는 정말 지독히도 우연히 서울 경찰청 앞을 지나갔다. 그때 경찰청 정문 앞에 누가 아래위로 새하얀 상복을 입고 앉아 있는 게 아닌가. 그 앞을 지나가며 대체 누가 요즘 같은 날씨에 긴소매 옷을 입고 저러고 있나 힐끗 봤더니, 세상에 이태원 참사 피해자 유가족이었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당장 그 앞에 가방을 내팽개치고 앉아 하도 울어 눈도 붓고 목소리도 제대로 안 나온다는 소영 씨 어머님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어머님 저도 참사 피해자예요. 억울한 거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딴지일보와 오마이 뉴스에 글 씁니다. 저한테 말씀하세요. 제가 써 드릴게요.

어머님은 가까스로 울음을 참아가며 이야기하셨다. 집이 양주인데 경찰들이 딸아이를 용인으로 보냈다고. 우리 애 주머니에 주민등록증도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얘기 들어보니 거기서 살아 나온 사람들도 많은데 우리 애는 죽었더라고, 나는 우리 딸이 너무 보고 싶은데 이제 그런 딸을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다고 나한테 다들 어머니라고 하는데 나는 더 이상 누구의 엄마도 아니라고 집에 있으면 애가 언제라도 현관문 열고 걸어 들어올 거 같고 애가 너무 보고 싶어 미쳐 버릴 것 같다고. 그 얘기 들으며 나 역시 마주 앉아 한참 울었다.


어머니가 나를 보며 말했다. ”저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안 돼요? 사람들이 여기서 이러면 안 된데요 “ 내가 말했다. “아니요. 돼요.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그러셔도 돼요” 그런데 잠시 후 누군가 우리에게 우산으로 그늘을 만들어 준다. 고개를 들어 확인하니 어머님 여기서 이러고 계신다는 소식 듣고 달려왔다는 이지한 군 부모님이었다. 지한 군 어머님께서는 우리에게 생수를 따서 건네며  “날 더운데 이러고 있으면 병나요. 모시러 왔어요” 했다. 그러더니 어머님 내게 모시러 갈 거니까 안심하고 볼일 뵈라 하셨다.


지한 어머님의 그 말씀에 마음이 놓여 나는 옆 건물에 가 일을 봤다. 일을 다 보고 차를 찾아 나오며 혹시나 싶어 경찰청 앞으로 다시 핸들을 꺾어 봤다. 그랬더니 왠걸 이번엔 지한 군 어머님까지 합세해서 죽은 아이들 사진을 무릎에 두고 턱을 고인채 먼데를 보며 앉아 계셨다.


그리고 그때 그 길을 돌아 나오며 나는 깊은 절망을 느꼈다. 어떻게 해도 세상이 몰라주는 것 같은 마음. 아무도 우리 얘기를 들어주는 것 같지 않은 지독한 절망 말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한동안 잊고 있던 트라우마 증상이 돼 살아남을 느꼈다. 매 순간 이유 없이 심장이 두근거리고 초조했다. 잠들기 전엔 한동안 먹지 않았던 정신과 약을 찾아 입에 털어 넣어야 했다. 그렇다. 나는 또다시 이들의 고통에 압도됐다.


삼풍 사고 이후 28년이나 지났지만 나는 이런 일이 생기면 나는 또 다시 그때로 휩쓸려 간다. 2014년 팽목항에서 세월호를 봤을 때도 그랬다. 진도 체육관에서 자식을 잃고 짐승의 울음소리를 내던 엄마들을 본 날을 나는 아직 잊지 못한다.

2023년 5월 소영이 엄마와 지한이 엄마의 슬픔이 또 고스란히 내 가슴에 와 박혔다. 문득문득 이들이 얼굴이 떠 올렀다. 손을 씻어도 운전을 해도 자려고 불을 끄고 누워도 가족을 잃은 이들의 텅 빈 눈동자가 따라온다. 너무 울어 물고기처럼 투명해져 버린 사람들의 눈동자 그런 게 자꾸 생각난다.

그런데 말이다. 이 일이 있고 얼마 안 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동물농장에서 환하게 웃는 대통령 부부를 보게 된 것이었다. 그뿐인가 방송에서 대통령은 개들을 위해 몸소 간식을 직접 만들었고 영부인은 자신의 사랑하는 개를 두 팔 벌려 온몸으로 끌어안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들은 매 순간 사랑하는 반려견들을 원 없이 품고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 순간이었다. 그 둘 사이의 극명한 대비를 봤고, 그 순간 참을 수 없는 분노로 얼굴까지 시뻘겋게 타올랐던 것이었다. 지난겨울 영문도 모르고 딸아이를 잃은 엄마는 집에서는 잠도 못 자고 밥도 먹지 못하고 스무 해 남짓 살다 간 아이만 생각한다는데 이 사람들은 아직도 자식들 장례를 제대로 치르지 못했는데 여전히 죽은 애들 이야기를 하며 얼마나 착했는지 얼마나 예뻤는지 속눈썹까지 눈물을 매달고 말하는데


싸늘하게 식은 주검이라도 좋으니 딸아이를 한 번 안아 봤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그렇게 허망하게 자식을 잃었다는데 아무도 이 일에 대해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말해주지 않는다면서 통곡하는데 이 일에 대해 책임이 있는 국가 통치권자는 단 한 번의 공식적인 사과도 없이 넘어가고 정부와 여당은 행정공백으로 벌어진 그 끔찍한 참사를 그저 불행한 몇몇이 당한 대형 교통사고인 양 처리하려고 하고 있고, 대통령은 이 일과 자신들은 전혀 상관없다는 듯 티브이에 나와 자신들이 키우는 개를 연신 쓰다듬으며 행복해하는 것이었다.


이 두 사건을 교차로 겪으며 나는 고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님의 글을 떠올렸다.


내가 전기고문을 당하다 쓰러진 적이 있습니다. 간신히 정신이 들었을 때입니다. 취조관이 의무실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의료 처치를 요청하려나 보다'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게 아니었습니다. 아침에 우리 집 애 감기약 부탁했는데 그걸 퇴근하기 전에 내 책상에 갖다 놓으라는 전화였어요. '남의 아들에 대한 전기고문과 자기 딸의 감기약'. 그 극적 대비는 차라리 슬픈 것이었습니다. _신영복 <담론> 중에서


다른 글에서 교수님은 또 말했다. 감옥에서 비참했던 순간은 짐승처럼 매 맞던 순간들이 아니었다고. 간수들이 시켜 먹는 짜장면 냄새에 침이 고였을 때였다고 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권력은 어쩌면 이토록 쉽게 남을 간단하게 지옥으로 이끌고 가는지 모르겠다.


바라건대 지금 당신들이 하는 이것이 쇼라면 이제 그만하셨으면 좋겠다. 만약 당신들이 하는 짓이 돌아가신 신영복 선생님이 말씀하신 ‘딸아이의 감기약’ 같은 것이라면 충분히 고통스러우니 이제 그만하시라고 말이다.


나는 아마도 이날의 충격을 죽는 날까지 기억할 것이다. 예년에 비해 유난히 덥고 습도도 높았던 초여름 어느 날. 이분들의 땀에 젖은 이마에 붙어있던 머리카락들 그런 것들까지 전부다. 이해되지 않는 생의 어떤 일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잊을 수도 지울 수도 없다는 걸 알기에. 몇몇 사람들은 아무리 도망치려 해도 번번이 비슷한 일을 보면 그때 그 장소로 돌아가기 때문에.


그리고 이런 일은 도저히 잊어서도 안 되고 잊을 수도 없기 때문에. 이 글을 쓰는 것이다. 오래도록 이 지독한 모멸의 감정을 잊지 않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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