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만언니 Nov 08. 2023

이태원 참사 추모제 가서 국힘 화환조진썰

분노조절이 안 되는 요즘

이태원 참사 추모제가 있었던 10.29일 5시 시청 앞 광장에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갔다. (원래 목적은 이러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내가 참사 추모제에서 아주 약간의 소란을 피웠는데 그것은 의도치 않은 일이었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이 일로 관종이 될 생각 없다. 왜냐하면 어차피 이 바닥에서 이미 나는 (산만 언니) 소문난 관종이다. 더 이상의 관심은 필요 없다.

뭐 내가 팔이 피플이라면 또 몰라 정말이지 지금 시점에서 내게 유명세는 필요 없다. 책 내고 방송탄 후 오히려 어쭙잖게 동네에서만 알려져 귀찮은 일만 생겼고요. 그래서 요즘 나는 최대한의 “나댐” 없이 조용히 산야에 묻혀 살고 있다. (웃지 마 이게 최선이니까)  

시작은 좋았다. 시청역까지 지하철로 가면서 존경해 마지않는 최재천 교수님의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라는 책을 읽으며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꼼꼼히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래 본능대로 행동하면 짐승이고, 이웃을 생각하며 본능을 억제할 수 있으면 인간이지 끄덕끄덕 하며 갔다. 그 후 한 시간도 채 되기 전 마치 분노한 서열 34위 침팬지처럼 폭주할 줄은 꿈에도 모르고


따흑

역시 생각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이지, 생각대로 되면 그게 생각대로 T , 암튼 추모제 못 오신 분들을 위해 추모제 분위기를 간략하게 먼저 소개하겠다.

경찰 추산은 또 한 오백 명 이겠지만 주최 측 추산으로는 2만이 모인 행사였다. 나는 조금 서둘러 오후 4시 조금 넘겨 갔는데 이미 수많은 인파로 시청 앞 광장이 북적였다. 무대에서는 한영애 밴드가 리허설을 하며 마이크 성능과 음향을 체크했다. 이날 한영애 밴드가 부를 노래는 “조율”이었다. 그의 파워풀한 목소리가 광장을 가득 메웠다.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 주세요 “ 노래 가사를 곱씹으며 요즘 같은 세상에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해, 근래의 대한민국에 무척 어울리는 가사라고 생각했다.

객석은 앞 줄부터 유가족과 국내외 내빈들로 채워졌다. 하지만 행사 끝까지 비워둔 대통령 자리는 끝내 채워지지 않았다. 모두가 예상한 대로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행사장에 불참했다. 이유는 야당이 주관하는 정치 행사라고 했는데. 이를 두고 진보당 윤희숙 대표가 일침을 가했다. 야당이 주최해서 정치집회라고 하면 추모제를 여당이 주최하면 될 것 아니냐고, 하지만 저짝은 그럴 생각이 없었나 보다. 당대표도 아니 오고 혁신위원장도 개인 자격 방문임을 굳이 굳이 밝혔으니까.

이로써 대한민국은 명실상부 참사 공화국이 됐다. 다리, 백화점, 배도 모자라, 사람이 사람에게 깔려 죽었으니, 이 보다 더한 참사 컬렉팅이 또 있을까? 그뿐인가 이번 정부만 들어서죽지 않았어도 될 사람들이 얼마나 죽었던가 비가 오면 비가 온다고 죽어 비 왔다고 수해 복구하러 나간 해병대원까지 죽어. 게다가 외신들도 놀랄 만큼 정부는 참사 대처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그러니 일부 시민들은 오히려 희생자들을 나무란다. 그러게 거길 왜 가셨어요 하는 비아냥과 함께.

그뿐인가 참사 추모를 일부 정치인들은 정쟁의 도구로 쓴다. 이태원 참사 얘기만 나오면 정부 여당은 막무가내로 참사팔이 하지 말라고 선을 긋고 나온다. 아무리 봐도 추모 행렬에는 그 어떤 “다름”도 없던데 어째서 이 일을 자꾸 이념 장사라고 몰고 가는지.... 아 진짜 그렇게 뭘 몰고 가고 싶으시거든 너구리나 한 마리 몰고 가시지... ( 틈새 개그 미안합니다)

현장분위기는 비통하고 침울했다. 몇몇은 눈가를 훔쳤고 몇몇은 이마를 찌푸리며 눈물을 참았다. 꽃다운 청춘의 면면을 보자니 울고 싶은 감정이 치받쳐 주저앉아 통곡을 하고 시청 건물을 향해 십 원짜리 욕을 늘어놓고 싶었지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더 이상의 관종 짓은 하지 않기로 했기에 이때까지만 해도 꾹꾹 참았다.  

처음 세월호 팔찌를 손에 걸며 진상규명이 되고 책임자가 처벌받을 때까지 풀지 않으리라 했는데 이 팔찌를 십 년 가까이하고 다니게 될 줄 몰랐고, 그 위에 이태원 참사 팔찌를 얹을 줄은 더 몰랐다. 새로 받은 팔찌를 보며 이 정권 십 년만 했다가는 아프리카 원주민처럼 팔찌를 주렁주렁 달고 다녀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뇌피셜도 살짝 굴려 보고.

영정사진 안에서 최근 인터뷰한 159번 희생자 재현이를 발견하고 어찌나 속이 상하고 마음이 아프던지. 나도 모르게 “얘야 네가 거기 왜 있니, 일어나 이모랑 같이 가족들 기다리는 집으로 가자”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더라. 내 심정도 이런데 유가족 심정 말해 뭐 할까.

최근 창비에서 이태원 참사기록집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 “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 책의 추천사를 쓴 은유 작가는 이태원 참사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왜 그런데를 갔냐고 물을 게 아니라 왜 돌아오지 못했느냐고 해야 한다고. 청춘은 죄가 없다고. 그것을 지켜주지 못한 것이 우리 공동체의 무능이라고. 작가의 말을 곱씹었다. 맞지. 거기에 간 게 왜 잘못이야 돌아오지 못한 게 문제지.

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나 역시 이 일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솔직히 여태 우리 서울에서 대규모 집회나 행사 하루 이틀 했냐고, 그뿐인가 매일 아침 지하철만 타 봐도 안다. 저 위에서 누구 하나 넘어지면 그대로 골로 가게 생긴 급경사 에스컬레이터 서울 시내에만 한 두 개냐고 우린 매일 그런 데서 모이고 그런 데서 놀고 그런 데서 일하고 있다.


그런데 왜 그날은 어떻게 그런 끔찍한 일이 생겼냐는 거다. 그렇다면 일이 그 지경이 될 때까지 누군가는 뭔가를 잘못했다는 건데 (평소에 하던 걸 안 했거나, 오히려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했거나) 그걸 왜 못 밝혀? 그리고 이 일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아? 왜 그러는 건데? 너희도 그거야? 만화 송곳의 한 장면처럼 우리한테는 그래도 되니까?

기본소득당 용혜인 상임대표는 이날 추도사애서 “이태원 참사는 참사가 아니라 사고다. 희생자가 아니라 사망자라고 고쳐 부르라 지시한 당시 중대본 한덕수 국무총리,  제일 먼저 책임을 통감하고 사퇴했어야 할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참사 대응 관련해서 계속해서 말을 바꾸던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한 사람이라도 살릴 고민을 했어야 할 그날 밤 어떻게 책임을 모면할지 상의했던 윤희근 경찰청장이 모두 여전히 그대로 일 줄이야. “라고 했다. 그러게요. 어쩜 그럴 수가 있을까요? 나 역시 따져 묻고 싶다.

그렇게 비통한 심정이 되어 헌화를 하고 돌아서 나오는데 눈앞에 보이는 익숙한 근조 화환들 이재명 대표와 홍익표 원내대표. 그래 끄덕끄덕, 음?  어?????? 그런데 이거 모지??????????????

김기현? 헐 김기현?????? 민주당에 이태원 팔이 하지 말라고 소리치던 김기현???? 그 김기현???

김기현??? 안 그래도 지난해 내가 김기현 국민의 힘대표가 사고 직후 YTN과의 인터뷰에서 (당시엔 당권 도전자였음) 이태원 참사를 대통령이 왜 사과해야 하느냐, 막말로 대통령이 거길 가라고 했냐, 등을 밀었냐. 했던 걸 똑똑히 기억하는데, 그런 사람이 여기가 어디라고 이딴 걸 보내? 장난해? 근데 진짜 또 이게 내 환장포인트인 게 분명히 내가 이 사람이 방송에서 이렇게 떠드는 걸 봤는데 이에 관한 기사 쓸려고 관련 영상을 찾는데 별의별 수를 다 써도 그 영상을 못 찾겠는 거라. 그래서 이걸 어디 가서 말도 못 하고 속만 태웠는데 (정말 환각이나 환청이었을까?)

아무튼 이태원 참사 추모 공간에서 김기현이라는 이름 석자를 본 순간, 그만 나는 이성을 잃고 하늘 높이 냅다 뛰어올라(아님) 근조 화환을 향해 *을용타를 내지르고 말았다. (*을용타: 축덕들 사이에서 유명한 장면인데, 2002에서 열린 동아시안컵 대회 도중 상대의 태클에 화난 이을용이 중국 선수 리이의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폭행해 레드카드를 받아 퇴장당한 일을 말한다.)

정말 누가 옆에서 말릴 새도 없어 근조 화환을 확 뚜가 팼다는 얘기다. (아님 밀쳤음) 내가 그렇게 화환을 바닥에 패대기 치니 근처에 계시던 행사 관계자 분들이 황급히 달려와 넘어진 화환을 다시 세웠고 그러는 사이 나도 겨우 정신이 돌아와. 그래 저건 내가 받은 꽃이 아니지 유가족들이 받은 꽃이지 그러니 내가 넘어 트리면 안 되지 하고 살짝 반성을 하고 돌아서려는데, 갑자기 주변에 계시던 분들이 우루르 몰려들더니 이 xx 것이 왜 여기 있느냐면서 나머지 화환을 마저 부수고 김기현이라고 적힌 저 팻말을 부러트리고 발로 밟고 하시는 것......

순간 이 근조화환이 나만 불편했던 게 아니구나 하는 안도의 감정이 일었는데, 동시에 일이 좀 커진 것 같다는 불안감도 엄습해 왔다. 왜냐면 도처에 여러 매체의 카메라들이 돌고 있었기 때문, 그래서 나는 할 수 없이 여태 그렇게 살아왔던 것처럼 화환을 부순 게 옳다 그르다 언성을 높이고 싸우는 분들을 뒤로하고 조심스럽고 비겁하게 자리를 빠져나왔다.  

이 일 이후로 도저히 자리에 정좌하고 앉아 추모제를 볼 자신이 없어, 예정에 없이 발길을 돌려 집에 왔고, 추모제는 유튜브로 라이브로 봤다. 다행히 많은 분들이 함께 해 주셔서 나 하나 빠진 것은 티가 안 났지만,

사실 그날 내키는 대로 해 버린 후에 계속 죄 책감에 시달렸다. 곤충도 아니고 인간인 내가 어째서 생각을 안 했을까 하는 자책도 하며 그런데 말이다. 어쩐 일인지 그날 밤엔 평소 먹는 신경안정제도 없이 길고 편안한 잠을 잤다. 꿈도 안 꾸고 말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내 의식은 그 행동을 죄라고 인식했는데 무의식은 내가 한 행동을 옳은 반응이라고 판단한 게 아닐까???

물론 반성한다. 나는 그날 잘못했다. 잘못했어도 보통 잘못한 게 아니다. 아무리 화가 나도 그러면 안 됐다. 왜냐하면 나는 추모제의 손님이었고 그 화환을 받은 건 유가족이다. 남의 물건을 허락받지 않고 파손 한 건 잘못한 일이다. 이 점은 여전히 깊이 반성한다. 앞으로는 두 번 다시 이런 짓은 하지 않을 거다. 하여 이 자리를 빌려 이태원 참사 유가족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 말씀 올린다. 그날 피운 소란에 대해서는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으니 부디 용서 바란다고, 혹여 이 일로 마음 상한 분 계시거든 거듭거듭 죄송하다고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


하지만 김기현 당신 당신한테는 여전히 사과 못해. 혹시 모르지, 만약 당신이 지금이라도 이태원 참사는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국가의 잘못이라고 확실히 해주면 몰라. 그럼 말이야 그땐 내가 우리 집에서(강서구) 국민의 힘 당사까지 삼보일배하며 참회의 서를 바치리.  


그럼 이만

매거진의 이전글 이태원참사 1주기_159번째 희생자 재현이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