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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만언니 Apr 04. 2024

18화_진짜 가족을 찾은 배달이

아산택배즈 입양완료

이제 더는 개를 구조하지 못하겠다. 옆에서 구경할 땐 몰랐는데 직접 해 보니 이거 정말 보통 일이 아니다. 만약 내가 데려온 게 살아 숨 쉬는 게 아니라 그저 물건이라면 어디 잠깐 보관했다 여유 있을 때 어떻게 좀 해 보겠는데 ‘개’라는 게 어디 그런가. 그야말로 미칠 노릇이었다.


게다가 나는 만고 태평한 낙관주의자가 아니다. 어떤 일을 할 때마다 항상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고 행동하는 비관론자다. 그도 그럴게 내가 여태 발붙여 온 세상은 비정하고 혹독했다. 미래에 대한 어설픈 희망과 막연한 기대는 훗날 오히려 독이 되곤 했다. 차라리 미리 좌절하고 그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하며 사는 게 편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일이 “예측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스개 소리로 주변 사람들한테 나는 혹여나 ”당첨될지 몰라 여태 로또 한 장을 사 본 적 없는 사람이다“ 할 정도다. 그 정도로 나는 생의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이다.


한데 이런 내가 개를 키우고 나서는 매일 아침 예측 불가능한 일들과 만나야 했다. ‘개’라는 살아 움직이는 생명은 내가 여태 익숙하게 만나 온 것들과 달랐다. 도대체가 모든 게 내 맘 같지 않았다. 남들은 이렇게 하면 된다던데 책에서는 그렇게 하면 된다던데, 어째 나는 남들 하는 것처럼 해도 뭐든 안 됐다. 이렇게 ‘개’라는 세계는 완벽한 미지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세월의 힘을 빌어 이 또한 최근 안정세에 접어들었다. 내 개들 그러니까 해탈이 와 복주의 행동 패턴도 여러 해를 거듭하자.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범위로 행동반경에 대한 데이터가 수집되었고 그제야 마음이 놓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와중에 임보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 말해 뭐 해 백날 천날 남 모르게 시름시름 앓았다. 게다가 파양이라니. 이를 어쩌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나는 노상 속을 끓였다. 물론 감사하게도 돌아온 배달이를 하숙집에서 사랑으로 정성껏 돌 봐줬지만. 내게 하숙은 어디까지나 하숙이었다.


맘 속으로는 그 집에 영영 눌러앉길 아니 바랬다 할 수 없지만, 다견도 막상 경험해 보니 선뜻 남에게 권할 수 없는 문제였다. 어쩐 일인지 개는 “한 마리나 두 마리나”가 아니었다. 하나에서 둘이 되는 순간 개들은 넷의 몫을 하는 것 같았다. (물론 내 경우엔 대형견 두 마리니 더 그렇겠지만)


그러니 적극적으로 둘째로 배달이를 앉히라고 하숙집에 권하지도 못하고 혼자 조용히 그 집에 엉덩이 밀어 넣길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요즘 경기가 안 좋으니 개들도 매일 새롭게 많이 버려졌다. ‘포인핸드’에 (유기견입양어플) 들어가 상황을 보면 도무지 우리 배달이 차례는 안 올 것 같았다. 셀 수 없이 많은 개들이 누가 봐도 배달이 보다 어리고 예쁜 개들이 가족을 구한다고 새로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배달이는 입양 황금기인 퍼피 시절을 파양 소동으로 흘려보냈다. 그러니 더욱 더 초조하고 절박할 수밖에


이런 내 맘과는 별개로 구조 임보자의 단톡방에서는 여전히 맘씨 좋은 누나들이 매일같이 배달이 사진을 공유하며 다 같이 현미경을 꺼내 들고 배달이의 귀여움을 새로 발견해 냈다. 예를 들면 배달이의 불가사리 닮은 발가락 같은 것. 하지만 나는 이삼십 대 누나들과 다르게  심드렁했다. 아마도 세상의 단맛 쓴맛 다 본 터라 그러리라, 솔직히 개 발가락이 남들보다 아주 약간 더 벌어지는 게 뭐가 대수라고 이토록 환호일까 싶었다.


한데 이들의 따뜻한 시선과 환한 마음 덕분이었을까, 배달이가 하숙집으로 돌아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느닷없이 배달이를 입양하겠다는 한 가족이 나타났다. 뭐라고? 처음에 이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단톡방의 다른 친구들도 뜻밖의 뉴스에 다소 예민하게 반응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게 사람 마음이라는 걸 배달이 배송이를 통해 또 한 번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배달이는 꽤 좋은 가족에게 입양 됐다. 배달이라는 이름을 부를 때마다 박스에 배달이가 버려진 게 생각 나 슬퍼 배달이의 이름을 ‘달이’라고 바꿔 부르겠다고 직접 손 편지를 써 준 누나가 사는 부산의 한 4인 가족이었다. 4인 가족이라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가족 구성원이란 말인가. 4인 가족이 주는 안정감이라니.(입양 가족이 고마워 별 말이 다 나온다)


이번 면접은 배달이 하숙집 누나가 직접 나섰다. 지난번 파양 소동 이후 하숙집 누나 역시 전에는 뭐가 좀 찜찜했다고 하던 차였다. 하나하나 말로 다 설명하긴 그런데 어찌 그 집에서 애를 데려갈 때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최소 세 번은 면접을 봐야겠다고 했다. 이 얘길 들으며 속으로 나는 이 누나가 결국 배달이를 키우겠구나 했다. 그런데 지금 배달이네 가족을 만나고 온 날 바로 하숙집 누나가 “이 집이라면 배달이를 보내도 좋을 것 같아요” 했다. 누나 말을 빌리니, 그만큼 신뢰가 가는 집이라고 했다. 그렇게 배달이는 내 걱정이 무색할 만큼 빠른 시간 안에 방을 뺐다. 물론 <평생 반품 불가 조건>으로 말이다.


이로서 정초부터 시작됐던 #아산택배즈가족 찾기 프로젝트는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됐다. 여기까지 온 여정은 말 그대로 한 편의 드라마였다. 아마 혼자였다면 상상도 못 했으리라. 전국에서 여럿이 뜻을 모아 귀하고 값진 생명을 살렸다. 감회가 남 달랐다.


이 일을 통해 나는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이 전부 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평소에는 아무런 힘도 없는 마음 따위, 불구대천의 원수 뺨에 시원하게 물 한잔 못 끼얹는 마음 따위 했는데 아무래도 아니었다. 사람의 일은 시작도 끝도 오로지 마음이었다. 버려진 개를 가엾이 여긴 그 착한 마음. 무려 전국에 퍼진 놀라운 이웃들의 조건 없는 선의. 연대.  


참사 피해자라면 누구나 그렇듯, 아니 2014년 봄의 대한민국을 지나온 이라면 전부 그렇듯. 해마다 4월이면 나는 가만히 있어도 자꾸만 가슴이 미어졌다. 어느 날은 이러면 안 되는데 이렇게 두 손 놓고 있으면 안 되는데 밖에 나가 고함이라도 질러야 하는 거 아닐까 하다가 또 어느 날은 아니야. 그런다고 뭐가 달라져하며 도로 가 주저앉기를 반복했다.


그날 이후로 해마다 벚꽃이 피는 봄은 누가 보태주지 않아도 아픈 날들의 연속이었다. 게다가 올해는 특별히 세월호 10주기가 되는 해다. 그래서 나 역시 연초부터 마음을 단단히 먹고 안산을 줄기차게 드나들며 유가족과 생존자 부모 인터뷰를 무려 4건이나 땄다. 나도 뭔가 하나 하자 싶어 열심히 땅으로 깊이 꺼지려는 마음을 억지로 붙잡아 일으켜 사람들을 쫓아다녔다. 그런데 글쎄 딸을 먼저 보낸 어느 엄마의 담담한 말을 들은 후, 그러니까 딸아이를 찾고 보니 열 손가락이 밑이 전부 새카맣라는 말 그 문장을 만나고는 그만 덜컥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신세가 됐다.  


그런데 이 와중에 배달이가 이런 기적을 보여준거다. 마치  하늘에서 보아라. 세상엔 나쁜 마음만 있는 게 아니지 않으냐 하는 것 같은 느낌으로 말이다.덕분에 다시 자세를 바르게 고쳐 앉아 펜을 들 힘이 조금은 생겼다.

앞으로 사는 일에 지치고. 마음이 힘들 때마다. 아이들 입양 계정에 가 볼 생각이다. 힘을 모아 함께 만든 이 놀라운 이야기를 오래오래 아껴 읽을 참이다.


그러니 어찌 감사하고 또 감사하지 않으리. 다시 한번 버려진 개들을 외면하지 않고 마음 다해 응원해 준 많은 분들께 감사 인사 올린다. 사는 내내 잊지 않겠다.  


배달아 배송아. 오래도록 가족들과 행복하고 즐거운 날들 보내길 바란다.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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