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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만언니 Apr 04. 2024

19화_진짜 가족을 찾은 배달이

아산택배즈 입양완료

배달이 배송이를 입양 보내고 보니 앞으로 두 번 다시 개를 구조하지 못할 것 같다. 이 일이 옆에서 볼 땐 몰랐는데 막상 직접 관여해 보니 정말이지 보통 일이 아니다. 개를 키우고 보살피는 일도 일인데 여기에 이렇게 예쁘고 귀여운 생명이 가족을 찾고 있다고 홍보도 해야 한다. 천수관음만큼 손이 많으면 할 수 있겠지만 이 두 손으로 하기엔 버거운 일이다. 다행히 나는 운이 좋아 여럿의 도움으로 녀석들을 둘 다 무사히 입양 보냈지만 또다시 이런 기적을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하면 현실적으로 어려운 얘기지 싶다.


게다가 나는 살아온 이력 때문인지 대단히 현실적이고 비관적인 사람이다. 말로는 낙관을 이야기하지만 내 일만큼은 항상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처리한다. 그래야 언제나 덜 실망하고 덜 좌절할 수 있었다. 미래에 대한 어설픈 희망과 기대 낭만 같은 건 내게 없다. 세상 논리는 제법 비정하다. 그러므로 질색팔색하는 일이 “예측 불가능성”이다. 이런 나를 잘 모르는 친구나 애인이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하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우스개 소리로 주변 사람한테 나는 혹시라도 진짜 ”당첨될지 몰라 여태 로또 한 장을 사 본 적 없는 사람이다 “ 고 할 정도다.


한데 말이다. 이런 내가 개를 키우고 나서는 매일같이 예측 불가능성과 맞닥뜨려야 했다. ‘개’라는 생명은 살아 움직여 그런가 여태 익숙했던 것들과 모든 게 완벽하게 달랐다. 도대체가 이놈의 개라는 동물은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개는 마치 아무리 입력을 해도 정보 값이 다르게 출력되는 고장 난 컴퓨터처럼 굴었다. 견디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 또한 세월의 힘일까. 인간이 원래 적응의 동물이어 그럴까 이 또한 얼추 익숙해졌다. 이제 어느 정도 해탈이와 복주의 행동이 예측 가능한 범위로 들어왔다. 그간 개들의 행동 관련 빅 데이터가 수집된 결과라고 할까. 덕분에 이제 전보다 녀석들의 돌발행동에 당황하지 않는다. 그러니 전 보다 여유가 좀 생겼다. 개를 키운 후 꼬박 3년 만의 일이다.


한데 딱 이 시기에 느닷없이 택배 녀석들을 구조하고 임보 하게 된 것이다. 한 동안은 일이 잘 풀리는 듯했다. 둘 다 좋은 임보 가정을 거쳐 입양을 갔기에 드디어 두 발 뻗고 자나 싶었다. 그런데 파양이라니. 이를 어쩌나. 이 소식을 들은 직후 저 이제 애물을 어쩌면 좋은가 싶어 자리 깔고 누울 판이었다.  


다행히 이 와중에 돌아온 배달이를 룽지네서 돌봐줬지만 룽지네는 말 그대로 임시 보호일 뿐이다. 그러니 매일 명치가 꽉 막힌 듯 답답했다. 욕심 같아서야 지금 임보집에 배달이가 엉덩이 들이밀고 눌러앉았으면 좋겠지만 내가 막상 두 마리를 길러 보니 이게 쉽게 남에게 권할 수 없는 문제였다. 돈도 돈이지만 품이 말도 못 하게 는다. 개 역시 사람아이처럼 하나에서 둘이 되는 순간 넷의 몫을 한다. 그러니 룽지 언니한테 차마 둘째로 배달이를 데려가라고는 하지 못했다.

그뿐인가 오랜 경기침체로 개 시장도 얼어붙었다. 코로나 시기에는 없어서 못 키우던 개들이 집합금지 해제와 함께 속수무책 버려졌다. 덕분에 각 시도 보호소마다 매일 견사에 새로운 개들이 들어차고 또 그만큼의 개들이 죽어 나갔다. 포인핸드나 여러 SNS 에는  수 없이 많은 거리의 생명들이 입양 가족을 찾았다. 아무리 봐도 그 틈에 우리 배달이가 끼어들 자리는 없어 보였다.  게다가 배달이는 입양 황금기인 퍼피 시절을 파양 소동으로 고스란히 날려 버렸다. 그러니 내 맘은 계속 밤새 켜둔 양초 심지처럼 타들어갈 수밖에.


이런 내 맘과는 별개로 구조 임보자의 단톡방에서는 여전히 맘씨 좋은 누나들이 매일같이 배달이 사진을 공유하며 현미경을 꺼내 들고 배달이의 귀여움을 새록새록 발견해 냈다. 딱히 대수롭지 않은 개 발사진 가지고도 마이크로 단위로 쪼개어 귀여워했다. 하지만 나는 이삼십 대 언니들과 달리 메마른 감성을 지닌 중 늙은이다. 그러니 아무리 누나들처럼 보려 해도 개 발가락이 남들보다 아주 약간 더 벌어지는 걸 가지고 호들갑인지 도통 이해하지 못했다. 그 사이 배달이는 속수무책으로 자라 개들의 사춘기를 뜻하는 이른바 ‘원숭이 시기’ 라 불리는 외모 비수기에 들어갔다.


한데 그때였다. 배달이를 입양하고 싶다는 가족이 선물처럼 나타났다. 뭐라고? 처음에 이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린 마음껏 감사할 수 없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게 사람 마음이라는 걸 배달이 파양사건을 겪으며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배달이는 꽤 좋은 가족에게 입양 됐다. 배달이라는 이름을 부를 때마다 박스에 배달이가 버려진 게 생각 나 슬퍼 배달이의 이름을 ‘달이’라고 바꿔 부르겠다고 직접 손 편지를 써 준 누나의 사랑스러운 동생이 됐다. 이제 배달이는 붓산 사나이다.


특별히 이번 면접은 배달이를 업어 기른 룽지언니가 직접 나섰다. 지난번 파양 소동 이후 룽지 언니가 안 그래도 그 집으로 갈 때 뭔가 쌔한 느낌이 있었다고 했다. 언니말로는 그에 대해 하나하나 말로 다 설명하긴 어렵지만 어쩐지 그 집에서 배달이를 퍽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본인이 최소 세 번은 면접을 보고 보내야겠다고 호언했다. 이 얘길 들으며 속으로 나는 솔직히 룽지언니가 결국 배달이를 키우겠구나 했다. 아니 그렇지 않은가 누가 미쳤다고 개 한 마리 데려가는데 세 번씩이나 면접을 본단 말인가.


그러던 룽지언니는 현재 배달이네 가족을 만나고 온 날 바로 다음 날 “이 집이라면 배달이를 보내도 좋을 것 같아요”라고 했다. 언니 말에 의하면 가족 모두가 배달이를 아끼는 게 첫 만남부터 느껴졌다고 했다. 이렇게 배달이는 내 걱정이 무색할 만큼 파양 후 빠른 시간 안에 다시 방을 뺐다. 물론 <평생 반품 불가 조건>으로 말이다.


이로서 정초부터 시작됐던 #아산택배즈가족 찾기 프로젝트는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됐다. 여기까지 온 여정은 말 그대로 한 편의 드라마였다. 아마 혼자였다면 상상도 못 했으리라. 전국에서 여럿이 뜻을 모아 귀하고 값진 생명을 살렸다. 감회가 남 달랐다.


이 일을 통해 나는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이 전부 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평소에는 아무런 힘도 없는 마음 따위, 불구대천의 원수 뺨에 시원하게 물 한잔 못 끼얹는 마음 따위 했는데 아무래도 아니었다. 사람의 일은 시작도 끝도 오로지 마음이었다. 버려진 개를 가엾이 여긴 그 착한 마음. 무려 전국에 퍼진 놀라운 이웃들의 조건 없는 선의. 연대.  


참사 피해자라면 누구나 그렇듯, 아니 2014년 봄의 대한민국을 지나온 이라면 전부 그렇듯. 해마다 4월이면 나는 가만히 있어도 자꾸만 가슴이 미어졌다. 어느 날은 이러면 안 되는데 이렇게 두 손 놓고 있으면 안 되는데 밖에 나가 고함이라도 질러야 하는 거 아닐까 하다가 또 어느 날은 아니야. 그런다고 뭐가 달라져하며 도로 가 주저앉기를 반복했다.


그날 이후로 해마다 벚꽃이 피는 봄은 누가 보태주지 않아도 아픈 날들의 연속이었다. 게다가 올해는 특별히 세월호 10주기가 되는 해다. 그래서 나 역시 연초부터 마음을 단단히 먹고 안산을 줄기차게 드나들며 유가족과 생존자 부모 인터뷰를 무려 4건이나 땄다. 나도 뭔가 하나 하자 싶어 열심히 땅으로 깊이 꺼지려는 마음을 억지로 붙잡아 일으켜 사람들을 쫓아다녔다. 그런데 글쎄 딸을 먼저 보낸 어느 엄마의 담담한 말을 들은 후, 그러니까 딸아이를 찾고 보니 열 손가락이 밑이 전부 새카맣라는 말 그 문장을 만나고는 그만 덜컥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신세가 됐다.  


한데 이토록 몸과 마음이 지친 와중에 배달이가 이런 기적을 보여줬고 덕분에 다시 자세를 바르게 고쳐 앉아 펜을 들 힘이 생겼다. 고맙다. 꼬맹아. 앞으로도 영원히 지금처럼 행복하렴.

덕분에 앞으로 사는 일에 지치고. 마음이 힘들 때마다. 이 일을 떠 올리며 위로를 받을 수 있을 듯하다. 모두가 함께 만든 이 기적을 그 따뜻한 마음 씀씀이를 오래 두고 기억할 셈이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버려진 개들을 외면하지 않고 마음 다해 응원해 준 많은 분들께 감사 인사 올린다.


마지막으로는 이한빛 피디가 생전에 자주 썼다는 연대의 두근거림으로 빛나는 의 줄임말인 ‘연두, 빛’에 대해 말하고 싶다. 한빛 엄마도 노상 많은 이들의 부축으로 여끼까지 걸었노라 하는데 나 역시 그렇다. 이 모든 일이 연대가 아니면 또 뭘까 싶다. 그러니 코가 땅에 닿을 만큼 머리 숙여 감사 인사를 드리고 또 드릴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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