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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만언니 Jun 03. 2024

일본에서 친구가 왔다.

오랜만에 산만 투어

전에 회사 다닐 때 어찌 저찌 이래 저래 외국에서 손님들이 오면 모시고 함께 서울 투어를 종종 했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 골목골목 길도 잘 알고 운전도 거칠고 빠르게 치고 나가는 편이라 업계에서 나름 찾는 이들이 많았다. 게다가 남들 안 가는 코스로 관광 루트를 짜니 다들 여간 신나 하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한 때는 진지하게 이 일로 전향할까 고민한 적도 있다. 잘만 홍보하면 고객사 응대가 필요한 회사들은 “나” 를 이용할 것 같았다.


왜? 일단 내겐 아무 하고나 어떤 언어로든 오랜 시간 떠들 수 있는 재주가 있다. 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지만 나는 오로지 한국말만으로 외국인을 웃긴다. 그래서 진짜 해? 한 번 해 봐? 한 적도 있는데 이 일도 결국 제대로 하려면 자격증을 따고 국가에 정식 등록을 해야 하더라고. 그래서 돌아섰다. 공부라니 그것도 어학 공부라니 당치도 않은 얘기다.


부끄럽거나 혹은 부끄럽지 않거나 나는 공부를 못한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사실 나는 공부를 못한다. 나는 여태 내게 주어진 그 모든 이 세상의 관문을 깔딱깔딱 넘어온 사람이다. 한데 나이 먹느니 이 사실이 되려 짜릿할 때가 많다. 그것은 나 보다 좋은 대학 나오고 많이 배운 애들한테 이래라저래라 할 때다. 그것도 논리나 이치의 정합성 같은 게 아니라 주먹구구식의 감정과 기세 하나로.


아무튼 이렇게 손님맞이를 좋아하고 잘하는 내게 오래간만에 외국에서 손님이 찾아왔다. 기쁜 마음으로 손님을 모시고 서울을 떠났다. 한국의 휴게소에 들러 보고 싶다는 친구의 말에 고속도로에 차를 올렸는데 월요일이라 그런가 도로가 앞 뒤로 꽉 막혔다. 이 상황에 당황한 친구가 분명히 우리 고속도로를 탄다고 하지 않았느냐 물었고 나는 그의 물음에 한국 고속도로는 이름만 고속도로고 늘 이모양이라는 대답을 해 주었다. 다른 외국인 친구들도 많이 놀란다는 말과 함께.


휴게소에 들러, 휴게소 음식 삼대장 호두과자, 소떡소떡, 알감자를 먹었다. 사실 제대로 된 휴게소를 체험하려면 덕평이나 금강휴게소까지 가야 하는데 그것은 무리. 그래서 양재 지나 제일 처음 나오는 ‘만남의 광장’에 데려갔다. 친구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규모에? 실망한 듯했다.


이어서 민속촌에 가려했으나, 날이 너무 덥고 입장료가 비싸 (인당 35천 원) 포기하고 차를 돌려 고기리에 있는 손골성지로 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손골성지는 월요일은 휴무라 써 두고 성당 문을 굳게 닫아 걸었다. 민망한 나머지 나는 친구에게 손골성지가 한국 가톨릭 역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 계속 떠들어댔다. 참고로 손골성지는 그리 대단한 곳은 아니다. 단지 점심 먹기 전에 마땅히 갈 데가 없어 들른 것뿐이다.


대망의 점심. 용인 수지 고기리의 ‘산사랑’에 갔다. 시그니쳐 메뉴인 한 상차림은 (인당 2만 원) 떡갈비 추가는 1만 원이었다. 서울에 비해 가격이 합리적이다. 말 그대로 한 상가득 상이 차려지니 친구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들 잘 먹었다. 동동주도 반 되 시켜 나눠 먹었다. 산채와 동동주가 잘 어울렸다. 아마 운전만 아니었어도 한두 잔 더 마셨을 것 같다.

차가 막힐까 두려워 빨리 수지를 빠져나와 서울로 갔다. 서울에선 역시 내 부동위 원픽 부암동 카페 산모퉁이. 카페 입구에 이선균 사진이 있어서 슬펐다. 아마 오래도록 이선균을 떠 올리면 슬플 것 같다. 최진실에 이어 이선균까지 우리 모두의 PTSD가 아닐는지.


집에 오는 길에 들은 라디오에서 한 패널이 PTSD에 걸린 사람은 실제로도 그 기억이 너무 큰 충격이라 ‘나 PTSD 올 것 같아’라고 말하지 못한다고 한다.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는 불행의 기억이 말 그대로 피부를 뚫고 나오는 게 PTSD 라 했다. 일부 동의 했다. 나 역시 내가 겪은 일들에 대해 말하기까지 남들이 상상하기도 힘들 만큼의 오랜 시간이 걸렸으니까.


카페테라스에 앉아 눈 아래로 서울을 펼쳐 두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기분 좋게 음료를 한 잔씩 마시고 서둘러 길상사로 향했다. 길상사로 가는 길에 부암동 산길을 따라 오르락내리락 가파른 구간을 지나니 일본 친구들이 함성을 질렀다. 마치 어트렉션을 타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전에 외국인 친구들도 이 대목에서 많이 웃었던 것 같다. 아마 서울만큼 도시에 산이 많은 데가 또 있을까 싶다. (궁금해서 하는 말 아님)


길상사에 가며 법정스님에게 전 재산을 통째로 시주한 기생 자야와 시인 백석의 사랑 이야기를 멋 드러 지게 하고 싶었는데 뜻 대로 되지 않아 성공한 기생이 스님께 죽기 전에 절을 공양 올린 걸로 간단하게 정리하고 말았다. 물론 친구는 한국말을 잘하는데 한국말을 잘한다고 내가 백석까지 얘기할 수는 없잖아. 그것도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같은 말들... 그래서 접었다.

길상사에서 나와 저녁까지 함께 먹으려다 그만 급하게 에너지가 소진되는 바람에 친구들을 바삐 호텔에 도로 데려다주고 부랴부랴 서둘러 집에 왔다. 오는 길에 배달의 민족에서 크림 파스타를 하나 주문해 오자마자 받아 흡입했다. 뭔가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하니까. (안 하던 짓이란? 성인 여성들과 대낮에 노는 일) 기력이 딸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앞으로는 종종 이런 시간을 확보해야겠다. 개들과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니 인간들과 보내는 시간이 낯설달까? (거짓말임, 그냥 늙어서 힘든 거임)


길상사에서 친구는 연등에 달린 각기 다른 타인의 소원들을 찬찬히 읽어 보더니 본인도 소원을 적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펜과 종이를 쥐어주니 아래와 같은 말을 적었다. (인류애충전의 모먼트) “한국과 일본의 다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잘 부탁 드립니다“

일본인친구가쓴 소원성취카드

추가로 길상사에서 본 귀여운 소원 카드 하나 덧 붙인다. 글씨체도 그림도 전부 완벽하게 귀여워, 내 온 마음을 울렸다. 역시 귀여움은 세상을 구한다.

매일 일기를 쓰겠다 다짐한 일에 오눌 종일 굉장히 스트레스받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슬 - 잊어버리면 살며시 없던 일로 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좋아요가 왜 이렇게 많이 눌려!!!!)


눈치챘을까.

좋아요가 어제 보다 더 많아지면 내일도 오겠다. 아니라면 스리슬쩍 사라질테야.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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