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고, 책을 내고 깨달은 것.
본래 좋은 기억보다 나쁜 기억이 오래간다. 이 때문이 우리는 어쩌다 낯선 곳을 여행해도 대다수의 호의와 환대는 당연하게 여긴다. 하지만 극 소수의 적대적 감정에는 민감하게 군다. 가령 인종차별 같은 것들 말이다. 이에 대해 진화 생물학자들은 그냥 단순하게 현생 인류의 생존 본능이라고 한다. 수렵 채집 시절 인류가 독버섯이나 뱀이 나오는 위치 같은 곳을 오래 기억해야 했기에 이런 식으로 진화해 온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학창 시절 받았던 수많은 상찬은 잊어도, 욕먹고 뺨 맞은 기억만큼은 오래오래 기억한다. 나 역시 그렇다.
나 같은 경우는 재난참사 피해자로 말하고 글 쓰고 활동하기 시작하며 대중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욕을 먹기 시작했다. 아마 그냥 시민 1로 살았다면 평생 먹지 않았을 욕이리라. 그러니 어째 받아들여야지. 대신 늘 내가 하고 싶은 말 하고 살면서 나 좋은 말만 듣고 살 수 없지. 하며 마음을 다 집을 뿐이다.
사실 나는 자고 일어나 보니 스타가 됐더라는 유명 연예인들처럼 어쩌다 보니 이 시대 참 “재난참사 피해자”가 되어 있었다. (이런 말 없음. 내가 방금 만들었음)
그 후로 국가에 참사가 생기면 언론이 앞 다투며 찾아와 내 얘기를 받아 적는다. 그러면 또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 욕을 먹는다. 물론 칭찬도 받지. 그런데 어쩐지 그건 그렇게 기억나지 않더라고.
그러니까 평범한 월급쟁이였던 나는 2018년 4월 어느 날 “세월호가 지겹다, 노란색도 지겹다”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세월호가 왜 지겨우면 안 되는지 조목조목 짚은 글을 썼다. 그리고 그 글을 하필이면 화력 좋기로 유명한 딴지일보 게시판에 올렸다. (이전까지 그 게시판이 그렇게 잘 팔리는지 전혀 몰랐다)
그 후 글은 SNS를 도배했다. 일파만파 서로가 서로에게 공유했다. 그 뒤로 나는 나름 web 상에서 유명해졌고, 그것을 발판 삼아 책을 냈다. 그러니까 말이다. 평범한 직장인이던 나는 어느 날 재난피해 “당사자”라는 이유로 세간에 등 떠밀려, 혹은 내가 먼저 나서서 ‘산만 언니’라는 필명으로 책을 내고 마이크를 잡고 활동을 하게 된 것이었다.
처음 딴지일보 편집장이 내게 따로 연락해 “우리 한 번 같이 책을 내 봅시다.” 했고, 책이라는 말에 솔깃한 나는 별생각 없이 좋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이 정도까지 출판상황이 나빠지기 전이라 너도 나도 서로서로 다들 책을 내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그럼 나도 시대의 흐름에 편승해 볼까” 라며 가볍게 생각했다.
당시에 나는 글쓰기 생초보기에 일단 딴지일보에 정식 연재부터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나는 생각보다 훨씬 더 형편없었다. 그도 그럴게 이날 이때까지 제대로 글 쓰기를 배워 본 적 없다. 덕분에 딴지 일보 편집부는 나 때문에 고난의 행군 아니 고난의 편집을 강행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친해진 딴지 일보 편집 기자가 훗날 고백하길. “누나 글은 정말 특이한 게. 글에 먼지가 정말 많아. 그런데 그 안에 뭐가 자꾸 보여요. 그러니 이건 안 할 수도 없고 손대자니 끝도 없고. 미치는 거죠 완전 노가다니까”라고 내게 웃으며 노고를 토로한 적 있다. 왜 아니겠는가. 그때보다 많이 나아진 수준인 지금도 이 모양인데 ㅎ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은덕으로 당시에 나는 겨우겨우 한 권의 책을 냈다. 그리고 그 책은 “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라는 이름으로 서점에 깔렸다. 책이 크게 잘 되진 않았어도 평타는 했다. 꾸준히 잘 팔렸다. 딴지 일보부터 푸른 숲 출판사 편집팀까지 여러 사람의 공수가 녹아 그런지 책의 만듦새가 좋았고 (내 기준) 대중의 평가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말이다. 어느 날부터 책의 판매 지수가 눈에 띄게 추락하기 시작했다. 이상하다 싶던 찰나 나는 알라딘에 올라온 아래 리뷰를 보고 말았다.
별 하나도 가슴 아픈데, 이 글에 공감하는 이가 무려 15명이나 된다. 세상에 이를 어쩌면 좋은가, 수많은 날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썼거늘, 야속하게도 독자는 내게 자기 연민을 비슷하게 변주한 에세이라고 대차게 일갈해 버렸다. 가슴이 미어졌다. 하지만 흥분을 가라앉히고 곰곰 생각해 보니, 이분의 말도 틀린 건 아니다. 아니 어쩌면 완벽하게 동의한다. 맞다. 세월호 카드까지 들고 나왔으면 뭔가 손에 잡히는 명징한 메시지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당시에 나는 애석하게도 그러지 못했다. (부끄러울 때 나오는 유체이탈어법)
있는 그대로 독자의 반응을 인정하고 보니. 돌연 “ 어라? 가만있어 봐. 그래도 너무하네. 비슷한 이야기의 변주는 아무나 하나?” 같은 생각도 들었다. 그러자 어느새 타인의 혹평도 겸허히 수용할 수 있게 됐다.
당연하다. 나 역시 글을 쓰는 사람 이전에 채을 사랑하는 독자다. 당연히 남들 다 좋다는 책 싫었던 적 있다. 부지런한 성격이 아니라 리뷰를 달지 않았을 뿐. 별점 테러 하고 싶은 책들도 그간 숱하게 많이 읽었다.
실은 내가 처음 악플을 받기 시작한 건 딴지일보에서 삼풍 이후에 연재한 #나의 대기업 생존 방정식 이라는 연재 기사를 쓸 때였다. 당시 나는 20년 간 대기업 비슷한 직장에 다니고 있었는데, 이를 흥미롭게 여긴 편집장이 관련해서 글 한 번 써보자 부추겨 연재를 시작하게 된 거다. 그런데 웬걸 기사만 올리면 사람들이 득달같이 달려와 악플을 달았다. 처음엔 이들의 행동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이들의 비난은 밑도 끝도 없는 것이었다. 차라리 그냥 내 글이 싫다. 너라는 사람이 싫다고 하면 나을 것 같았다. 그런데 다들 내가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했다.
오해도 이런 오해가 없고 억지도 보통 억지가 아니었다. 아니 내가 몸소 경험하고 내 눈으로 본 걸 쓰는데 그게 어떻게 거짓말이 되는가.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러다 문득 일이 이렇게 된다는 건 내가 뭔가 대단히 잘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들었다. 해서 편집장에게 물어보니 딴지일보는 매체 특성상 연재 기사에 본래 악플이 많이 달리는데 이전에 내 글은 주제가 워낙 슬프고 무거워 아무도 악플을 달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러니 무시하고 계속 써라. 했다. 아니... 무시하라고? 대중의 이 들끓는 분노를???
결국 나는 편집장의 말을 듣지 않고 내 맘대로 연재기사를 도중에 내렸다. 도저히 더는 말도 안 되는 비난을 받아낼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말이다. 그때 비난받은 글을 그대로 모아 브런치에 새로 올리니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덕분에 나는 딴지에서 시작한 글을 브런치에 와서야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일로 깨달았다. 내 얘기가 싫은 사람은 그냥 싫고, 또 내 얘기가 좋은 사람은 그냥 좋은 거 구나. 그러니 너무 독자의 반응에 연연하지 말자. ( 물론 지금의 용와대처럼 남의 말을 전혀 듣지 않아도 문제겠지만) 그렇게 마음 먹은지 한 해 두 해 지나 벌써 꽤 세월이 지났다. 그 사이 모르긴 몰라도 나 역시 타인의 혹평에 좀 더 의연해지는 어떤 성장을 하지 않았을까 한다.
요즘도 가끔 생각날 때마다 알라딘 어플을 켜고 들어가 상단에 위치한 저 리뷰를 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내일 아침에 부디 기적처럼 사라지기를 ㅋㅋㅋㅋㅋ
그게 안 된다면 따로 책값 등 고객님께서 직접적으로 피해 입으신 부분에 대해 따로 배상할 테니 부디 별점 테러만은 멈춰 주시기를.
휴
#안 되겠지
오늘의 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