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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만언니 Jul 29. 2024

20화_나도 훈련사나 할까 보다.

남이 하는 일은 어쩐지 쉬워 보인다.

뭐든 제대로 알면 입을 함부로 열 수 없는데 어설프게 알 때 우리는 꼭 아는 척을 한다. 운전도 초보를 갓 뗀 운전자가 제일 설치고, 회사에서도 보면 주임 대리가 가장 말이 많다. 역설적으로 우리는 이제 막 뭐든 배우기 시작했을 때 가장 자신감 넘치는 행동을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뭐가 됐든 간에 제대로 알면  섣부르게 행동하지 못한다.   


개 역시 마찬가지다. 나 역시 반려 초반에 개에 대해 잘 안 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어디서 절대 그런 말 안 한다. 오히려 개를 오래 키우다 보니 알 것 같아도 모르는 게 바로 ‘개’다. 당연하다. 같은 살가죽 덮어쓴 사람 속도 태반을 모르겠는데, 어찌 털가죽 입은 개들 맘을 안다 할 수 있을까.


힌데 처음엔 몰랐다. 복주를 한 일 년쯤 키웠을 때 왠지 내게 타고난 훈련사 기질이 있는 듯했다. 그도 그럴게 그때만 해도 우리 해탈이와 복주는 내가 주도하는 모든 훈련을 잘 따라와 줬다. ‘앉아, 엎드려, 기다려’ 기본 삼종 세트는 물론이고 산책 때 줄도 끌지 않았고, 일 없이 짖지도 않았다. 그뿐인가 우리 개들은 서울시에서 주관하는 ‘반려견 순찰대’ 시험에도 둘 다 단박에 붙었다. 상황이 이러니 점점 더 목에 힘이 붙었다.  

그러다 보니 훈련사라는 직업에 어느 순간 진지하게 관심이 갔다. 마침 여자치고 기골이 장대하고 열 사내 안 부럽게 뱃심도 좋으니 아무리 큰 개라 해도 이 두 손이면 능히 다룰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틈만 나면 “나도 훈련사나 해볼까” 같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의 이 빛나던 찰나의 꿈은 얼마 안 가 뜻밖의 상황에서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그건 바로 그간 나의 자랑이었던 우리 집 개들이 천지 사방 날 뛰며 슬슬 사고를 치고 다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복주가 종종 반려견 놀이터서 다른 친구와 시비 붙어 친구 치료비를 물어 주더니 나중엔 해탈이 가 포천 집 담을 넘어 가 이웃의 닭까지 잡았다.

개의 경우는 성견이 되고 힘이 세지면 자기 체급이 얼마나 되나 다른 개와 겨뤄 본다고 한다. 물론 종을 떠나 기질적으로 겁 많고 순한 개들은 그런 짓을 안 하겠지만 애석하게도 우리 집 녀석들은 이 시기에 사고를 쳤다.


복주야 그렇다 쳐도 해탈이가 문제를 크게 일으켰다. 자꾸 포천에 놀러 오는 작은 개들을 물었다. 덕분에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남 앞에서 연신 고개를 조아리고 사죄의 말을 해야 했다. 죽을 맛이었다. 노상 피해자의 위치일 줄 알았던 내가 개 때문에 가해자가 됐을 때의 심정이라니. 막상 상대편이 되어 보니 이것도 진짜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 해탈이한테 물려 아픈 개를 생각해도 괴롭고 남의 개를 물고도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는 해탈이를 봐도 괴로웠다. 그 후 해탈이의 문제 행동을 고치고자 별의별 짓을 다 했는데 소용없었다.


그저 무는 개를 확실하게 고치는 방법은 우리 해탈이가 다른 개를 만날 기회를 물리적으로 차단하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 문제로 요즘 나는 작은 개한테 민감한 해탈이를 공공장소에 안 데려간다. 같은 이유에서 포천 살이도 접었다. 24시간 아무리 내가 개를 밀착해서 본다 한들 한계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훈련사라니. 언감생심이지. 내가 직접 가서 구르고 뛰며 해탈이 대신 훈련을 받아도 시원찮을 상황이니.

해탈이도 어려서 된통 물렸다. 포천서 언제 한 번 아주 크고 검은 개한테 물려 해탈이도 나도 고생깨나 했다. 덕분에 요즘도 나는 어디서 검은 개를 보면 그때 생각이 나 나도 모르게 슬금슬금 피한다. 상황이 이러니 내가 만약 훈련사가 된다 해도 고객이 의뢰한 개가 검은 개면 나는 이런 말을 해야 한다. “제가 검은 개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으므로, 고객님의 개는 봐 드릴 수 없습니다 ‘

그러니 훈련사도 보기에나 쉽고 말이나 쉬운 얘기지. 막상 하면 그 얼마나 힘든 일이냐는 얘기다. 이 일에 대해 평소 친하게 지내는 훈련사에게 농담을 섞어 이야기하니 그가 반색하며 안 그래도 주변에 나처럼 ‘나도 훈련사나 해 볼까’ 하는 사람이 최근 한 둘이 아니라고 한다. 해서 내가 물었다. 그럴 때 선생님은 어떻게 대답하느냐 그러자 그가 “저는 그는 그냥 다 해 보라고 해요” 한단다. 왜냐고 물으니 사실 다들 말만 하는 거지 실제로 도전하는 경우는 희박하단다. 또 내가 말한 것처럼 이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본인과 비슷한 시기에 훈련사 일을 시작한 동기도 수십수백이지만 지금껏 훈련사 일을 하는 친구들은 주위에 몇 안 된다고 한다.  


해서 생각했다. 말은 쉽구나. 너무나도 쉽구나. 그래서 오늘도 다짐한다. 앞으로 남이 잘해서 쉬워 보이는 일을 두고 “나도 이거나 해 볼까” 같은 말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고, 쉬운 일이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이 잘해서 쉬워 보이는 것이다.라는 말을 가슴 깊이 새기며.


그리고 해탈이를 키우며 깨달은 건 물려 본 개 만이 물 수 있다는 거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먹을 수 있고 싸움도 맞아 본 놈만이 때릴 수 있듯. 개도 그렇다. 물려 본 개는 물 수 있다. 폭력의 본질이 그러하므로. 해탈이가 왜 다른 개를 물기 시작했는지 녀석이 처음 왔을 때를 떠올려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당시 녀석은 겁에 잔뜩 질려 아무도 믿지 못했다. 특히 사람 손을 무서워했다. 그때도 해탈이가 아마 전에 사람한테 많이 맞은 모양이라고 조카랑 얘기한 적 있다. 그 정도로 사람 손을 보면 기겁했다. 어려서 형제자매와 함께 크고 임보집에서 사랑받아 폭력에 대한 학습이 없는 복주랑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였다.


또 해탈이는 퍼피시절에 ‘개의 언어’를 몰랐다. 아마 추정키로 엄마 젖도 떼기 전에 자신의 무리와 헤어진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처음엔 큰 개 앞에서 복종의 의미로 배를 까는 법도 몰랐다. 한데 이때 복주와 함께 산책 간 뒷산에서 아무도 없는 사이 잠깐 줄을 풀고 놀다 한 번 서너 마리의 들개 무리를 만난 적 있다. 한데 이 친구들은 인정사정없었다. 예의 없는 해탈이를 대번에 물어버렸다. 다행히 내가 고함치고 돌을 던지자 들개들은 사라졌다. 한데 이때 기억이 녀석에겐 강렬했던 모양이다. 해탈인 그 후로 그때 그 들개 녀석들처럼 행동했다. 누구든 해탈이 앞에서 배를 까지 않으면 앙칼지게 물었다.


그래서 요즘 나는 요즘 미국 배우 메릴 스트립이 2017년 골든 글로브 수상소감에서 한 말을 자주 떠올린다 “무례함은 무례함을 부르고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 (Disrespect invites disrespect. Violence invights violence.)“ 해탈이에게서 이어지는 폭력의 사슬이 자연스레 끊어지지 않는다면 억지로라도 끊어야겠지. 가능하면 모두에게 평화로운 방법으로 같은 생각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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