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탈복주를 결국 금쪽이로 만든 나 그리고 반련견 훈련소 체험기.
이곳에 와 제일 먼저 한 생각은 어쩌자고 한 겨울에 왔을까였다. 이왕이면 날 좋은 봄이나 가을에 왔으면 서로 좀 낫지 않았을까, 왜 하필 이토록 추운 동지섣달에 왔을까였다.
그렇다면 이곳은 어디일까. 바로 애견 훈련소다. 이른바. 금쪽이 행동 교정 전문학교. 실은 근래 해탈이 가 포천에서 “또” 친구를 물었기 때문이다. 이제와 고백하자면 해탈이는 예쁜 외모에 비해 그렇지 못한 성격의 소유자다. 뿐만 아니라 녀석은 고약하게도 꼭 저보다 작고 약한 친구만 문다. 처음엔 이 사실을 몰랐다. 한데 놈은 큰 개 앞에선 꼬리를 말고 도망가고 작은 개 앞에선 여지없이 이빨을 드러냈다.
그 후 나는 일상에서 해탈이를 소형견들과 물리적으로 차단시키려 노력했다. 만약 어쩔 수 없이 작은 개와 한 공간에 있어야 한다면 상대에게 미리 해탈이 상태를 고지하고 나 역시 개를 묶거나 방안에 두거나 입마개를 하며 종일 감시했다. 한데 사람이 노상 살아있는 개를 지키는 데는 분명히 한계가 있었다. 또 사고는 언제나 눈 깜짝할 사이 일어났다. 해서 안 그래도 개방된 공간인 포천에는 더 못 있겠다 싶어 그날을 끝으로 포천살이를 정리하려던 차였다.
종일 세간을 차에 옮겨 싣느라 녀석 신경 쓰느라 정신없었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다. 그때 마침 펜션에 놀러 온 푸들 친구가 돌아간다기에 사립문까지 나가 웃는 얼굴로 이들을 배웅하고 이제 됐다 싶은 마음에 긴장을 풀고 계곡 쪽으로 뒤돌아서 내려가는데 갑자기 등 뒤에서 난 더없이 비명 소리가 났다. 느낌이 이상해 소리 나는 쪽으로 얼른 달려가 보니, 아니나 달라. 해탈이 녀석이 푸들을 연신 공격하고 있었다.
해탈이는 대형견이고 그 친구는 소형견이다. 자칫 잘못하면 생명이 위험한 순간이었다. 일단 나는 다친 친구와 친구 보호자를 차에 싣고 병원으로 내 달려갔다. 의정부의 한 병원으로 가는 동안 속으로 제발 가벼운 상처이길 바랐다. 하지만 병원에 도착해 상처부위를 제대로 보니 복강 내 탈장이 진행되고 있어 응급 수술을 급히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 친구가 수술실에 들어갔을 때 어찌나 괴롭던지. 도무지 피해 견주 얼굴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게다가 나는 평소 사과에 영 잼병인 사람이다. 삼풍 사고 이후 정서적으로 취약한 상황에 닥치면 나도 모르게 방어기제가 나와 해당 사건에서 나 자신을 무의식이 즉각 분리해 버린다. 이는 흔한 PTSD 증상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의 예상과 다르게 나는 스트레스받는 상황에 놓이면 더더욱 이성적인 사람이 된다.
그러니 이런 상황이 되면 어쭙잖게 머리로만 상대를 위로하려다 되려 화를 돋우기 일쑤다. 해서 이날은 입을 닫고 그저 묵주를 돌리며 죽어라 성모님만 찾았다. 성모님께서 부디 수술실에 있는 친구와 함께 해 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다행히 응급 수술은 잘 마무리됐다. 다친 친구의 혈압과 맥박이 정상 수치인 걸 확인하고 그제야 나는 포천으로 돌아와 놀란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긴장을 풀고 어린애처럼 소리 내 엉엉 울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더는 이렇게 하루도 못 살겠다고 생각했다. 해서 그날부터 해탈이 녀석의 못된 버릇을 고쳐 줄 훈련사를 수소문했고 해결책은 결국 반복학습 밖에 없다는 걸 깨달아 해탈이를 받아 줄 기숙학교를 찾아 결국 이곳까지 오게 된 거다.
하지만 이곳은 반려견계 명문 사관학교답게 입시 경쟁이 치열하다. 전국의 수많은 금쪽이들이 입학처에 이름을 올리고 여전히 대기 중이라 했다. 그렇다고 물러설 수 있나 나는 우리의 급박한 사정을 구구절절 담은 장문의 호소문을 애절하게 써 소장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성공해 일단 면접권 까지는 확보해 놓은 상태였다. (사실 이 학교 우등생인 누룩이네 인맥도 동원했다)
소장님이 알려주신 대로 훈련소 주소를 네비에 치고 강변도로를 한참 달리자 서울 외곽에 아직 이런데가 있나 싶게 넓은 평지가 나왔다. 간판 하나 제대로 없는 드 넓은 운동장에 깔끔한 야외 견사, 하우스 견사 그리고 컨테이너 사무실 총 세 개의 공간만 놓여 있었다. 무엇보다 겉치레가 요란하지 않은 게 인상적이었다.
잠시 후 경륜이 좀 있어 보이는 소장님께서 까맣게 그을린 얼굴로 밀리터리 룩을 가볍게 툭 걸치고 워커를 신고 마당을 질러 타박타박 걸어 나오셨다. 이후 소장님은 본인의 이력에 대해 내게 단 한 마디도 설명하지 않았지만 그 어떤 말보다 많은 말을 소장님의 간결한 태도가 하고 있었다.
소장님은 내게 인사를 짤막하게 건네고 무심히 본인 일을 마저 했다. 나는 개들과 훈련소 앞마당에 덩그러니 있었다. 그러는 동안 속으로 나는 과연 우리 애들이 오늘 훈련소에 입학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나도 모르게 심장이 두 근 반 세 근 반 뛰었다. 어찌나 긴장했나 손에 땀이 다 났다. 잠시 후 개를 풀어도 좋다는 소장님의 허락에 해탈이와 복주의 목줄을 푸는데 손이 다 떨렸다. 아마 나 대학 갈 때도 이렇게 떨지 않았던 것 같다.
한데 곰곰 생각해 보니 이놈의 학교 말이다. 붙어도 떨어져도 전부 걱정이다. 만약 개들이 오늘 합격을 한다. 그간 정성껏 어린애 품어 기르듯 기른 것들을 이곳에 무려 네 달이나 떼어 놓는다? 말처럼 쉽지 않을 것 같다. 또 불합격한다? 그럼 저놈 새끼 버르장머리를 어디 가서 고친단 말인가. 말 그대로 이래도 고민 저래도 고민이라 나는 찬바람이 뼛속을 에이는 데도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한참있었다.
이런 내 속을 전혀 알리 없는 녀석들은 눈치도 없이 새로운 놀이터에 놀러 온 줄 알고 신나서 이리저리 뛰었다. 그래서 나름 나는 잘 챙긴다는 뉘앙스로 녀석들을 챙기며 해탈이 와 복주를 불렀다. 한데 녀석들 눈치를 아주 밥 말아먹었지. 내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이 상황이 좀 부끄러워진 나는 소장님 들으라고 하나마나한 말을 애써 크게 한다. “ 얘들이 오늘따라 왜 이러지”. 하지만 소장님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하긴 귀신을 속이지. 누굴 속이는가.
잠시 후 소장님께선 엄마의 출산으로 위탁 와 있는 누룩이를 (보더콜리/4세/여/안양거주) 데리고 나와 여러 기본예절 교육 시범을 선 보였다. 누룩이는 마치 숙달된 훈련 조교처럼 소장님의 구호에 맞춰 군더더기 없는 태도로 완벽하게 그 모든 명령을 수행했다. 하지만 우리 집 개들은 누룩이가 그러거나 말거나 쳐다도 안 보고 이리저리 냄새 맡고 돌아다니느라 바빴다.
다정한 눈으로 테이블 위에 앉아 소장님만 열심히 바라보고 있는 누룩이를 쓰다듬으며 소정님은 이렇게 말했다. “ 보호자님께서 아셔야 할 게 있어요. 얘들은 사람이 아닙니다. 개는 인간하고 달라요. 얘들은 본능이 압도하는 짐승이라 강약약강이 기본입니다. 얘들 입장에선 당연한 겁니다. 그러니 이런 부분은 인간인 보호자님이 먼저 통제해 주시는 게 맞습니다”
정곡을 찔린 나는 부끄러워 고개를 툭 하고 아래로 떨궜다. 마치 오은영의 금쪽상담소에 나온 학부모처럼 말이다. 틀린 말 아니다. 내가 생각해도 소장님 말씀이 백번 맞다. 그래 사고는 해탈이가 쳤다. 한데 그런 상황을 만든 건 나다. 변명의 여지없이 이 일의 책임은 내게 있다.
이번엔 소장님께서 누룩이를 견사로 돌려보내더니 검은색의 포인터 친구를 데리고 나왔다. 그러자 해탈이하고 복주 녀석이 갑자기 이 친구에게 달려들었다. 아마 누룩이는 그전에 삼막에서 종종 어울려 놀아 그런가 별 관심을 안 보이더니 이 친구한테는 다른 반응을 보였다. 녀석들은 쏜살같이 달려가 새로운 친구를 오도 가도 못하게 겁박했다. 이를 본 소장님께서 말씀하셨다. “ 쟤들 지금 노는 거 아닙니다. 그건 알고 계시죠?”
아니. 몰랐다. 난 여태 개들이 저러고 노는 줄 알았다. 다만 큰 개들이라 좀 거칠게 노는 줄 알았다. 소장님은 이어 말했다. “ 어려서라면 모를까 성견이 되면 밖에 나가 모르는 개 만나는 거 스트레스예요. 얘들도 봐요. 서로 싫어하잖아요. 그러니 앞으로도 가급적 이런 상황 만들지 마세요”
이럴 수가. 몰랐다. 여태 매일 이런 순간을 만들었다. 서울에서 뿐만 아니다. 포천의 달방엔 매일 새로운 친구들이 놀러 왔다. 내가 살던 포천의 달방은 애견 놀이터고 펜션이었다. 소장님께서 이어 말했다 “ 우리나라 사람들 뭔가 크게 잘못 알고 있는 게, 자꾸 산책 중에 개들을 서로 인사시킨단 말이죠. 미국은 안 그러거든요. 산책 중에 서로 절대 인사 안 시켜요. 그뿐 아닙니다. 동물 병원에서도 유치원에서도 서로 못 마주치게 동선을 아주 따로 만들어놔요. 그런데 한국사람들 희한하게 자꾸 개한테 친구를 만들어 준다면서 생전 처음 본 개들 갑자기 인사시켜요. 그거 아닙니다. 하지 마세요” 몰랐다. 나는 개도 사람처럼 계속해서 새로운 친구가 필요한 줄 알았다.
세상에 어디 가서 말은 안 했어도 나는 그간 제법 개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줄 알았다. 한데 알고 보니 착각도 보통 착각이 아니었다. 그러니 지식이란 뭐든 많이 아는 것보다 제대로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닌가, 공부 오래 한다고 다 똑똑한 거 아니듯이.
잠시 후 소장님은 내게 사무실에 가서 얘기하자 하셨다. 사무실이라 불리는 컨테이너 박스에 들어가자 소장님께서 따뜻한 코코아 차 한잔을 타 오신다. 순간 속으로 합격이구나 싶었다. 이어서 소장님이 말씀하셨다. 해탈이의 문제 행동 고치는데 어쩌면 4개월 이상 걸릴지 모르겠다고 말이다. 해 봐야 알겠다고, 개라는 동물은 사람과 달라 말로 뭔가를 가르칠 수도 배울 수 없기 때문에 무조건 몸으로 익혀야 한다고 그러려면 매일 반복 학습해야 하는데 그게 최소 4개월이 걸린다고, 그러면서 앞으로 해탈이는 훈련소에 오는 친구들 중 덩치는 작지만 강하고 센 녀석들과 자주 부딪힐 거고 그 과정에서 얼굴에 상처가 좀 생길 거라고 하셨다. 그 얘기를 들으며 나는 상처 같은 건 아무래도 좋다고 연신 고개를 아래위로 흔들었다.
계약서를 작성하는 사이 소장님은 해탈이를 자세히 살펴보시더니 “계집애 이쁘장하게 생겨가지고”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어 말하길 아마 해탈이가 어려서 부모 형제한테 카밍 시그널을 제대로 못 배운 거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다른 개들하고 소통이 잘 안 되는 거 같다고 말이다. 또 교육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함께 살고 있는 복주의 입소도 권한다고 하셨다. 안 그러면 해탈이가 행동교정을 마치고 집에 왔을 때 복주가 망칠 수 있다고. 일리 있는 이야기였다. 그날 부로 나는 개들을 당장 훈련소에 두고 왔다. 조금이라도 미적였다가는 마음 약해질까 두려워 뒤도 안 돌아보고 뛰어 한달음에 훈련소를 빠져나왔다.
그 후 일상에 개가 없는 생활을 만으로 4년 만에 맞았다. 첫 한 달은 정말 괴로웠다. 뻔히 훈련소에 잘 있는 거 아는데 왜 그렇게 개들이 보고 싶던지. 개들이 눈에 선해 견딜 수 없었다. 또 한참 추울 때 훈련소에 보내 그런지 찬 바람만 좀 불면 두 눈에 눈물이 왈칵 고였다.
그 후로는 계속해서 어쩌다 해탈이가 입질을 하기 시작했을까 생각했다. 둘 다 어려서 데려와 동일한 조건에서 동일한 사람이 키웠는데 복주는 안 하는 짓을 왜 해탈이만 할까. 그렇다면 해탈이만 겪은 뭔가 특별한 사건이 있을까 깊이 고민했다. 다른 건 없었다. 그저 해탈이가 어려서 복주보다 많이 물렸을 뿐이다. 애초에 물려 본 적 없는 개들 가령 우리 복주같은 경우는 절대 다른 개를 물지 않는다.
세간에선 진돗개가 충성심이 강해 위기의 순간이 오면 맹렬하게 다른 개를 공격한다고 하던데 천만에 복주는 위험한 순간이 오면 언제나 제일 먼저 혼자 도망간다. 오죽하면 내가 늘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우리 복주는 나보다 오래 살 거야.”라고 할까.
생각해 보니 사람도 다르지 않다. 내 주변 사람만 봐도 맞아 본 놈만이 때릴 줄 안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다. 어려서 폭력적인 상황에서 커서, 그러니까 아동학대를 당하고 자라 폭력성이 내 안에 잠재되어 있다. 해서 간혹 이성을 잃고 폭주하면 나도 모르게 대단히 폭력적인 성향이 나온다. 나를 헤치고 남을 괴롭히고.
개들을 훈련소에 맡긴 후로 나는 불현듯 독하게 마음먹고 지난 삼 년간 연을 끊고 지냈던 엄마한테 연락을 했다. 개들을 떼어놓고 보니 아주 살짝 마음 깊은 데서 심정의 변화가 일었기 때문이다. 개가 속을 섞여도 이렇게 마음이 힘든데 키우던 개를 안 보고 살아도 괴로운데 싶은 마음이 이제야 들었달까. 해서 내친김에 엄마를 보러 청주에도 갔다.
그사이 엄마는 말도 못 하게 늙고 쇄약 해져 있었다. 그런 엄마를 보니 역시나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간 뭐 대단한 가치 실현 한다고 살아있는 부모를 안 보고 살았나 하는 후회도 들고.
엄마와 연을 끊었을 무렵엔 그저 심적으로 더는 가족을 견디기 어려웠다. 그땐 한평생 나만 쳐다보며 사는 가족들이 천년을 굶은 아귀 같이 징그럽게만 느껴졌다. 할 수만 있다면 이들이 들러붙어 있는 팔다리까지 전부 잘라 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나는 이들이 미웠다. 그래서 연을 끊었다. 또 당시엔 엄마의 태도가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한평생 교도소나 드나드는 큰오빠에게 노인네가 여전히 머리채를 잡혀 끌려다니는 게 말이다.
해서 그때 엄마한테 이런 말도 했다. ”엄마 나 같으면 그 새끼 내 손으로 죽여. “ 그러자 엄마는 짐짓 심드렁한 얼굴로 보던 드라마를 마저 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 그래. 너는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데 엄마는 그게 안 되더라. 할 수만 있다면 나는 그냥 걔를 처음부터 다시 키우고 싶다. “ 그때 내가 엄마한테 뭐라고 했는지 자세히 기억 안 난다. 아마 정신 차리라고 했던 것 같다.
한데 이제야 조금 그때 엄마의 알 것 같다. 생판 남이라면 모를까 차라리 내가 죽고 말지 부모라는 사람은 도저히 자기 자식을 어떻게 못한다는 걸. 또 제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라 해도 그저 끝까지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걸. 그러니 남의 일 말이다. 겪어 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다. 심지어 그게 부모 자식 간의 일이라 해도 말이지.
최근에 만나는 사람들이 나를 보면 하나같이 묻는 얘기가 있다. “ 정신과 선생님이 개를 키우라고 해서 개를 키우기 시작했잖아요. 그래서 말인데요. 효과를 봤어요?” 그 대답에 나는 이렇게 말한다. “그럼요. 다른 건 모르겠는데 개를 키우지 않았으면 모르고 살았을 감정을 많이 배웠어요. 그러니까 효과를 분명 본 거죠”라고 말이다. 그렇다. 이는 한치의 거짓말도 없는 진심이다.
요즘 나는 나의 개들을 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라고 부른다.(영화 “아가씨” 부제) 바로 이런 나의 개들 덕분에 매사 따지고 들기 좋아하고 잘난척 어지간히 하는 무자식 개 팔자가 사랑을 배웠으니 이 보다 더 적확한 표현이 세상천지 어디에 있을까 싶어서. 그러니 이 정도면 그때 고양이 말고 개 키우라던 정신과 선생님 말 듣기 잘한 거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이제 나는 사는 동안 두 번 다시 해탈이가 다른 개를 헤치게 절대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우리 셋이 그냥 어디 무인도 가서 사는 일이 있더라도 말이다. 그러니 여러분도 끝까지 지켜봐 주시길 바란다.
이것으로 어느덧 이 시리즈 대장정이 끝났다. 아마 앞으로 한 두 달 교정과 편집 과정을 거치면 책으로 묶여 나오지 싶다. 그러면 다들 여러 권 사 주시기를 /뻔뻔/
언제나 열렬히 성원해 주심에 감사하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이상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