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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주사 Jul 27. 2023

이야기로 풀어보는 보도자료의 추억 2

질 것이 뻔한 게임에서 바람이 잘못했네

 

 바람과 해가 서로 힘자랑을 하였다. 지나가는 나그네의 옷을 먼저 벗기는 쪽이 게임의 승자가 되기로 했다. 바람은 훅하고 세차게 불어 대지만, 오히려 나그네는 옷으로 몸을 꽁꽁 싸맸다. 이길 조짐이 없자 해가 나섰다. 해는 나그네에게 슬며시 다가가 햇빛을 비췄다. 나그네는 옷을 벗고 물속에 들어갔다. 마침내 해가 승리했다.

      

바람은 논리 설득이고, 해는 직관 설득이다. 누구나 오차도 없이 이성대로 논리적으로 판단하고 싶다. 하지만 이상과 달리 인간은 1%의 논리와 99% 직관․감성으로 판단한다. 왜 직관이 좌우될 수밖에 없을까? 흔히 인간은 하루에 오만 가지 생각하고 판단한다고 한다. 첨부 1) 이성은 의식적으로 차근차근 신중히 규칙을 학습한다. 인간은 제한된 시간과 정보에서 빨리 판단해야 하기에 집중이 필요한 이성에게 맡기면 뇌 에너지가 과도하게 소비된다. 머리를 많이 쓰다 보면 ‘당 떨어졌어. 초콜릿을 먹고 싶어’라고 속으로 외치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그래서 인간 대부분은 점심 약속을 정하는 것처럼 본능에 충실한 직관․감정으로 빠른 판단을 내린다. 직감은 가끔 부정확하기도 하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여러 선택지 중 하나를 재빨리 결정하기에 에너지도 덜 소비하면서 가성비가 뛰어나다.

      

왜 우리는 보도자료에서 직관을 더 많이 활용해야 할까? 뒤에 설명하겠지만 전문가조차 이성보다는 직관에 휘둘린다. 인정하길 싫지만, 이 세상에는 직관에서 유도된 편견․편향․착각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은 없다.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첨부 2) 다른 하나는 읽는 이가 보도자료를 저녁에 본다. 저녁에는 직관이 발달하기에 직관을 활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게으름의 미덕이다. 뇌는 집중이 필요한 이성의 끈을 최대한 적게 사용하려고 한다. 설령 이성적 판단을 해도 모든 대안을 다 살펴볼 시간이 없어 쉽게 가려고 한다.

     

직관․감정은 보도자료뿐만 아니라 현실 대부분을 좌우한다. 마트에 가기 전 라면 등 생필품을 사기로 마음을 먹는다. 하지만 마트에 들어가는 순간 이성은 마비되고, 직관․감성에 좌우된다. 화장품 판매원이 “김태희와 같이 촉촉한 피부로 만드는 화장품이다”라고 속삭이면서, 지금부터 한 시간만 선착순 100분에게 반값으로 할인한다고 하면 어느새 지름신이 강림한다. 냉장고 판매원이 오늘 신용카드로 사시면 30% 할인에다가 설치비와 배송비 무료라고 외치면, 신용카드가 어느새 계산대 앞에 줄을 선다. 집에 와서 보면 계획대로 산 물건은 눈 비비고 봐도 없다. 구매 후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다음에는 꼭 필요한 물건만 사겠다고 다짐한다.

     

 바람은 나그네의 옆구리를 슬쩍 찔러야 했다. 인간은 어떤 선택지를 제시하느냐에 따라 반응이 달라진다. 보도자료에서 세심하게 배려해 보자. 보도자료의 어휘는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소가 여물을 먹듯 되씹기를 해야 한다. 전문용어를 그대로 보도자료에 사용하면 독자는 이해할 수 없다. 작성자도 모르는 사이에 ‘아는 것이 병’인 지식의 저주에 걸렸다. ○〇부에서 ‘기선 권현망 어업’이란 전문용어를 보도자료에 사용했다. 작성한 사람조차 이 의미를 몰랐을 수 있다. 권현망은 일본 신사에 있는 풍요의 신이다. 세심한 작성자라면 이것을 되씹어서 “끌그물 어망‘으로 살며시 고친다. 일명 넛지라고 부르는 세심한 배려를 더 알아보자. 숫자도 마찬가지이다. 7.1㏊’ 대신 ‘축구장 10개’로 바꾸면 독자의 머릿속에서 쉽게 연상될 수 있다. 문장부호도 세심하게 사용한다. 보도자료에서 연속된 쉼표 대신 한글맞춤법에 없는 세모표를 사용하는 이유도 읽기 쉽게 배치한 것이다.


바람이 옷 입히기로 프레임을 바꿨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〇청에서 여름 휴가철 오물․쓰레기 투기 등 산림 내 불법행위를 집중단속하고, 위법이 적발되면 과태료뿐만 아니라 『산림보호법』 등 관련 법에 따라 최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까지 처벌한다는 보도자료를 작성했다. 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준법의식이 부족하다는 프레임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한국법제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첨부 3) 우리나라 사람의 준법의식은 1991년 18%에서 2019년 74%로 올라갔다. 준법의식보다 “내 누군지 아니?”로 표현되는 사회지도층의 법 준수 미흡이 주요 원인이다. 그렇다면 준법의식을 강조하기보다 경제성의 관점으로 프레임을 전환해 보면 어떨까? 등산로 입구에서 쓰레기를 담아 오는 등산객에게 천 원짜리 로또복권을 지급한다고 하자. 백만 명이 가지고 오는 쓰레기도 10억 원이면 해결된다. 등산객은 자기 의지로 쓰레기 줍기에 동참했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또 혹시 모를 행운에 기대며 쓰레기 줍기는 재미있는 놀이로 생각한다. 이처럼 관점을 바꾸면 또 다른 세상이 보인다.


 첨부 1: A.K.Pradeep, 바잉브레인, 서영조 옮김(서울: 한국경제신문, 2013), 10쪽.

 첨부 2: Palmer, Melina, 소비자의 마음, 한진영 옮김(서울: 사람in, 2023), 41쪽.

첨부 3: 한국법제연구원, 한국인의 법의식: 법의식조사의 변화와 발전, (서울: 한국법제연구원, 2020), 80-95쪽. http://www.riss.kr/link?id=M15697444, (2023. 7. 24.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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