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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꿈은 무어 였어요?

꿈은 한갓 꿈으로 남은 엄마.

by 제이

내가 다니는 피트니스클럽의 관장님은 50대 여자분.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하셨다.
그걸 알고서 관장님을 보면 예전 무용하신 분답게 몸이 가볍고 우아하시다.
나는 새벽에 주로 운동을 다닌다.
새벽 시간 동네 헬스장에는 대부분 시니어들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7 순 후반이 훌쩍 넘어 보이시는 할머니가 운동을 나오신다.
키가 자그마하시나 단아하시다.
그런데 알고 보니 관장님의 어머니시란다.

언젠가부터 나는 그 할머니 안에서 무용가의 무언가를 본다.
세월이 좋았더라면, 그래서 여자들도 자기의 꿈대로 대학까지 진학할 수 있었더라면 혹 할머니는 무용을 전공하지 않았을까?
먹고살기도 힘든 그분의 어린 시절, 더욱이 여자가 고등교육을 받기엔 언감생심인 그 시절,
그분의 맘 한편에 무용을 하고 싶었을 수도 있었을 거다.
엄마의 그 꿈은 딸이 어릴 적부터 무용을 배우게 하고 결국 대학 진학까지 이어진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예능교육은 엄마의 경제적 지지와 의지가 없이는 안되므로.

엄마는 해방 이전 어릴 적, 일본에서 거류하셨다.
일본어는 아시지만 영어는 알파벳도 모르셨다.
엄마는 소설책 특히 일본 잡지 읽기를 좋아하셨다.
우리 어릴 때는 매일 아침 배달되는 신문에 인기 작가들의 소설이 매일 연재되었다.
70년대 초 조선일보에는 최인호 씨의 '별들의 고향'이 연재되었고 엄마는 그것을 즐겨 챙겨 읽으셨다.
"너네들 다 크면 내 보고 싶은 책 실컷 보는 게 내 소원이야"
다섯 자녀 키우기엔 공무원 아버지의 박봉으로 역부족이라 가게까지 운영하셨던 엄마.
부족한 수면으로 시간만 나면 코 골며 잠드시던 엄마.
식구들 뒷바라지로 정신없이 사셨던 엄마가 요즘 태어나셨다면 무슨 일을 하셨을까?
엄마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학교에서 영어 단어를 외우며 공부할 때 알파벳도 모르시는 엄마는 나에게 먹일 밥을 지으시고 쌀을 살 돈을 벌으셨다.
그 밥의 사랑과 헌신으로 나는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한 가정에 자식들이 평균 너덧 명이었던 우리 어린 시절.
그 자식들을 먹이고 공부시키느라 억척같이 일하셨던 엄마들.

내가 사는 도시에서 예전에 시니어 게이트볼 전국 대회가 열렸다.
그런데 그날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나름 지방 대표셨던 아버지가 딸네 집에 오셔서 묵으셨다.
아버지를 모셔드리느라 대회장에 간 나는 깜짝 놀랐다.
전국에서 모인 관광버스들.
내리는 빗속에서 우의를 입고 게이트볼 스틱을 드시고 전의를 가다듬으시는 수많은 자그마하신 할머니 할아버지들!
그래 저거야.
한국을 이만큼 성장시킨 주역들.
수많은 인재를 키우신 억척같은 저분들.
저런 억척으로 그분들이 직접 공부하셨더라면 우리보다 더 잘하셨겠지.
그런데 시대를 잘못 만나 꿈은 꿈으로 남고
어쩌면 꿈도 꾸어보지도 않고 허겁지겁 사셨다.
그냥 자식 잘 되는 걸로 만족하셨다.

<가수 린의 '엄마의 꿈'>

"엄마의 꿈은 뭐였어
소녀로 살던 시절에
누구보다 예쁜 아이였겠지
푸르던 날에 태어나, 나처럼 어른이 되고
그때까지 어떤 꿈을 품어냈을까
엄마 난 미안해
이제 와서 그게 궁금해
소중했을 꿈을 묻지도 못했던 게
처음부터 그냥 내 엄마로 태어난 게 아닐 텐데
묻고 싶어 엄마이기 전에 꼭 지키고 싶었을 꿈
사는 게 조금 팍팍해. 살수록 모두 어려워.
누구보다 잘 해내고 싶은 맘인데
엄마 난 잘 안돼 어른으로 살아가는 일.
이런 맘의 병도 엄마 웃음으로 나아.
아픈 데 없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곁에 있어
그거면 돼. 내가 원하는 건 그것 하나야
헤어짐의 시간이 다가온단 그 생각만으로
맘이 아려요
일초라도 붙잡고 싶어
어쩌면 엄마는 내 행복만을 바라다
하얀 새처럼 날아가 버릴 텐데
미안해요 이제 와서 새삼스레 꿈을 묻는 게
지난 얘기라며 잊었다지만
심었던 꿈이 내게 와서 꽃을 피우게
내가 더 잘 살게요 엄마"





엄마가 소천한 지 4년이 거진 되었다.
시간이 이렇게 흘러가 버렸다....
아파트 한편을 지나는데
화단 위로 하얀 나비 한 마리가 나풀거리며 오더니 내 곁을 스쳐간다.
엄마?

분명 당신 꿈이 있었을 텐데 자식 키우면서 꿈이 있었다는 사실도 모르고
이젠 돌아가신 엄마.
엄마 몫까지 행복하게 살게요.
딸아 행복하게 살아라.
어버이날에.


https://youtu.be/N0Fv0U55VZM?si=oPzWKBYarq9YsUy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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