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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한한 일.2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by 제이

칠십 년 넘게 살다 보니 참 희한한 일들을 많이 보고 많이 겪었다.
결혼 후 늦게사 교회 문을 두드린 후 더욱 그랬다.

신혼 때 병명이 채 밝혀지지 않았던 극심한 복통과 장출혈.
그러나 건강한 첫딸이 태어났고
주위의 권고로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년생으로 둘째 아들이 태어났다.
예수를 믿은 후 잉태한 그 아이는 그러나 다운증후군.
그러는 중에 남편이 2년간의 공부로 외국에 나갔고 1년 후 세 가족이 마저 가서 합류하여 주변 나라를 여행하며 잘 지냈다.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시작된 극심한 복통과 출혈.
남편 직장 따라 이사 간 소도시에서 급기야 입원.
친정어머니가 애들을 맡아가실 때
마지막으로 병원으로 애들 얼굴을 보이려 오셨다.
나는 1층 로비까지도 내려갈 기운이 없어 애들은 엄마 얼굴도 못 보고 그냥 갔다.

어디선가 출혈은 계속되고 있다.
갖가지 검사에도 원인은 못 찾아내고 낮 동안은 종일 링거줄을 매고 있다.
머리 위 링거 줄이 빙글빙글 돌고 있다.

스마트폰이 없었던 80년대.
가끔 링거 거치대를 끌고 휴게실 공중전화박스로 가서 동전을 연이어 넣으며 외가댁에 가 있는 딸에게 전화한다.
"엄마가 곧 데리러 갈게"
"엄마 거짓말.
접때도 그랬는데 안 왔잖아요."
목이 멘다.
초겨울에 입원했는데 봄이 가고 여름이 오고 있었다.

반년 만에 퇴원했다.
완치되어서가 아니라 90년대에는 의료보험이 연간 반년만 되므로.
누워만 있다 서니 어지럽다.
집안일은 다른 분이 와서 도와주셨다.
퇴원 후 한 달이 지나고 7개월 만에 만난 애들은 낯설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다.
오랜만에 만날 딸애를 위해 인형을 사서 딸애 침대에 놔두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온 딸은 그것을 집어던졌단다.
도대체 자기를 데리러 오지도 않은 엄마가 미웠단다.
엄마가 죽을지도 몰라 무서웠을까.

어쨌든 나는 살아 나왔으니 감사하지.

내가 죽을 것 같으면 미혼의 내 친구를 엮어주려고 했는데...
장애인인 아들, 까짓것
열 명도 키우겠네.

집 안의 걸레조차도 반가웠다.

예전 세례 주셨던 목사님께서 이 지방에 오셔서 교회를 개척하셨다.
교회 근처 신축 아파트에 이사하고 그 교회로 나가기 시작했다.

장출혈은 멈춘 것 같은데 복통은 여전하다.
복통의 두려움!
물이라도 먹으면 아프니 아예 굶기를 밥 먹듯 한다.

눈 가의 쌍꺼풀이 세 꺼풀이 되고 네 꺼풀이 되었다.

공중탕을 갔더니 한 분이 나를 보면서 하신 말.

"세상에. 저 바짝 마른 몸속에 내장이 다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네"

오산리 순복음 금식 기도원에 3일간 갔다 왔다.
영하 십몇 도의 날씨.
금식하며 예배당에서 밤을 지새웠다.
"주님 주님 고쳐주옵소서 고쳐주옵소서..."
여전한 통증.

버스로 왕복 한 시간의 거리에 장애인 특수 유치원이 생겼다.
기력이 좀 나아진 나는 아들을 그곳에 데리고 다녔다.

우리 교회에 할머니 전도사님이 계셨다.
어느 날 아들을 유치원에 데려갔다가 점심 늦게 귀가하는데 그분께서 정문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새로 입주한 이 아파트분들 집집마다 같이 전도합시다."
얼떨결에 그렇게 시작된 교회일.
나중에는 아들 손잡고 나 혼자 그 일을 했다.
어느 집에 가면 "왜 그동안 다시 오지 않으셨어요? 앞집 사람까지 같이 기다렸는데요."
어느 집에 가면 "애가 피아노 콩쿠르를 앞두고 있는데 교회 가고 싶어 하네요"
혼자 지내시는 어떤 할머니는 "이사 와 교회를 못 나가고 있는데 주일마다 데려다주세요"

그런데 놀라운 사실.
배가,
배가 안 아픈 거다.
어느 날은 아들과 귀가하고 그냥 집에 머물려 있으려다 생각나는 복통!
"에쿠 나가야지."
그렇게 나가면 하나님이 필요한 사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 명으로 시작한 구역이 대여섯 명이 되고 때로는 서너 명이 더 구역예배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다 아들 특수 유치원 자모들과 성경 읽기 모임이 시작되었다.
동네에서도 성경 모임이 시작되었다.

미국으로 이 년간 연수 가는 남편을 따라갔는데 그곳에서도 성경 모임이 있었다.

그러는 사이 비실비실 허약체의 내가 어느덧 에너지 넘치는 건강녀가 되어있었다.

몸뿐 아니라 영혼까지.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가 되어있었다.

언젠가 하나님을 뵈면
여쭤볼 말이 많았다.
하필 제가 왜 이런 아이를 맡아야 했나요?
왜 제가 병영도 모르는 병을 치러야 했나요?
그러나 나는 지금 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그분께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시려는 그분의 스케줄, 섭리.

참 회한도 하지.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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