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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률사무소 무진 Jul 13. 2023

업무방해죄로 고소당했다면?


1. 문제를 삼다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안 되는데,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된다고 그랬어요."


영화 '베테랑'에서 재벌 2세 조태오(유아인 역)가 극중에서 한 말입니다. 갑자기 웬 영화대사냐고 하시겠지만, 업무방해죄 사건을 설명하기에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있을까 싶습니다.


변호사가 사건을 대할 때 일반인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리걸마인드'입니다. 법학을 공부하면서, 사법시험을 준비하면서, 시험에 합격 후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15년 가까이 실무를 해 오는 여정에서 생겨난, 법령해석에 관한 머릿속 지도입니다. 법령이 바뀌고 새로운 판례가 나와도 길을 잃지 않고 올바른 결론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지요.


그런데 변호사 일을 하다 보면, 나름 자부하는 리걸마인드만 믿고 발을 내딛기가 조심스러운 영역들이 있습니다. 명예훼손죄가 그렇고, 강제추행죄가 그렇고, 또 업무방해죄가 그렇습니다.



2. 업무를 방해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형법 조문과 판례는 잠시 후에 소개를 할 테지만, 그 전에 과연 이게 왜 벌받을 일인지 생각해 봅시다. 법이란 것도 결국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합의에 따라 생겨나는 것이니까요.


냉면집에 간 손님이 있습니다. 그런데 냉면을 먹다가 시커먼 플라스틱 조각이 씹혀 하마터면 삼킬 뻔했습니다. 놀라서 뱉은 후 화가 나서 주인장을 불렀더니 "이상하다? 그게 왜 거기 들어갔지? 다시 한 그릇 가져다 드리면 되죠?"라고 합니다.


사례 1> 손님은 "방금 뭐라고 했어? 죄송하다고 빌어도 모자랄 판에 뭐? 한 그릇 더 가져다주면 되냐고? 사람이 죽을 뻔했는데 손님을 냉면 한 그릇 더 먹으려는 거지 취급해? 이따위 식당은 망해야 돼!"라고 길길이 날뛰며 의자를 집어 들어 식탁을 부수고 발로 식당 집기를 걷어찹니다.


사례 2> 손님은 집기를 부수지는 않았지만 주인장과 식당 종업원에게 큰소리로 항의를 했습니다. 점심시간이 한창이었는데 손님이 2시간 동안 고래고래 소리를 치는 바람에 손님들은 입구에서 모두 발을 돌려 다른 식당으로 갔고 결국 주인장은 오후 장사를 접어야 했습니다.


사례 3> 손님은 "이런 불결한 식당에 다른 피해자가 또 생기면 안 돼!"라며 식당 입구로 가더니 들어오려는 사람들을 막아서며 "제가 방금 여기 냉면을 먹다가 이런 플라스틱을 삼킬 뻔했어요. 주인은 사과도 안 하고 냉면 한 그릇 더 준다며 손님을 거지 취급합니다. 이런 식당에서 밥 먹고 싶어요?"라고 외칩니다. 당연히 손님들은 다 떠났습니다.


자, 과연 누가 잘못했을까요? 주인장과 손님 둘 다 잘못이라면, 누구의 잘못이 더 클까요? 잘못이 크다면 과연 전과자가 되고 감옥에 갈 만한 죄일까요?


누군가는 아무리 화가 났어도 식탁을 부수면 안 되다고 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장사해서 먹고사는 집인데 다른 손님들을 못 오게 막은 잘못이 크다고 할 것이고, 또 누구는 애초에 냉면에 플라스틱이 들어가게 한 식당 주인의 잘못이 크니 손님은 탓하면 안 된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형법은 과연 뭐라고 정해놓았을까요?



3. 법조문을 보면 알 수 있을까?


제314조(업방해) ① 제313조의 방법 또는 위력으로써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위 조문에서 "제313조의 방법"이란 "허위의 사실을 유포하거나 기타 위계로써"를 말합니다(형법 제313조 참조). 결국 우리 형법은 위계 혹은 위력으로써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자를 처벌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문은 이게 전부입니다. 이제 모든 궁금증이 풀리셨는지요? 아마 아닐 겁니다. 위계가 뭐고 위력이 뭔지 결국 해석이 필요한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담당하는 것이 실무에서는 바로 판례입니다.



4. 판례를 보면 알 수 있을까?


형법 조문에 근거하여 업무방해의 구성요건을 살펴보더라도 위계, 위력은 생각과 달리 판단 기준이 매우 모호할 뿐만 아니라, 최근 이 죄에 대한 인식이 많아져서 여러 사람이 이를 애용(?)하여 고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거 업무방해로 고소당하는 전형적인 사안들은 채용비리, 입사 및 학사비리, 노동쟁의 또는 음식점에서 술을 마시고 비교적 오랜 시간 동안 난동을 부리는 행위를 처벌하는 경우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공정성 시비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지요.


다음은 모두 실제 판례 사안들입니다. 업무방해로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까요? 결론은 아래에 따로 적겠으니 사례만 보고 한 번 유, 무죄 여부를 맞춰보시기 바랍니다.


(1) 아무개씨(45)는 2011년 5월 오전 8시15분쯤 대전 모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 들어가 교사에게 “내 딸에게 왜 벌을 주느냐”며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고함을 지르고 욕설을 퍼부었다.


(2) 서울 송파구의 한 치과에서 간호사가 구강검진 항목 중 엑스레이 사진촬영과 치석 제거가 학생 검진에 포함되는지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자 반말을 시작했다. 당시 화가 난 K씨는 "의자 가지고 와. 나는 1분도 서 있을 수 없으니 의자 가져와"라는 등의 말을 했다. 이후 간호사가 보건소에 물어봐야 한다는 이유로 바로 확인해주지 않고 다음에 다시 방문하라고 안내하자 K씨는 "지금 당장 보건소에 전화해"라고 따졌다. 이어 보건소가 휴무라는 간호사의 답변에도 만족하지 못한 K씨는 "너 이름이 뭔데. 가정에서 기본도 못 배우고 여기 나와서 일을 하고 있느냐"고 몰아붙였다. K씨가 20분가량 소란을 피운 탓에 다른 환자들은 치료를 받지 못하고 기다려야 했다.


(3) 대전 동구의 한 편의점에서 2+1 행사 중인 우유가 2개 밖에 없어서 구입할 수 없는 것에 화가 나 “이게 왜 안 되냐, XX, 그냥 해 달라, 여기서 장사하기 싫으냐”고 큰 소리로 말하면서 10여분간 소란을 피워 손님을 나가게 하는 등 편의점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기소


(4) 시내버스가 급정거한 데 대해 왜 이렇게 운전을 더럽게 하느냐며 욕설을 하고 고성을 지르는 등 약 30분 동안 소란을 피워 버스 운행을 경찰에 신고하여 출동할 때까지 버스 운행을 중단한 경우라면?


(5) 떡볶이 집에 음식 주문을 하던 중 식당 주인이 자신의 주문을 무시한다고 생각해 화가 나, 같은 날 오후 10시 58분부터 다음날 새벽 0시40분까지 18차례에 걸쳐 전화를 걸었다면?


(6) 누리꾼이 클릭하면 광고주에게 요금이 부과되는 네이버 파워링크를 이용해 경쟁업체 사이트를 부당하게 클릭한 것


(7) 주주총회에서 회사 직원들이 개인 주주의 발언권과 의결권을 제한했다면?


답은 이렇습니다.


(1) : 무죄

(2) : 무죄. 재판부는 "K씨가 다른 손님의 출입이나 영업행위를 직접 방해하지 않고 치과 직원들이 K씨에게 한 태도 등을 종합하면 고의로 업무를 방해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

(3) : 유죄

(4) : 무죄. 재판부는 “피고인의 행위가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족한 세력의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기 부족하다” 고 판단.

(5) : 유죄, 실형

(6) : 유죄. (대법원은 다만 부정클릭 방지시스템을 통해 걸러져 요금이 부과되지 않은 무효클릭은 업무방해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

(7) : 무죄 (대법원은 “주주총회에서 주주의 의결권 행사는 주식 보유자로서 자격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에 불과할 뿐”이라며 역시 업무로 인정하지 않았다.)


아마 정답률이 그리 높지 않았을 겁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법조인들이라고 해서 정답률이 높을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변호사의 능력이 부족해서일까요? 업무방해죄는 대법원까지 가면서 1심과 2심, 또 대법원의 결론이 서로 달라 엎치락 뒷치락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판사들 사이에서도 사람마다 결론이 달라지는 것이지요.



5. 변호사는 불평만 하고 있을 것인가?


그럴 수 없지요. 불평할 일이 아닙니다. 업무방해죄의 성격상 감수해야 하는 면이 있습니다. 바꾸어 생각해 보면, 이렇게 유무죄의 경계가 불분명하고 앞뒤가 안 맞는 듯한 판례들이 난무하는 분야는 오히려 변호사가 활약해야 할 몫이 많아집니다. 의뢰인에게 유리한 법리와 판례를 최대한 모아 끝까지 다퉈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의뢰인께 업무방해죄 실무의 혼란과 난맥은 분명히 주지시켜 드립니다. 저는 "집행유예 받아드릴 수 있습니다!"라고 광고하는 변호사가 아니니까요.



6. 업무방해죄를 악용하는 사람들


최근 업무방해 사건을 하면서 우려되는 점은, 당초 형법이 규율하려는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 영역에까지 이 죄가 악용되는 경우가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형사법은 최소한의 도덕입니다.

법조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어떤 것이 선하고 나쁜 행동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누가 어떤 행동을 하면 어떤 처벌을 받는지 미리 법률로 명확하게 정해져 있기에 우리는 안심하고 하루를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꿈꾸었던 이상과 같을 수는 없는 현실의 세상에서는, 누군가가 법을 이용하여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사소한 일로 처벌받게 하여 전과자로 만드는 것이 가능합니다. 문제 삼지 않으면(넘어가면) 문제가 안 되는데(평온), 문제(고소)를 삼으면 문제가 되기 때문(기소)입니다.


영화 속에서 조태오가 한 저 영화 대사는 사실, 조정래 작가의 소설 정글만리에서 인용된 중국 속담이라고 합니다. 역시나 역사는 어제도 오늘도 또 반복되나 봅니다.


현행 업무방해죄는 평범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이라 할지라도 한순간 재수 없으면 언제든 휘말릴 수 있는 죄입니다. 그만큼 먼저 알고 잘 대응해야 억울함이 남지 않습니다. 조금 양보하거나 더 많이 손해 보면 될 일이겠습니다만, 그게 그렇게 말만큼 쉽지 않은 세상입니다.


업무방해죄는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발생하고, 업무방해죄 해당 여부에 대해서는 어떤 행위 자체만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주위 상황, 범행의 일시, 장소 및 범행의 목적, 업무의 종류, 피해자의 지위 등 모든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기 때문에 그 결과를 쉽게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만약 업무방해 사건에 연루되었다면 다른 사람의 사례만 보고 안심하거나 속단할 일이 아닙니다. 전문가와 함께 사실관계를 꼼꼼히 분석한 후, 수사기관과 법원에 어떻게 내 억울함을 호소할지 구체적인 전략을 세워야 잘 대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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