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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st truth Mar 22. 2020

데이트 폭력 일지

벙어리로 지낸 4년의 시간.


1.


지난여름 나는 데이트 폭력, 여성 혐오 살인 현장에 가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4년 전 나의 데이트 폭력을 당한 경험에 대해 처음으로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무료법률센터에서 내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니, 일단 증거가 많지 않고, 상대방이 그 증거에 대해서, 거짓말을 하며 없었던 일이라고 발뺌할 수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거기서 현재 법적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되어있다고 한다. 그리고 앞으로 남은 공소시효기간은 1년이 채 안된다는 것.


발에 힘이 빠졌다. 그래도 내가 무슨 기대를 했을까.

이게 지금의 현실인데.


나는 이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이야기를

함으로써, 나는 이 억울함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다고 믿는다.

데이트 폭력, 남편이 부인을 살해, 혹은 내연남이

내연녀를 살해 한 장소를 방문했다.

그리고 거기서 사진을 남겼다.


상상을 해보았다. 피해자가 느꼈던 감정에 대해서 상상을 해 봤다.


모던하게 재구성된 호텔방은 그런 일이 없을 것처럼만 느껴졌다.


나는 이미지를 드라마틱하게 연출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이 모든 것이 없었던 일처럼 깨끗하게 재 단장한 호텔을 싱겁게 담았다. 하지만 열심히 찍었다.


파리로 돌아와서, 사진 정리를 하고자 메모리 카드를 찾았다.

하지만 메모리 카드는 사라졌다.


어디서 어떻게 사라졌는지 모르겠다.


오랫동안 사진업을 하면서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손에 잡히지 않는 증거처럼, 메모리 카드도 사라졌다.



2.우리 집 벽장 뒤에서 녹음기를 발견하였다.



회사에서 퇴근할 무렵 나는 남자 친구에게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그는 홍대 근처에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하였다. 그는 다큐멘터리 프리랜서 사진작가로 주 무대가 홍대였다. 그리고그는 나에게 언제나처럼 그가 편리한 방향으로 장소를 정하고 그리로 오라고 통보했다. 밀리는 퇴근길을뚫고, 한 시간 반쯤 지나, 나는 그의 집에 도착하였다.

그는 웬일인지 내게 밥을 사고 싶다고 하였다 참으로 의아했다. 평소에 그는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할 타이밍에, 화장실을 가거나 멀쩡했던 신발 끈을 고쳐 묶고 있던 버릇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오랜만에 네가 사준 밥 얻어먹어 보자.’ 하지만 식당 역시 그가 좋아하는 생선구이 집으로만 가야 했다. 나는 사실 비린내가 나는 생선이 싫었지만, 부산 출신인 그가 서울에서 그나마 집밥다운 건 생선밖에 없다는 말을 한 터에, 그냥 그를 따랐다.


생선 냄새 지긋지긋했지만, 내가 예민하게 굴면, 그는 까칠해지기에 십상이기에 가만히 있었다.

밥을 먹고 난 후, 나는 그에게 커피를 산다고 했다. 그는 괜찮다며 내가 끓여주는 차 한 잔이 먹고 싶다고 하였다.


우리 집은 그의 집에서 도보로 15분, 차로 5분 거리에 있었다. 여느 때처럼 그는 자연스럽게 내 차를 운전하고 싶어 했다. 그가 지난 일 년간 내 차를 운전하며 낸 사고들이 잦았다. 그 범칙금들은 다 내 이름 앞으로 날아오기 때문에, 내가 갚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걸 앎에도 불구하고 차 키를 건네주었다.

그는 자신의 운전하는 모습을 사랑하는 것 같았다. 한 번의 회전으로 주차선에 정확히 주차할 때는, 자기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는 미소를 지었다. 내게도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만 같았다.


주차를 마치고 그는 우리 집에 들어왔다. 꼭 자연스럽게 차를 마시다가 우리 집에서 자고 갈 사람처럼 행동했다. 차를 우려낸 후 나는 편한 옷으로 갈아입으러 방에 들어갔다. 나는 사실 오래전부터 그와 헤어지고 싶었지만, 협박이 두려워 쉽게 헤어지자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서서히 이별 준비를 하고자, 그가 나에게 빌려 간 물건들이 무엇이 있는지 확인을 해보고 싶었다.


갑자기, 자의 행방이 궁금해졌다. 그가 빌려 갔던 거 같기도 하고 아니면 내 착각인가 싶기도 해  확인차 자를 찾기 시작했다.

70cm가 넘는 자를 넣을 곳이 마땅치 않아서, 나는 항상 벽장 뒤에 자를 숨겨두곤 했다.


그런데 자는 보이지 않았고, 벽장과 벽 사이 틈에 작고 검은 물체가 끼워져 있는 것이 보였다. 이 것은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나는 무엇인지 확인해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

벽장을 옮기다가는 그가 소리를 듣고 방으로 올 것만 같았다.


그 낯선 물체와 그가 연결되어 있을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나는 그를 빨리 보내야만 했다. 그리고 그가 떠나자마자 바로 그 물건을 확인하러 방으로 갔다.

그것은 녹음기였다.


녹음이 진행되고 있는 상태였다.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메모리카드를 꺼내 재빨리 녹음 내용을 확인하였다. 녹음 내용 초반은 그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설치하는 소리, 마지막으로는 그가 나가면서 우리 집 문이

닫히는 소리였다. 이것은 분명한 주거 침입이었고, 도청 죄였다.


며칠 후 그에게 전화가 왔다. 녹음기를 달라고, 그리고 자신이 녹음기를 설치할 수밖에 없는 정당한 이유를 나에게 설명했다. 나의 행동이 의심이 돼서 어쩔 수 없었다나. 개자식.


나는 그 녹음기의 행방을 모르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나에게 온갖 욕설과 함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는 연애 시에도 폭력을 행사했는데 욕은 이제 들어도 아무렇지 않았다.


나는 그의 폭언에, 폭력에 적응이 되어가는 게 너무 무서웠다.

나는 그냥 그랑 인연을 끊고 싶었다. 더 이상은 그 괴물 같은 얼굴을 보기 싫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기다렸던 이별을 하였다.


그는 나와의 이별에 대한 감정을 구구 절절 자신의 페이스북에 써놓았다. 물론, 그는 자신이 항상 피해자인 행세를 하였다. 그에게는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스토리를 장황하게 설명하는 재능이 있었다. 진정한

스토리 텔러였다. 자신의 사진으로 글로 심금을 울릴 줄 알았다.


이별 후, 나는 못된 년이 되어있었고, 많은 사람을 잃었다. 그리고 4년을 벙어리 상태로 있었다.


3. 한국 여성의 전화 방문


2019년 8월 은유 작가님께서 소개해주신 곳에서 무료상담을 받았고, 더 이상 벙어리로 그만 있어야겠다고 다짐하였다.

그리고 좀 더 깊은 상담을 위해 한국 여성의 전화를 방문하였다.

이 곳을 방문하기 까지가 왜 이렇게 오래 걸렸을까...

좀 더 일찍 왔으면 좋았을 것을...

그곳에서 주신 데이트 폭력 관련 설문지에 답변을 체크하는데, 여러 가지 형태의 폭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나는 그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다.


폭력이 사라지는 방법은 폭력에 대한 계속 이야기하는 것, 말을 하는 과정에서

용기가 생김. <은유 작가님>


4. 벙어리로 지낸 4년의 시간.


그 일이 있던 후,  나는 나의 집에서 하루하루 도망치고 싶었다. 밤에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랐다. 헤어진 후에도, 그놈은 우리 집 근처를 맴돌기도 했고, 어느 날 밤에는 초인종을 누르기도 했다.      


나는 숨소리를 내지 않고 집에서도 가장 구석으로 숨었다.     


그 놈이 만들어 낸 이상한 소문이 들려도,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대들 힘도 용기도 없었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시간이 흐르기만 바랬다. 사람들이 나의 존재를 잊기를 바랬다.               


4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그 집에서 떠나 멀리 이사를 갔다.     


하지만, 나의 기억은 더욱 선명해져 갔고, 그때 폭력을 당하고만 있었던 내가 너무 안쓰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놈에 대한 분노는 점점 커져갔다.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벙어리였던 나는 어느 시점에서부터 꿈에서 그놈을 만나면,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벙어리인 상태였다.           


2020년 3월 19일


현재 그 놈은 사진기자로 잘 살고 있다.




나는 계속 이야기를 해 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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