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결혼한 지 1년쯤 지나 내가 임신을 하고 출산을 앞두었을 무렵.
남편이 나에게 물었다.
"아이 낳으면 여자는 애가 1순위가 된다는데. 나는 뒷전으로 밀리는 거 아니야?"
"걱정 마~! 애는 1순위! 여보는 0순위! 나는 애보다 여보가 더 중요해. 아이보다 부부사이를 더 소중히 하자. 알았지?"
손가락 걸고 꼭꼭 약속하자던 그 여자는 출산과 함께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이를 낳자마자 내 삶의 1순위부터 100순위정도까지는 모두 아이(+아이와 관련된 모든 것)가 차지했다.
100순위를 넘어서도 남편의 존재는 흔적조차 없었다고 해야 할까. 무튼 나는 남편도 잊었고, 우리의 애정 가득했던 부부사이도 잊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기억에 남는 부부싸움조차 없던, 천생연분(인 줄 알았던) 부부는 아이가 세상에 나온 이후로 내내 싸웠고(싸웠다기보다는 내가 일방적으로 화를 냈던 것 같다. 반성합니다.) 남편이 점점 밉고 싫었다.
생각해 보니 아이를 낳기 전에는 각자 1인분의 몫을 하면 되었기에 서로 터치하지 않고 생활할 수 있었지만 육아는 혼자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남편은 눈치와 센스가 부족했고, 시키지 않으면 알아서 하는 법이 없었다. 눈앞에 뻔히 보이는 물건도 못 찾아서 사람 속을 터지게 했다. 나도 아이 키우는 건 처음인데 모든 걸 남편에게 알려줘야 했고, 몇 번을 알려줘도 남편의 머릿속은 수없이 리셋되었다.
방문을 쾅 닫아서 겨우겨우 재운 아기를 깨우기 일쑤였고, 내가 우는 아기를 달래며 남편에게 쪽쪽이나 손수건을 갖다 달라고 하면 항상 있는 자리에 있는 물건도 찾지를 못해서 결국은 내가 애를 안고 직접 찾으러 가야 했다. 속에서 열불이 났다. 백일이 되기 전에는 아이가 밤에도 1시간 반, 2시간 간격으로 깨서 밤수유를 해야 했는데 여러 날을 그렇게 지내다 보니 어느 순간 나는 좀비처럼 하루를 보냈다. 밤에도 낮에도 내내 피곤했고 정신이 몽롱한 상태로 24시간을 보냈다. 수유하다가 졸아서 아기를 바닥에 떨어뜨릴까 봐 무릎과 허리가 아픈데도 소파에 앉아서 수유를 할 수 없었다. 자다가 깬 아기가 벼락처럼 울어대는데도 한 번도 깨지 않고 밤잠을 잔 남편은 아침에 나에게 '어제 애가 한 번도 안 울더라. 통잠 잤나 봐.'라고 헛소리를 하다가 방에서 쫓겨났다. 차라리 혼자 있으면 내가 혼자니까 애를 본다 하겠지만 밤에 울면서 깨는 아기를 혼자 달래면서 내 앞에서 드르렁드르렁 코 골면서 자는 남편 꼴은 차마 못 보겠어서 각방을 쓰자고 했다. (남편의 작전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방금 들었다.)
무튼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점점 남편이 싫어지더니 아이가 3살, 4살이 되었을 무렵에는 남편이 너무 꼴보기가 싫어서 남편이 내 시야에 들어오는 것도 싫고, 남편이랑 계속 살아야 하는 미래가 끔찍하게 느껴졌다.
나보다 나이도 많고 어른스러운 줄 알았더니 혼자서 밥 한 끼를 못 차려먹고, 빨래도 못하고, 설거지시키면 그릇에 번들번들 기름기가 흐르고, 아이 좀 보라고 하면 보고만 있고, 애가 어린데도 시키지 않으면 청소할 생각도 없고, 외식을 할 때도 내가 아이먼저 이유식 먹이고 챙기는 동안 음식을 다 먹어치우고....
내가 성인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한 건지, 나이만 많은 아들을 하나 더 키우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낳은 아들은 이쁘기라도 하지, 어머님이 낳은 아들은 전혀 이쁘지가 않았다.
여보, 우리는 부부가 아니야. 그냥 주소공유관계야. 우리의 미래는 졸혼이야.
-그당시 내가 뱉은 말들-
이렇게 평생 살 수 있을까.
지금은 아이가 있으니까 아이 엄마로, 아이 아빠로 가정을 이루고 살지만 나중에 아이가 커서 자신의 가정을 이루고 떠나면 나랑 남편이랑 둘이 남는데.. 아악!!! 생각만 해도 그건 악몽이었다.
'지금은 네가 너무 힘들어서 그래.'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져.'
'그래도 나중엔 남편밖에 없어.'
주변에서 여러 인생선배들이 나에게 조언을 해줬다.
그땐 콧방귀를 뀌었다.
아이가 자라며 한 사람의 몫을 하기 시작하면서 내가 해야만 했던 수많은 의무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숨통이 틔이기 시작했다.
어랏.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면서 남편이 조금씩 덜 밉기 시작했고 40대 중반에 접어든 그가 조금씩 안쓰럽기 시작했다.
흰머리는 왜 이렇게 많이 나는 거야. 나이들어 보이게.
'귀찮아 죽겠어.' 하면서 염색을 해줬다.
아침에 왜 이렇게 못 일어나는 거야. 그러니까 새벽까지 게임 좀 하지 마.
'대체 몇살까지 게임을 하는거야.' 하면서 실리마린을 챙겨줬다.
결혼 10주년을 맞으며 친정식구들에게 들은 축하(?)의 말은,
'이혼한다고, 못 살겠다고 할까 봐 걱정했는데 10주년을 맞이하다니 감개무량하다.'였다.
남편은 여전히 눈치가 없고 센스도 없으며 집안일은 꽝이고 여전히 시키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키는 일도 제대로 못한다.
그는 변함이 없다.
그가 변하길 바랐던 내 마음이 변한 거겠지.
그러다가 내가 공무원을 그만두기로 했을 때, 나의 결정을 수용해 준 남편에게 고마웠다. (받아들이기 어려웠을텐데 남편은 내색하지 않았다.)
이제는 혼자 일하는 남편에게 내내 미안하다.
집안일도 홀로 굴러가는 게 아니고 누군가의 대가 없는 노동력이 들어가긴 하지만 내가 일하던 사람이었어서 그런지 바깥일의 고됨을 너무 잘 알아서 자꾸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 키우는 동안 남편과 둘만의 시간을 가진 적이 거의 없었다. 우리 둘이 시간을 보내자고 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그러는 게 부모로서 직무유기 같았다. 직장과 육아를 병행하는 게 나에겐 너무 버거워서 쉬는 날이 되면 정말 그냥 누워서 쉬고만 싶었다. 몸이 피곤했는지, 마음이 무기력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쉬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현충일 전날인 6월 5일. 남편 회사에서 갑작스럽게 직원들에게 휴가를 줬단다. 아이 학교는 재량휴업이 아니어서 아이는 학교를 가야 했다.
"여보, 우리 또 영화 보러 갈래?"
"좋아."
5월 1일 근로자의 날에도 아이는 학교를 가고 남편과 나는 영화를 봤다. 남편과 둘이 영화를 본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거의 8~9년만인듯) 우리가 영화 보러 가는 걸 알게 된 아이가 자기도 학교 안 가고 싶다고 투정을 부렸다. 자긴 학교 가는데 엄마 아빠는 둘이서만 놀러 간다고 질투 아닌 질투를 했다.
그래서 이번엔 아이에게 비밀로 하고(남편은 출근한다고 하고, 나는 약속이 있어서 나간다고 했다.) 아이 등교시키자마자 서둘러 극장으로 갔다.
마블영화를 좋아합니다. ^_^
아침댓바람부터 팝콘까지 먹으면서 영화를 봤다. 끝나고는 둘이서 맛집을 찾아가 파스타를 먹었다. 데이트하는 기분이었다.
직장생활을 할 때 나의 휴가는 아이에게 맞춰져 있었다. 아이 학교의 재량휴업일, 방학, 아이 아파서 결석하는 날... 변수가 많아서 휴가를 마구잡이로 쓸 수 없었기에 대부분은 아이돌봄에 맞췄고. 그래서 가끔 혼자만의 시간이 너무 필요해서 가족들에겐 말 안 하고 연가를 쓰고 혼자 몰래 집에서 쉬었다. 굳이 뭘 그렇게까지 하냐 싶겠지만 나에겐 그렇게 숨 쉴 구멍이 필요했었다. 그래서 남편과 따로 시간을 갖는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일을 관두고 집에 있으니 남편은 좀 더 맘 편히 회사일에 집중할 수 있고 내가 덜 예민해져서 자신도 편해졌다고 한다. 다만 외벌이의 특성상 미래가 불안정하고 걱정이 많아졌지만 예전보다 좀 더 책임감 있고 적극적으로 업무에 임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무렴 맞벌이보다 나을 리는 없겠지만 그렇게 말해주는 남편에게 고맙다.)
아이는 내가 집에 있어서 자기가 학원뺑뺑이를 돌지 않고 수업 후에 바로 집에도 올 수 있고, 놀이터에서도 자유롭게 놀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단다. 예전엔 아파도 심하지 않으면 학교를 가야 했는데 지금은 조금만 아파도 집에서 쉴 수 있어서 좋단다. (으잉?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