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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난 Aug 10. 2023

초등 4학년 아이가 준비한 엄마 생일선물

그냥 선물 아니죠. 무려 선물 3종 세트입니다.

아이는 어릴 때부터 다정하고 스윗했다.

한글을 깨친 이후로는 엄마의 생일마다 고사리 손으로 편지를 써줬다.


올해 아이는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고 처음으로 용돈을 받게 되었다. 용돈은 주 1회 천 원을 받고, 종종 특별보너스(할머니나 할아버지가 가끔 몇만 원을 주시곤 한다.)가 있어서 천 원의 용돈이 부족하지 않다고 했다. 용돈의 주 사용처는 동네 마트이다. 놀이터에서 놀다가 친구들과 마트에 들러 아이스크림과 젤리류를 플렉스하곤 한다.


얼마 되지도 않는 용돈을 모았다고 엄마의 생일선물을 사주겠단다.



엄마, 엄마 생일날 같이 다이소 가자.
내가 생일선물 사줄게.
3천 원까지 마음껏 골라.


아이의 미술 학원에서 지난주 이번 주 2주에 걸쳐 걱정인형 만들기 시간이 있었다.

아이는 그 인형을 이쁘게 만들어서 내 생일선물로 주겠다며 나에게 미리 좋아하는 색깔을 물었다.

만들어와서는 파티할 때 서프라이즈 한다며 나한테는 보여주지도 않았다.



2주간 도안부터 바느질까지 직접 했다고 한다.(미술학원 쌤이 보내준 사진)


생일 파티를 하기로 한 날, 오전에 아이와 함께 다이소에 갔다. 3천 원까지 선물을 고를 수 있고 생일카드도 자기 돈으로 따로 사겠단다. 아이가 용돈으로 사주는 첫 선물인데 자주 쓰고, 오래 가지고 있을 수 있는 거면 좋을 것 같아서 심사숙고해서 에코백을 골랐다. 몇 개를 골라서 어깨에 메고 아이랑 남편 앞에서 패션쇼(?)도 했다. 두 남자가 만장일치로 같은 디자인의 에코백을 선택했다. 이 에코백, 엄마가 평생 간직할게.



엄마 생일선물 세트(에코백+직접 만든 인형+생일카드)


저녁때 우리 가족과 친정엄마와 동생까지 다섯 명이 모여서 생일파티를 했다. 맛있지만 조금 비싼 스테이크집에서(생일자가 쏘는 게 우리 집 규칙. 우리 집만 그런 건 아니죠?) 맛있게 스테이크를 먹고 생일 케이크에 초를 꽂고 축하 노래를 부르고 선물 전달식이 있었다.


어째 우리 아들의 표정이 생일자인 나보다 더 뿌듯하고 더 행복해 보였다. 콧구멍이 벌렁벌렁하는 게 보였다. 쑥스러울 때, 스스로 자랑스러울 때, 부끄러울 때 많이 나오는 표정. 그러면서도 시크하게 나에게 생일선물 세트를 건넸다.


엄마 생일 축하해. 내 선물.

꺄아~ 어머 어머. 너무 좋아. 최고 최고.

리액션은 공중파 방송의 방청객들 기죽을 정도로 해줘야 한다.


나는 아들의 편지를 좋아한다. 어버이날이나 생일이면 다 필요 없고 잊지 말고 편지를 써달라고 한다. 푸하하하 빵 터지는 내용이 매번 들어있다. 기대하면서 읽는 마음이 너무 행복해서 항상 바라고 기다리는 선물인데 이번 생일카드도 기대 이상이었다.



아이에게 허락받고 생일카드를 공개한다.

<참고>부분이 의미심장하다. 자기가 생각해도 진짜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진짜라고 강조하는 걸까? 초4 남자아이의 마음을 내가 다 알 수는 없다.


그림이 너무 귀여워서 혼자 웃었다.

정성가득 생일축하카드


♡사랑하는 어머니♡
안녕하세요. 저는 아들 하니예요.
본론 들어가기에 앞서 얘기를 좀 해드릴려고 합니다.
일단 제가 복주머니를 뽑은게 당연해요.
(*돌잔치때 복주머니를 집었음)
왜냐하면 이렇게나 지니어스하고 큐리어스하고
큐티하고 뷰티풀한 저의 어머니 '3
쭈!오!옥! 쪼오옥!
이제 본문으로 넘어가서 생일 축하드리고요.
음... 일단 지금은 제가 편지를 쓰고 있지만
읽으실때는 식당에서 갰죠?
식당에서 잘 읽으시고 재밌게 생일 만끽하세요.

제가 ♡하는거 알죠?
♡ 해피벌스데이

-사랑하고 이쁜 엄마를 또 사랑하는 아들


엄마, 편지 읽어봤어? 맘에 들었어? 걱정인형 어때? 잘 만들었어? 잘 때 걱정인형 갖고 자니까 걱정 없어져? 잘 잤어? 근데 진짜 잘 만들었지? 엄마 이 가방은 맘에 들어? 걱정인형 내가 바느질한 거야. 도안도 내가 만들었어. 엄마가 좋아하는 색으로 골라서 만든 거야. 맘에 들어?


우리 아들 말 많은 건 정말 못 말려. 엄마 귀에서 피날 것 같아.


행복한 생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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