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 저장하든 그건 아들의 자유
아들은 초등학교 5학년이다.
얼마 전 아이와 같이 본 <독립 일기>라는 웹툰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엄마를 '세계관 최강자'로 입력해 두었다. 그걸 보고 아이랑 나랑 웃었던 기억이 있다.
아들은 종종 핸드폰의 연락처 저장 이름을 바꾸곤 하는데 나랑 싸우고 나서는 나쁜 말을 써 놓기도 하고, 우리 관계가 좋을 때는 애정 뿜뿜한 애칭을 써두기도 한다. 가끔씩 훔쳐보는 재미가 있다. (간혹 마음 상할 수 있음 주의!)
아들의 핸드폰에 엄마는 뭐라고 저장되어 있을까?
아들의 핸드폰을 열어 보았다.
너무 길어서 저장한 이름이 옆으로 계속 쭉쭉쭉 나아간다.
미녀라니. 과거의 남친들에게도, 지금의 남편에게도, 심지어 엄마아빠에게도 들어보지 못한 말인데... 아들을 낳으니 별소릴 다 들어본다.(미소를 감출 수 없다.)
아직 안 끝났다. 길다.
귀여운데 이쁘기까지 하다니. 그 어려운걸 내가 해냈나보다.
심지어 희소성까지!
화룡점정.
공주 등장.
이 몸이 바로 45살 먹은 공주다.
이 세상 공주 김ㅇㅇ
누구보다 미녀인 우리 엄마는
너무나도 귀엽고 이쁜
이 세상에 하나뿐인 공주라네
글짓기 아니고, 일기 쓴 거 아니고 아이 핸드폰에 저장된 내 이름 맞다.
평소에도 아들이 가끔 지 기분이 좋을 때 부르는 노래인데('바다의 왕자 마린보이'를 개사함) 그걸 핸드폰 이름으로 해놨네. 저 노래를 들었던 내 동생(아이의 이모)은 헛구역질을 했던 것 같기도 하고.
(혹시 속 안 좋으신 분들은 토하고 오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빠는 뭐라고 해놨냐면,
이블 데빌.
evil devil.
사악한 악마. 악한 사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가여운 남편 ㅋㅋㅋㅋㅋ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은 아직 사춘기가 오지 않았는지 아직까진 엄마를 무한히 사랑해 주는 스윗보이다.
이제 곧 유효기간이 끝날지도 모르겠지만 이렇게 아낌없이 무한한 애정공세를 받을 수 있으니 아들 키우는 것도 엄마에겐 큰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