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한PD 에세이
현재 10일을 넘게 지방에서 여행 콘텐츠 촬영 중이다. 우리 팀의 촬영을 도맡아 해주고 있는 조경호 촬영감독님.
조감독님은 EBS 세계테마기행, 길 위의 인생, KBS 특집 다큐멘터리 등 굵직굵직한 프로그램들을 촬영했던 25년 차 베테랑 촬영 감독이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같은 차를 함께 타기도 하고 옆에서 내가 촬영 보조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경북 영주에서 촬영 마지막 날.
여행 콘텐츠 출연자인 여행전문프로듀서 오성민 선배와 일러스트레이터
밥장 작가님이 강 가운데에 놓인 다리를 걸어가는 씬을 촬영해야 했다.
나는 당연히 감독님이 강 다리 측면에서 앵글을 잡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내 예상을 뒤집고
조감독님은 골프 선수 박세리처럼 쿨하게 양말을 벗더니 무거운 카메라와 트라이포드를 덥석 들더니 물 안쪽으로 들어갔다.
"감독님 조심하세요"
나는 걱정되는 마음이 먼저 앞섰다. 강물이 내려오는 세기는 세지는 않았지만 혹시나 미끄러질까 봐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걱정하지 마요. 뷰파인더 화면에 물이 잘 보일 때 사람이 걸어가는 게 더 예뻐"
감독님은 이렇게 말하며 씩 웃고는 촬영을 이어갔다.
나는 멀찌감치 촬영하는 감독님을 보면서 영상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감독님은 절대 편집을 위한 촬영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단 한 컷을 촬영하더라도 그 컷에 대한 의미가 있어야 하며 촬영감독이 바라보는 시선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에 충실하면 됩니다. 그림이 제대로 촬영이 안된 것은 기본에 충실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기본에 충실한다는 것. 어쩌면 살면서 가장 쉽지만 가장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우리는 일하는 매 순간 컨디션도 다르고 상황에 따라 타협해야 되는 순간도 올 것이고
합리화도 해야 하는 순간이 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 순간 기본에 충실하기가 오히려 더 힘이 들 수도 있다.
조감독님도 강물에 들어가지 않고 측면에서 촬영해도 됐었을 것이다. 하지만 좀 더 좋은 컷, 좀 더 예쁜 컷을 담기 위해 그리고 기본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최고의 한 컷은 최고의 콘텐츠는 최고의 방송 프로그램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모두가 기본에 충실했을 때
그 마음이 모아져 좋은 콘텐츠가 만들어짐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