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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한PD Apr 10. 2022

마흔 살, 나에게 온 몸의 초대장

독한PD 에세이

심장과 맥박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어지러워서 서있기도 힘들었다. 당황스러웠다. 

일단 이불을 꺼내고 바로 누웠다. 


'몸이 왜 이러지? 119를 불러야 하나?'


홀로 방 안에서 두려움과 불안함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심장과 맥박이 다시 안정화되기만을 기다렸다. 


몸에 신호가 왔다. 



올해 나이 마흔 살, 15년째 PD 일을 하며 처음 겪는 일이었다. 


사실 몇 개월 전부터 제작하던 방송 프로그램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터였다. 내용 자체가 어려워서 공부도 많이 해야 했고 편집도 거의 한 달을 넘게 하면서 거의 쉬지도 못했다.


일단 쉬면 낫겠거니 하고 이틀을 쉬었지만 이번에는 기분 나쁜 어지러움 증상도 나타났다.


걷는데 걷는 것 같은 느낌이 아닌 허공을 걷는 느낌. 그러다 의식을 잃을 것만 같은 느낌. 내 몸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안 되겠다. 이러다 큰일 날 것 같았다.


다음 날 어머니와 같이 강남 삼성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한참을 기다려 코로나 검사와 심전도 검사 그리고 엑스레이와 피검사를 했지만 이상이 없다고 했다. 코로나도 음성이었다. 허탈했다. 하지만 어지럼증은 병원 지하 식당에서도 나타났다. 몸에 이상이 있는 것 같은데 병원에서는 이상이 없다고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결국 지인의 소개로 정신의학과에 가게 됐다. 증상을 말했더니 의사 선생님은 심장과 맥박이 빨리 뛰는 경험을 다시 안 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신경안정제와 불안 안정제 약을 처방해 주었다.

 

'내 몸에 온 신호의 근원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스트레스로 인한 공황 발작 같았다. 


전조증상은 있었다. 편집하면서 오른쪽 눈 밑 떨림 증상이 나타났다. 몇 주가 지나도 멈추지 않아 단순히 마그네슘 부족이라고 생각하고 약국에서 마그네슘 약을 사서 먹었지만 눈 밑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또한 프로그램 마스터 시사하는 날. 잠시 시간이 남아서 집에 왔는데 살짝 어지러움 증도 왔었다. 스트레스와 만성피로까지 겹친 상태에서 몸에서 조금씩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와중에도 버티면서 프로그램 마무리를 져야 하는 게 PD의 숙명이다. 


더군다나 나는 프로그램 제작 외에 시간이 날 때마다 짬을 내서 내 유튜브 채널에 올릴 영상도 편집을 했고 영어 공부도 해야 했다. 몸은 한 개인데 여러 일을 해내려고 스스로를 더 압박했다. 그렇게 물을 막고 있었던 댐처럼, 스트레스를 막고 있었던 자율신경계가 무너져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너무 열심히 살아서 쉬라고 몸에서 신호를 보낸 것은 아니었을까? 


지인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몸의 신호는 PD 님께 도착한 인생 최고의 초대장입니다." 





초대장을 받았으니 내 몸에 대해 더 알아차리고 더 신경 쓰고 더 사랑해 주라는 뜻이었다. 나는 그동안 혹사시켰던 내 몸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앞으로 더 많이 발견하시고 더 많이 아껴주시고 더 많이 사랑해 주시면 되세요. 과거에 얽매일 필요도 없고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불안을 끌어다 사용할 필요도 없고, 오직 지금 이 순간만 즐겨보세요"


지인이 건네는 최고의 위로였다.


 늘 프리랜서로 살면서 불안했다. 매달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었다. 잠시 쉬고 다음 프로젝트를 시작하곤 했었다.


4월의 봄날.

평온하게 산책하며 걷는 오늘의 따스한 햇볕이, 오늘의 봄 냄새가 유독 더 감사하게 느껴진다.


10년 뒤에도 그저 건강하게 즐기면서 영상일을 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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