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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기 Apr 29. 2020

나는 국민MC를 진지하게 꿈꾼다.

#나도작가다공모전 #시작 #도전 

나는 국민 MC를 진지하게 꿈꾼다.      

우연히 대학교 MT를 진행했던 그 날, 인생에서 ‘사회자’라는 길을 만났던 그 날, 처음 마이크를 통해 흘러나가는 나의 목소리는 어딘가 모르게 낯설어 보였지만 이내 2시간 동안 장내를 뒤흔들어 놓았다. 난 그날의 떨림과 감동과 행복을 잊지 못한다. 그냥 인생에 한 번쯤 경험해본 재미난 일이 아니었다. 이것은 운명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우연히 TV의 예능프로그램을 보고 있는데, 순간 시간이 멈춘 것을 경험했다. 

TV 속 화면도 멈추었고,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처럼 나만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 멈춰있는 TV 속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처럼 멈춰있는 화면에는 세 사람이 있었다. 강호동. 유재석. 김제동. 이것이 운명의 장난인가? 마음속으로 ‘그래! 내 꿈은 국민 MC!’라고 외쳤고 인터스텔라 속에서 깨어났다.      

이날부터 나는 국민 MC를 진지하게 꿈꾸었다. 국민 MC가 어떻게 되는 건지 방법을 몰라, 한국 레크리에이션 협회에 찾아가 ‘국민 MC 만들어 주세요.’라며 그곳에서 일하는 레크리에이션 강사님의 팔을 붙잡기도 했고, 대형 기획사의 공채 가수 오디션에 지원하여 노래와 춤은 준비하지 않고 “나 국민 MC 될 거예요.”라고 소개만 하고 돌아왔던 기억도 있다. 그렇게 당찬 포부 같은 열정으로 앞으로만 전진하던 그 시기에 운(?) 좋게 개그맨 기획사에 오디션에 붙게 되었다.



당시에 끼와 재능을 뽐내기보다 떨림의 에너지가 훨씬 컸던 시기였지만, 외모로 붙은 것 같았다. 계약서를 쓰는 당시, 직업에 개그맨 준비생으로 권유하는 회사에 “저는 국민 MC가 될 거예요.”라고 말하며 MC로 적었던 그때가 떠오른다. 

그렇게 개그맨 기획사에서 개그를 하지 않고, 여행지나 리조트 같은 곳을 다니며 사회를 보는 본격 사회자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당시에 회사 관계자들은 공중파 개그 무대에 내보내려고… 제안을 하기도 했지만 단호하게 거절했다.)



어쩌면 이때부터 본격 사회자로서의 프로다운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프로로서의 첫 번째 무대가 잡힌 날, 나에겐 5일의 시간이 있었다. 당시 겉으로는 ‘뭐 학교 축제 사회도 보고, 여기저기서 그래도 사회 봤었는데 똑같겠지 뭐 …’ 라며 자신감을 내보였지만 막상 하루씩 시간이 줄어들 때마다 식사를 하지 못할 정도로 온 마음이 떨렸었다.     



첫 무대 당일 아침

5일 동안 수없이 반복했던 멘트를 일어나자마자 읊어보았다. 완벽했다. 그리고 차분히 오늘 진행할 순서를 정리해보았다. 완벽했다. 마지막 멘트는 뭐로 할까 고민해보았고 명언을 검색했다. 완벽했다. 의상, 멘트, 애드리브, 공연소개 등 모든 준비는 끝났다.


무대 5분 전,

‘내 장기를 보여줄 때인가 드디어 시작인가… 훗.’이라고 아침에 생각했던 아침의 여유는 없었다. 안절부절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여기저기 괜히 왔다 갔다 했다. 같이 공연하는 형 누나들은 정신없다고 가만히 좀 있으라고 했지만 가만히 있으면 졸도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무대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종이 울리고 15초 뒤, 나는 종소리와 함께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가, 관객들을 제일 먼저 맞이해야 했다. ‘그래 할 수 있어.’ 다짐을 하고 자신 있게 무대로 걸어 나갔다. ‘5일 동안 준비한 것들을 하면 된다.’ ‘그래 무대 위치하자마자 인사부터 하는 거야.’ 등의 생각들이 계속 나왔다. 무대를 기다리며 시작을 알리는 사회자가 모습을 보이자, 관객들이 아무 이유 없이 환호했다. 


순간, 나는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리고 말문이 턱 막혔다.

말을 못 하는 사회자의 모습에 관객들은 웅성웅성하기 시작했고, 

“저.... 저... 저.. 다.. 다.. 다음 무대는.... 마술..입니다”라는 앞 뒤 없는 말을 하고 도망치듯 무대를 빠져나왔다. 난 아직도 프로로서 첫 무대였던 이때를 기억한다. 아마추어일 때 자유롭게 사회를 봐왔던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제 시간이 많이 지났다. 무려 11년이 지났으니 말이다. 다행히 지금은 무대가 집보다 편하고 안락하게 느껴진다. 11년 동안 아직까지 오직 한 가지 길만 걷고 있는 이유는 국민 MC라는 꿈을 꾸게 했던 그날이 있기 때문이다. 난 오늘도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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