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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호 Jul 06. 2022

[인터뷰] 라는 핑계

N과의 인터뷰_2022.06.27 @종로 인근의 모 카페

N에게 이전 인터뷰 글을 하나 보여주며 ‘나를 위한 인터뷰’의 인터뷰이가 되어달라는 부탁을 했다. N은 흔쾌히 수락했다. 그때부터 심장이 콩콩거리기 시작했다. ‘정말로 인터뷰가 하고 싶은 게 맞을까?’, ‘내가 나이가 더 많아서, 혹은 내가 불편해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올라왔다.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렇게 하면 그 생각이 떨어져 나가기라도 할 듯이. 다시 질문지를 짜기 시작했다. 어떤 질문을 해야 나에 대한 대답을 끌어낼 수 있을까 고민했다. 어쩐지 질문을 고민하는 내내 마음 한편이 답답했다.


평일 저녁, 종로 근처의 카페에 마주 앉아 녹음을 하겠다는 양해를 구하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허술한 질문지를 들고, N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N은 “마이크를 차니까 뭐라도 된 것 같다”면서 웃었다. 고정 질문과 개별 질문을 모두 던지고 나니 30분 남짓의 인터뷰가 끝났다. 자연스럽게 이어진 대화가 끝나고 핸드폰을 보니 음성 녹음 시간이 100분을 지나고 있었다. 집에 와서 녹취를 들었다. 내 목소리가 포함된 대화를 다시 들으면서 과연 이 순간에 나는 진심을 말하고 있었는지, 어떤 감정이었는지를 되새김질했다. 


나의 목소리와 웃음소리를 하나하나 곱씹는 경험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인터뷰 하나에 하나의 글을 쓴다.’는 원칙을 지키고자 자리에 앉았다. 진도는 영 나가지 않았다. ‘진심이 아닌 문장은 단 하나도 쓰지 말자’는 철칙 또한 지켜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럴듯한 문장이라 해도 내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지우기를 반복했다. 습하고 더운 여름날 저녁. 빈 한글 파일에는 끈적함만이 남아 깜빡거리고 있었다. 내가 내 감정조차 모른다는 사실이, 내가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쓸 수 없다는 사실이 막막하고 암담했다. 


그래. 좋은 글은 필요 없다. 솔직해지자. 때마침 지인이 보여준 글 하나가 떠올랐다.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 문장과 단어들에 ‘멋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다 걷어내고 솔직하게 쓰면 좋은 글이 될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그러니까 잡생각은 다 걷어내고 본질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나는 왜 N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을까. ‘나를 알기 위해서’라는 말은 명분에 불과한 게 아니었을까.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모든 게 명쾌해졌다. 


그랬다. 인터뷰는 반쯤 핑계였다. ‘나는 나를 모른다’는 사실과 ‘나를 알기 위해 인터뷰를 한다’는 것 자체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인터뷰 요청에는 ‘당신이라면 제 이야기를 들어줄 것 같습니다’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당신과 친해지고 싶습니다’, ‘차 한잔 하고 싶습니다. 식사도 좋습니다’라는 말을 못 해서, “인터뷰를 하면 밥을 사주겠다!” 따위의 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사람을 원하면서도 사람에게 먼저 다가갈 용기가 없는 사람’이었다. 다리를 건너 상대편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하는데 돌다리만 두드리고 있는 사람이었다. 바지를 적실 용기도 없고, 물에 빠질 용기도 없어서 ‘나는 사람이 싫어!’라고 합리화했다. 사실은 누구보다 건너편 세상을 궁금해했으면서 말이다. 다른 사람이 나를 거절하거나 비난할 거라는 공포가 너무 컸으므로 안전하다는 게 완벽히 보장됐을 때에만 다리를 건너는 편을 택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보통 좋지 않은 결말로 끝났다.


N은 물이 튀는 것도 싫고, 내 영역을 침범하는 것도 싫어하는 나의 모습을 “빈틈이 없는 사람인 것 같았어요. 근데 누구와 깊게 친해지는 것 같지는 않았어요. 자신의 많은 걸 보여주고 싶어 하지는 않는구나.”라고 표현했다. 동시에 “진짜 완벽하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오히려 더 뭔가 어려웠어요. 털어놓기도 그렇고.”라고 말했다.


그래도 이번에는 ‘인터뷰’라는 말로 돌다리를 통통 두들겨보고 저쪽 편으로 건너긴 건넜다. 익숙해지면 조금 더 세련된 방식을 찾을 수 있곘지. 그리고 N은 그런 나를 이해해주겠지. 그런 생각으로 이번에는 글을 지우지 않는다. 게다가 다시 쓰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N과 알고 지낸 지 9년이 됐으니 돌다리를 9년간 두드린 셈이다. 이제는 그 다리를 왔다 갔다 해보기도 해야지. 물이 튀기도 하고 날이 험한 날에는 물에 빠지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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