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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호 Jan 08. 2023

투혼과 기적 없는 일상

김미영, 김향수, 사회건강연구소, 『골골한 청년들』,  오월의 봄 리뷰

  포르투갈전 후반 추가시간, 손흥민 선수가 질주하기 시작했다. 수비수에 둘러싸인 그가 골대 앞에서 잠시 멈칫하더니 반대편에서 달려오던 황희찬 선수에게 절묘한 패스를 찔러넣었다. 황희찬 선수 또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정확하게 골대 안으로 공을 집어넣었다. 짜릿한 역전 결승 골을 만들어내는 순간이었다. 경기를 지켜보던 관중들은 환호했고, 손흥민 선수는 마스크를 벗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한국은 9~11%로 예상되었던 16강 진출 확률을 뚫고 또 한 번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손흥민 선수와 황인범 선수의 붕대 투혼은 아슬아슬했다. 부상당한 선수가 충분히 회복할 시간 없이 경기에 투입되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기적’을 넘어 ‘신화’를 만들었다고 말하는 2002년 월드컵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황선홍 선수는 머리 부상으로 붕대를 쓰고 경기를 뛰었고, 김태영 선수 또한 코뼈 골절에도 마스크를 쓰고 경기를 진행했다. 하지만 부상에도 불구하고 경기를 뛰는 선수들이 나타날 때마다 2002년의 ‘투혼’은 모범적인 선례로 재소환되는 수준에 그친다. 그 위험성에 대해 지적하는 일은 많지 않았다.


  한국의 2022년 16강 진출과 2002년 4강 진출은 선수들의 투혼과 ‘꺾이지 않는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했음에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아파도 팀을 위해서 희생하는 개인, 건강한 신체라는 기준에 맞추기 위해 부상 상태를 감내하는 상황이 정상으로 자리잡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제한된 시간과 조건 속에서 결과를 만들어내야 하는 스포츠 경기와 일상을 단순 비교하는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아프면 쉬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잡지 못한 우리 사회에서 부상을 입은 선수의 플레이를 투혼으로만 그리다보면 ‘아파도 참아야 한다’는 생각은 더 공고해 질 수밖에 없다. 


  오히려 스포츠의 세계가 일상을 더 잘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승자가 되어야, 능력이 있어야, 성과를 보여야 사회적 보상을 받을 수 있으며, 경쟁에서 지면 사회적 배제를 겪을 수 있다는 현실(p.111~113)’이 우리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경쟁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세계에서 뒤쳐진다는 건 낙오를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노력하고 자신을 채찍질하게 된다. 퇴근을 하고 돌아와서도 더 좋은 조건의 회사로 이직하거나 승진하기 위해 자기계발을 멈추지 않는다. 


  여기에 만성질환자에 대한 고려는 당연히 없다. 그가 청년이라면 더욱 더 그렇다. 질환은 사회가 아닌 개인의 문제이며 해결 또한 개인의 몫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나 또한 여러 가지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을 구할 때면 멀쩡한 사람을 연기하곤 한다. 최소한 업무에 지장이 없을 것임을 증명하려 한다. 책에서 지적하듯 ‘일터에서 생산력 있는 몸, 이상적 몸의 기준은 ‘건강한 성인’, ‘비장애 남성’(p.22)’이며 ‘남녀노소 누구든 건강한 젊은 비장애 남성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공적 세계에 참여할 수 없다고 여(p.22)’기기 때문이다. 그렇게라도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않으면 최소한의 생계비와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병원비를 감당할 방법이 없다.


 그러나 골골대는 만성질환 청년들은 사회 진입이 쉽지 않다. 질환을 관리하기 위해 시간과 돈이 필요할 뿐 아니라,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한 경우마저 있기 때문이다. 천만 다행으로 시간과 돈이 충분하고, 돌봄을 받을 수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정규직, 대기업으로 분류되는 1부 리그는 아픈 몸을 이끌고 자신을 갈아넣는 투혼을 펼칠 것을 다짐해야 입성할 수 있다. 물론 아픈 몸을 가지고도 좋은 일자리와 높은 성과를 보이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는 2002년도 4강 월드컵과 같이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다. 그건 투혼과 노력과 운과 시기가 모두 맞아 떨어졌을 때에나 기대할 수 있는 ‘신화’에 가깝다. 


  만성질환자들은 노동환경에 따라, 생활 패턴에 따라 질병이 좋아지고 나빠지기를 반복하므로 주 40시간 근무라는 정상성에 적응해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 결국 저임금, 비정규노동의 굴레를 반복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속의 골골한 청년들은 모두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나름의 방식과 기준을 만들어가며 자신의 삶을 꾸려나간다. 그리고 만성질환을 가진 사람들도 능력에 맞게 일할 수 있는 일터가 모두에게 좋은 일터라는 점에 공감한다. 그러니 이제 더 이상 개인의 투혼을 기대하지 않아도, 아프면 쉬면서 살아갈 수 있는 일상을 꿈꿔본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신화가 아닌 일상의 세계다.


* 본 리뷰는 출판사 '오월의봄'의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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