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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호 Dec 29. 2023

우울한 자의 발견

[우울한 자의 발견]

<장애와 도시, 상상모임> 이하늬 작가 북토크 @원주 시홍서가_2023.12.23(토)  


12월 23일 <장애와 도시, 상상 모임> 북토크에 보조 패널로 참여했습니다.     


메인 패널은 이하늬 작가님이셨는데요. 『나의 조현병 삼촌』과 『나의 F코드 이야기』를 쓰셨습니다.


저는 정서적 어려움이 주된 소재인 책을 선호하지 않는데요. 아픔을 전시하는 데 그치거나, 구조적인 문제를 놓치는 경우가 간혹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의 F코드 이야기』는 정신질환으로 인한 어려움이 어떻게 사회적인 문제로 확장되는지 보여주는 동시에 초발 환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구체적이면서 친절하게 제공하고 있어 좋았습니다.

『나의 조현병 삼촌』은 정신질환자와 함께 생활하는 가족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저도 당사자이지만 가족이나 주변인들이 느끼는 복잡한 감정들을 잘 알지 못합니다. 오히려 전문가나 가족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우려가 있는데, 주변인의 입장을 짚어가며 생각할 지점을 제공하는 책이라 『나의 F코드 이야기』와 함께 읽기에 손색없었습니다.     


이하늬 작가님께서는 기자 생활 중 ‘최중증 장애인은 존재 자체로도 노동이다’라는 답변을 들었던 인터뷰 경험을 나눠주셨습니다. 생산성이나 이윤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에 이바지한다면 그것 또한 노동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사회적 가치 측정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점에서 적극 동의합니다. 우리 사회는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그 중심에는 자본과 소비가 있습니다. 유행은 빠르게 변화하고, 이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소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뒤처진 사람이 됩니다. 주거나 일자리 문제에서도 같은 문제가 반복됩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게 되고, 대부분의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재화를 내가 소비 혹은 보유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쓸모없는 사람, 가치 없는 사람, 뒤처진 사람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속도를 늦추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여깁니다.     


원주에서는 정신질환과 관련된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다. 정신질환 당사자로서 어떤 변화가 필요하며, 글쓰기가 어떤 변화를 만들 수 있냐는 질문이 들어왔습니다.

글쓰기는 굉장히 비효율적입니다. 자리에 앉아서 자료를 수집하고, 관련 도서를 읽고, 쓰고 고치는 작업을 반복하며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고, 열심히 써도 읽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점에서도 그렇습니다. 투입되는 시간과 에너지에 비해 커다란 소득이 보장되는 것도 아닙니다. 시간으로 따지면 최저시급에 미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원고료는 수십 년째 제자리고요.     


동시에 글쓰기는 가장 효율적인 삶의 도구이기도 합니다. 나를 객관화하는 방법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우울증이 심할 때 적었던 글을 몇 년 지나 돌아보면 내 상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지금 얼마나 회복되고 있는지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또한 글과 책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합니다. 그곳이 도시이건, 도시가 아니 건 책을 구매하거나 빌릴 수 있다면 저자의 목소리를 어디서든 들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정신질환 당사자들이 꾸준히 글을 써주었으면 합니다.     


저는 우울한 자들이 세상을 바꿀 거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자기 삶이 무너져본 사람들은 세상의 균열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전에는 의문이었던 것들을 이해하기 시작하고,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관찰하게 됩니다.     

『나의 F코드 이야기』에서 ‘혜미’가 “예전에는 좋은 환경에서 좋은 친구들 만나서 좋은 시간을 보냈다면, 우울증 이후에는 아픈 사람들에게 조금 공감할 수 있게 된 거 같아. 노숙인들도 이전이랑 다르게 보이더라고. 나도 가족이 없었다면 그렇게 됐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우울증 약을 세상에 다 뿌리고 싶어. 세상에 우울한 사람 없게”(p.158)라고 말했듯 말입니다.     

원주에서는 정신질환을 말하는 자리가 없었다는 참여자분의 말처럼 서울과 비서울, 도시와 비도시의 차이가 있습니다. “아프면 아픈대로의 삶이 있다”는 이하늬 작가님의 말씀처럼 우리가 사는 곳이 비서울, 비도시라도 그곳에 삶은 분명 존재합니다. 하지만 공간과 기회의 부재는 분명 다른 문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뜻깊은 자리를 만들어준 커뮤니티 틈과 시홍서가, 이하늬 작가님, 자리해 주신 모든 참여자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추운 날씨였습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모였습니다. 경청의 눈빛과 질문이 이어졌고, 선물을 나눠주신 '안녕보경’님 따뜻함에 추위가 사르르 녹기도 했습니다.     


또 뵙기를 기원합니다. 이런 자리가 있다면(이라고 쓰고 인건비를 주신다면) 어디든 달려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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