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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승진 Dec 14. 2023

국가수준 학업 성취도 평가에 관하여

- 2023.12.13  '맞춤형 학업성취도 평가' 교육부 보도관련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는 정권의 정치 성향에 따라 매번 양상을 달리 했지만 평가 자체의 필요성과 목적에 대해서는 폭넓은 공감대가 이뤄져 왔다. 학교교육의 성과를 점검하고, 교육정책 수립을 위한 기초자료를 확보하며, 학생 성장을 위해 개별적 정보를 제공해야 할 필요에 다수가 동의하기 때문이다.


다만 학업성취도 평가가 목적을 벗어난 형태로 시행되었을 때, 오히려 교육 전반의 심각한 병폐가 될 수 있음을 우리는 경험했다. 평가결과 공시로 인해 시·도 및 학교 간에 과도한 서열화가 조장되었고, 교육과정이 파행적으로 운영되었다. 급기야 일부 교육청이 학생들의 성적을 조작해 교육청간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고 하는 사태까지 발생하기도 했다.     


미래를 내다보는 가장 유능한 예언자는 과거다. 우리는 과거의 예를 통해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가 왜곡될 경우 학교가 또다시 어떻게 변해갈지 예측할 수 있다. 평가를 통해 학생 개개인의 성장과 교수․학습 방법을 개선하는데 집중하지 않고, 다시 경쟁 유발을 위한 도구로, 자극적 서열화의 기준으로, 경쟁 부추김을 통한 성과도모로 목적을 왜곡한다면 학교는 언제든 기계적 학습의 장으로 전락하고 만다. 우리는 본연의 목적에서 벗어난 평가로 인해 경쟁강화 논리에 빠져 허우적댔던 아픈 기억이 있다. 학업성취도 평가를 계획하고 시행하고 활용함에 있어 다시는 비교육적 목적성이 부여되지 않고, 학교와 아이들이 더 높은 서열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과 사교육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세심한 조치들이 마련되어야만 한다.


교육부는 2022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추진 목적으로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을 위한 역량 중심 학업 성취도 평가 및 학생 성장 정보 제공’을 제시한 바 있다. 대한민국 학생들이 겸비해야할 미래 사회 역량을 평가한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단순지식을 습득하고 정보를 암기하는 능력을 요구했던 20세기형 인재와 달리 21세기형 미래인재는 무한한 정보들 속에서 문제해결을 위한 정보를 찾아 해결하고, 창의적으로 재생산 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며, 걸맞은 평가를 실시해야 함을 밝힌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는 기존 학업성취도 평가 문항들이 제시한 목적과 상당한 괴리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선다형·단답형 문항 방식은 기억·이해와 같은 단순 사고만을 평가하고 있어 오히려 학교 수업이 주입식·암기식 문제풀이가 되도록 강화한다. 그러므로 학생들의 미래 사회 역량을 평가하고 자극하는 평가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평가 문항의 변화가 전제되어야만 하겠다.

     

문항 개선의 필요성은 교육부도 인식하고 있다. 때문에 작년 학업성취도 평가를 앞두고는 새로운 평가방식을 제시했었다. 미래 사회 역량을 측정할 수 있도록 컴퓨터 기반 평가(CBT)를 도입하고, 2018 PISA와 같이 문제해결역량 평가문항을 반영하는 등 변화·발전의 가능성을 내포하였다. 하지만 관련한 예시 문항이 단 하나만 제시되어 있어 실제적인 확인과 검증은 불가능했다. 또한 새로이 제시된 문항조차 제한된 정답만을 찾게 하는 수렴적 사고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 그 한계와 부작용에 대한 고찰과 모색이 필요했다. 사회적으로 시사점과 영향력이 큰 시험들은 대개 문항의 특징을 알 수 있게 충분한 예시문항이 제공된다. 단적으로 PISA만 살펴보아도 새롭게 개발되는 문항의 경우 그 특징을 알 수 있도록 평가틀과 다수의 예시문항을 제공한다. 학업성취도평가와 관련한 충분한 예시문항을 공개함으로써 국가적 시험에 대한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고, 학교 수업을 좌우할 만큼 큰 영향력을 지닌 학업성취도 평가 문항에 대한 교육적 가치 검증과 논의를 지속해 가야한다.


한편 학생 성장 정보와 관련하여서는 지난 몇 년간 여러 방안들이 구비되어 왔다. 특히 기초학력을 진단하고 지원하기 위한 노력이 국가적으로 추진되었다. 기초학력 진단-보정 시스템 구축, 학습종합클리닉센터 설치, 기초학력 보장 종합계획 수립 등이 그 예다. 사실상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일부에서 끊임없이 제기하는 ‘기초학력 보장을 위한 전수 평가’ 주장은 국가 교육정책을 제대로 이해 못한 무지에서 비롯된 발언이라고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정부는 초1~고1 학생을 대상으로 이미 ‘기초학력 진단 전수평가’를 실시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생의 경우는 전국연합 학력평가도 수차례에 걸쳐 실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더이상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범위를 두고 ‘기초학력저하의 원인이다 아니다.’로, ‘기초학력보장의 해결책이다, 아니다.’로 정쟁화할 필요는 없다.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정치적 수단으로, 이념적 구호로 더는 왜곡하지 않아야 한다.


살펴본 것처럼 여러 우려가 있지만, 그럼에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는 우리나라 교육을 한 단계 도약시킬 수 있는 중요한 시험이라 할 수 있다. 가장 주목할 것은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가 지닌 무게감과 개선 가능성이다. 한국의 선다형 평가 방식은 교육적 부적합성과 한계가 선명히 드러났음에도 공정성 확보를 위해 필요악처럼 수용되어 온 경향이 있다. 그 결과, 공교육조차 문제풀이 암기식 수업에 종속되는 부작용이 생겼고, 문제풀이 기술과 전략을 집중적으로 개발하는 사교육 시장 의존도가 기형적으로 높아졌다. 다행이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는 입시와 같은 보상체제와 결부되어 있지 않아 여러 집단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롭고, 교육 본연의 목적에 집중한 평가 설계가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다. 즉, 시대가 요구하는 다양한 역량을 측정할 수 있도록 평가문항을 구성하고, 평가와 교육 목표를 일치시킴으로써 공교육 수업을 정상화 할 수 있는 발전적 전환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의 핵심은 ‘표집 시행할 것인가, 전수 시행할 것인가’와 같은 지엽적 사항의 결정 여부가 아니라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추진 목적에 맞게 어떻게 설계하고 활용할 것인가’이다. 블룸(Bloom)은 학습의 수준을 ‘기억-이해-적용-분석-평가-창조’로 제시하였다. 그러나 우리의 평가는 대개 ‘기억, 이해’와 같이 저차원적인 사고력을 평가하는데 집중해 있으며, 수업도 이러한 평가를 잘 치르기 위해 단순 정보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이 보편화되어 있다. 상황을 전환하고 고차원적 사고력을 기르는 교육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와 가능성이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는 내포되어 있다.


아쉽게도 현재의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는 지금까지 논한 것처럼 미래 사회 역량을 평가하거나 학생 개별 피드백을 충족하기에는 그 한계가 뚜렷한 시험이다. 현재의 방식으로 전수 평가를 시행할 경우 얻을 수 있는 장점이라고는 저차원적 사고력 평가를 통한 기초학력 진단 및 보완뿐이다. 심지어 이와 관련한 평가는 별도로 충분히 구축되어 있는 상황이기에 실상 전수 평가로 얻을 수 있는 이점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또한 교육 선진국들의 경우를 살펴보면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횟수를 빈번히 설정하지는 않음으로서 국가수준의 시험이 학생들의 학업 생애에 갖는 유의미성을 높이고 있다.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와 관련하여 우리가 모방해 온 미국조차도 최근에는 표집 방식으로 전환하며 과도한 목적성을 부여하지 않는다. 미래 사회 역량을 평가하겠다는 목적에 맞도록 평가 문항을 발전시켜나가는 것, 이후 초·중·고 각 단계에서 한 번의 시기만 택해 치르게 하는 것이 바람직 하겠다. 이렇게 될 때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는 학생 개인의 성장은 물론이고, 지식암기에서 벗어난 미래 사회 역량을 평가하는 도구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학생들에게 일정 수준의 학업성취에 도달하도록 성장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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