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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승진 Feb 21. 2024

1학년 5반 담임이 되었습니다.

2년의 여행을 마치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학교 정문에는 없던 차량 차단기가 생겼고, 나뭇결 도드라지던 교무실 책상은 세련된 그레이 톤으로 바뀌었더군요. 그러나 선생님들 책상 곳곳에서 새살스레 웃는 아이들의 사진과, 방학 중임에도 복도 곳곳에서 호흡하는 아이들의 흔적을 마주한 순간 모든 것이 낯익고 살가워 웃음이 났습니다.

한 구석에 가방을 내려 두고 1학년 5반 교실을 찾았습니다. 칠판을 닦고 책상을 한 편으로 밀고, 바닥 먼지를 쓴 후 25개의 의자를 둥그렇게 배치했습니다. 3월 4일, 25명의 아이들과 이곳에서 둥글게 마주 앉아 첫 이야기를 나눌 모습을 상상하며 짧은 기도를 드렸습니다. ‘귀한 만남을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아이들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데 제가 게으르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앞서 받은 봉투 속에는 25명 아이들의 이름의 명단이 있었습니다. 명단을 꺼내어 OO야,ㅁㅁ아... 아이들의 이름을 소리 내어 읽어보았습니다.  아직 사진첩이 없는 터라 막연한 느낌이 적잖아 일부러 3-4번씩 소리 내어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렇게 아이들 이름을 곱씹고 보니 저는 이미 아이들과 친해져 있습니다. 게다가 포스트잇에 아이들 이름을 한 명 한 명 적어가며 환영의 인사까지 남기고 나니, 제 마음 속에서 아이들은 이미 절친되었습니다.


김영하 작가는 여행을 두고 성공이라는 목적을 향해 떠난 주인공이 이런저런 시련을 겪다가 원래 성취하려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어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라 했습니다. 저의 지난 2년을 여행이라 말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교육정책연구원으로, 교육운동가로 지내며 더 확실한 교육 전문가가 되기를 꿈꾸었지만 오히려 그곳에서 얻은 배움은 일상적인 진리였습니다. '함께하는 이들에 대한 존중과, 속한 공동체에 사랑'. 제가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오며 얻게 된 두가지입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또 다시 여행을 떠나게 될 것임을 직감합니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닌 25명의 친구들과 함께겠네요. 1학년 5반과 함께 할 여행은 어떤 시련을 겪고, 또 무엇울 배운 채로 2025년의 2월로 돌아오게 될까요. 아마도 이 여행이 마냥 즐겁고 신나지는 않을 겁니다. 낯선 26인의 生들이 얼떨결에 한 배를 탄 채, 서로가 같이 하겠다는 허락도 약속도 합의도 없이 출발한 이 여행은 때때로 이견으로 길을 헤매고, 그 탓에 계획을 망쳐 투덜거릴 일이 생각보다 잦을 테니까요. 군중 속 고독을 느끼는 순간도 찾아올 것이고요. 그럼에도 잘못 접어든 길속에서 헤매었던 시간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았음을 발견할 수 있다면, 혼자보다 여럿이 머리를 맞댈 때의 안도감과 편안함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와 ‘너’의 경계를 넘나들며 보다 나은 ‘우리’를 경험해 볼 수 있다면, 1학년 5반의 1년은 진짜 여행을 맛보는 시간이 되겠지요.


여행이 시작될 3월 4일이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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