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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퇴근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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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혁 Feb 13. 2023

퇴근중독(讀) EP1. 걱정으로 가득한 나의 밤

첫 번째 중독 - 생각이 너무 많은 서른 살에게 (김은주 / 메이븐)

퇴근중독(讀). 격하게 퇴근하고 싶은 어른이가 무지막지한 퇴근길에서 책과 영화를 들여다봅니다. 컨디션이 좋은 날은 1시간 30분가량 낯선 세계에 푹 빠져 허우적거리기도, 때론 5분 만에 곯아떨어져 꿈나라에 가기도 합니다. 어느 날은 조금 일찍 회사를 박차고 나와 서늘한 공기가 매력적인 영화관에 들리기도 하죠. 이처럼 매일 똑같이 흘러가는 퇴근길에서 다양한 '작품'들을 만나보려 합니다. 도와주세요. 저는 지금 퇴근중독입니다!   - 필자 주


징- 징-.

저녁 9시. 늦은 저녁식사 도중 핸드폰이 묵직하고 불길하게 울려댔다. 편집국장의 전화였다.


"아니, 글인턴(필자) 씨! 글을 이따구로 쓰면 어쩌자는 거야? 어? 왜 말귀를 못 알아먹어!!"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날카로운 고성에 순간 정신이 아득했다. 가까스로 원고를 마감하고 갓 퇴근을 했을 때였다. 해프닝 바로 직전의 상황을 먼저 말하자면, 자취방에 들어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4800원짜리 도시락을 샀다. 계산을 하려는데, 흰머리가 지긋하게 난 편의점 점주분이 작은 핫바를 내어주시는 것이었다. 자정이 되면 폐기가 되는 상품인데, 혹시 가져갈 생각이 있냐는 말이었다. 별것도 아닌 작은 배려 섞인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 정도로 그날은 정말 힘든 하루였다.


절대 기사 원고를 대충 마감하진 않았다. 그저 "이걸 왜 내가 써야 하지?" 하는 식의 기사를 당장 쓰라는 상사의 부적절한 지시 때문인 이유가 컸다. 그것도 저녁 7시 퇴근 시간이 다 되어서 자료를 던진 터였다. 당연히 건네받은 자료를 100% 이해하기엔 시간적 여유도 적었다.


아찔한 고성을 듣고 다시 컴퓨터를 켰다. 시발. 욕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꾹 참고 기사를 수정했다. 바쁘게 움직이는 키보드 옆에선 따뜻했던 편의점 도시락이 차게 식어갔다. 수정한 원고를 올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메신저 한 통이 날아왔다.


"기사 확인하세요."


기사가 잘 올라갔는지, 혹은 게재하는 과정에서 오탈자는 없는지 마지막으로 확인하라는 편집국장의 말이었다. 그렇게 기사를 보는데, 이내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수정된 기사 위로 기자명(名)에 내 이름이 아닌 편집국장 본인의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



임원이 신입 사원에게 건넨 선물


그렇게 언론사를 때려치우고 입사한 현재의 직장에서 작년 11월쯤에 <생각이 너무 많은 서른 살에게>를 선물 받았다. 위와 같은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꽤나 임팩트 있던 선물이었던 게, 책을 선물해 준 이가 바로 필자가 속한 비서실의 임원 분이었던 것이다. 열악한 환경과 미친 사수 밑에서 혹독하게 굴렀던 지난 언론사 생활이었다. 물론 단점만 있었다고 보긴 힘들지만, 죽 그렇게 살다가는 정신적으로는 육체적으로든 망가져버릴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필자에게 책을 건넨 임원 분이 당시 해준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글인턴(필자) 매니저, 앞으로 직장 생활하면서 이래저래 많은 챌린지를 겪게 될 거야. 그럴 때마다 크고 작은 생각들이 글 매니저를 압도할 수 있어. 어쩌면 누구나 겪는 일일 테지만, 개인적인 바람으론 이를 현명하게 넘길 수 있었으면 좋겠어. 내가 좋은 사수라고는 확언하진 못하겠지만, 좋은 사수로 남기 위해 어느 정도 노력할 수 있다고 생각해. 실제로 노력하고 있고. 그런 생각들이 찾아올 때, 이 책을 읽어봤으면 좋겠어."


내 바로 위 팀장님도 아닌, 회사의 경영을 직접적으로 책임지는 임원 분께서 한낱 신입 사원에게 건넨 조언이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지난 수십 년간의 직장 생활과 애환이 스쳐 지나간 듯했다. 감히 헤아리지 못할 연륜이란 게 무엇인지 희미하지만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 조언을 들은 뒤에는 정말 모든 업무에 열정적으로 임했던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입사 1년 차가 지난 2023년 2월의 어느 날, 아직 채 읽지 못했던 책상 서랍 속 <생각이 너무 많은 서른 살에게>가 문득 생각났다.



생각이 너무 많은 서른 살에게


마침 올해로 서른 살 언저리가 되었다. 나름 시기적으로도 알맞은 책인 것 같아 퇴근길 버스에서 넘기다 만 책장을 뒤늦게 넘기기 시작했다. 책 선물을 받았을 당시에 바로 읽지 못한 핑계를 굳이 대자면, 이전에는 자기 계발서나 에세이를 잘 읽지 않았던 필자였다. 성공한 사람의 자랑을 듣고 싶지도 않았고, 어쭙잖은 응원이 들어가 있는 에세이는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2-3주가량에 걸쳐 <생각이 너무 많은 서른 살에게>를 읽으면서 그런 과거의 생각은 쓸데없는 자격지심이자 편협한 시각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자기 계발서나 에세이 같은 류의 책은 명쾌한 '해결책'을 얻는 게 아니라,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한 '성찰'에 의미가 더 들어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신입 사원에게 '실패'란 단어는 꽤나 큰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다. 세상에 어떤 신입 사원이 열정과 포부를 가지고 있지 않겠는가.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잘 해내고 싶다"라는 마음을 품고 있다. 하지만, 그 마음이 과도하게 작용해 자신을 뒤덮을 때면, 소위 말하는 '욕심'이 되어 버린다. 욕심이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되면 되레 어떤 업무를 시작하기 전부터 불안이 엄습해 온다. 그 어느 것도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게 된다. 결국 늦은 밤까지 고민과 걱정으로 지새우게 되고, 자신감은 점점 떨어진다. 필자도 비슷한 날들을 경험했다. 그저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욕심으로 채워지기 시작했고, 이윽고 자기 결정에 대한 불확실도 돌아오기도 했다.


이런 필자에게 <생각이 너무 많은 서론 살에게>는 말했다.


연필을 든 손의 힘을 빼고 지휘하듯 도화지의 맨 위쪽부터 아래쪽까지 수백 번 훑듯이 희미한 선을 그렸다. 마치 연필이 저절로 움직이는 것처럼. 연필이 흔적을 남기고 지나간 곳에는 알 수 없는 수많은 곡선이 쌓여갔다. 그런데 그렇게 쌓이기 시작한 선들이 점점 형태를 갖추고 세부적인 모양을 이뤄가더니 마침내 기가 막힌 완성본으로 탄생했다. (중략) 흰 도화지는 항상 무섭다. 힘을 빼고 희미한, 심지어 의미 없어 보이기까지 하는 선 긋기가 시작이다. 어차피 나중엔 묻히지나 지워질 선들이다.


줄여서 말하면 시작부터 잘하려는 욕심을 버리라는 말이었다. 돌이켜보니, 스스로에게 "잘해야 한다"라고 채찍질만 해왔던 것 같다. 모든 일을 잘 해낼 수 없는 걸 알면서도 왠지 끝까지 한 치의 오차 없이 잘 해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필자의 성격 탓이든 인정사정 없어진 사회 환경 탓이든 사실 전혀 상관없다. 조금만 내려놓고 생각해도 결과물은 생각보다 크게 추락하지 않는다. 오히려 크고 작은 실패가 훗날의 인사이트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왜 알면서도 모를까. 참 신기하다.




느려도 좋으니 끝까지 나답게


<생각이 너무 많은 서른 살에게>는 구글 수석 디자이너로 일한 김은주 씨가 직접 겪은 직장 생활을 바탕으로, 책 제목처럼 고민과 걱정이 많은 사회초년생에게 진심 어린 응원과 위로, 실패담과 실수담을 가감 없이 전한다. 비법보다는 지난날을 돌아보며 느낀 성찰과 소회를 바탕으로 읽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 동기부여를 느끼게 하는 일상적인 이야기다.


하다못해 미국과 구글에서 살아남은 영어 공부법까지 전수해주기도 하는데, 결국 <생각이 너무 많은 서른 살에게>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느려도 좋으니 끝까지 나답게' 살아가자는 메시지다.


당당하고 자유로운 인생을 꿈꾸지만,

오늘도 그저 그런 하루를 보냈다고 생각하는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서른 살 언저리의 미생(未生)이라면, 속는 셈 치고 가볍게 읽어보길 추천한다.


마지막으로, 두서없는 긴 글을 읽은 모든 분들에게 전하고 싶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완벽한 준비가 아니라, 망설임을 멈추고 방아쇠를 당길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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