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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혁 Mar 19. 2024

구례, 그리 쉽지는 않겠지 ②

은퇴 중년이 운영하는 숙소, 그리고 '뭐부터 해야하지?'


사실 처음에는 템플스테이(temple-stay)를 경험해 볼까 생각했다.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도통 답을 모르겠는 번뇌가 머릿속을 어지럽히기도 했고, 작게는 사회초년생으로서의 앞날에 대한 고민이나 모종의 힘듦이 있었기에 그 해답을 전지전능한 스님(불교적 관점)에게 묻고 싶었다. 세상 아무 소리 없는 조용한 사찰 정취와 굉장히 디톡스적인(?) 식단까지. 어쩌면 딱 나에게 필요한 여행 형태일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잠깐의 인터넷 서칭 결과, 생각보다 찍어내듯 커리큘럼화 되어 있는 요즘 템플스테이에 작은 실망감을 느꼈다. 예컨대 최근 절에서는 <나는 절로>와 같은 만남(매칭) 프로그램도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하하. (참가해 볼까.)


(지난 글: 구례, 그리 쉽지는 않겠지 ① (brunch.co.kr))


본디 취지와는 맞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 태어나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거나, 위치가 어느 지역인지조차 모를 시골로 떠나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그렇게 전라남도 구례에 다다랐다. 주변에 유명 관광지나 특산물, 맛집이 없어도 좋았다. 필자에겐 그냥 흙바람 부는 시골이 필요했다.


물론 아는 사람이 있겠지만, 시골 생활은 도심 생활에 절여진 젊은 이들에겐 꽤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영역이다. 하다못해 거름 냄새가 후각 신경을 마비시켜 가끔은 밥을 먹는 건지 뭘 먹는 건지 헷갈리거나, 각종 벌레들이 오랜 친구를 반갑게 맞이하듯 어깨동무를 건넨다. 구들장 때문에 방바닥은 펄펄 끓는데, 위쪽으로는 웃풍이 들어 몸은 춥고 목은 건조하다. 화장실도 어찌나 추운지, 소름 돋는 순간의 연속이다. 또 가끔은 오랜 누런 벽지 사이로 곰팡이 친구들이 보이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콜록콜록 수명이 줄어드는 것만 같다.



과장해서 말한 부분이 있지만, 시골 생활을 100% 즐기려면 이런 단면을 어느 정도 즐길 수 있는 둔감함(?)이 필요하다. 머리만 닿았다 하면 어디서든 쿨쿨 잘 수 있는 필자에게는 다행히 숙소 상태가 타격이 크지 않았다. 오히려 세심한 호스트분의 배려 덕에 적지 않은 감동을 받았다. 아이돌 그룹 <투어스>가 첫 만남은 너무 어렵다고 하는데, 실상은 아래와 같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돌담 골목을 지나 양철문을 열고 들어가자, 한 중년 남성이 '어서 오세요!' 하며 어색한 웃음과 함께 필자를 맞이했다. 흰머리는 드문드문 나 있었으나 생각보다 나이는 그렇게까지 들어 보이지 않았다. 이곳 토박이일까? 그러기엔 사투리 하나 없는 말투도, 곱상한 피부와 깨끗한 무테안경이 사뭇 시골과는 다른 느낌을 풍겼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너스레 떠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 필자 성격상,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혹시 이곳이 고향인 건지 물으니, 중년 남성은 웃으며 아니라고 답했다.


그의 이야기를 잠시 빌려보자면, 필자와 같이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던 직장인이었다고 한다. 본디 성격이 무엇을 그렇게 오래 지속하지 못하기도 해서, 문득 은퇴 후 시골에 내려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아내와 함께 허름한 시골집을 샀고, 집안 온 구석구석을 직접 보수했다고 한다. 그렇게 느껴질 만도 한 게, 외관이 스러져가는 집처럼 보일 뿐이지 툇마루에 먼지 하나 없을 정도로 청결했다. "제가 직접 고치고 운영하느라고, 다른 숙소보다는 퀄리티가 떨어질 수 있어요"하며 허허 웃는 중년에게 뭔지 모를 편안함과 신뢰감을 느꼈다. 내부는 더욱 감동적이었다.



내부의 작은 소품도 허투루 사용하지 않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아이템들이 꽤 감동적이었다. 먼저, 문풍지 발린 문을 열고 들어가자 쿵쿵 우퍼 사운드가 나를 반겼다. 기억하기로는 당시에 스팅(Sting)의 <I'm Englishman in New York>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노랫말처럼 구례에게 필자는 이방인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퍼 옆으로는 LP판과 함께 턴 테이블이 자리 잡고 있었고, 오래된 카세트도 눈에 보였다. 시선을 위로 돌려보니, 나무 선반 위에는 무려 <원펀맨> 시리즈 만화책이 필자를 유혹하고 있었다. 어쩜 이리 취향저격일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주방은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연상케 했다. 밖을 볼 수 있는 통창 앞으로 개수대와 재료를 손질할 수 있는 공간이 위치했고, 그 옆으로 각종 향신료와 주방 도구들이 진열돼 있었다. 특히, 그중에는 하이볼용 레몬즙도 준비되어 있었는데 속으로 '이 사람, 꽤 괜찮은 걸?' 하며 쾌재를 불렀다. (마침 집에서 Black&White를 가져왔었는데 잘 됐다 싶었다.) 더하여 좋은 커피 원두 통(jar)과 그라인더까지. 무엇보다도 통창으로 푸른 잔디를 보며 음식을 할 수 있다니! 가장 좋았던 포인트였던 것 같다.


좋은 향기가 나는 화장실까지 이용 방법을 안내한 중년 남성은 혹여 필자가 부담이 될까 부리나케 자리를 비워줬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차피 조금 외로운(?) 시간이 이어질 거, 그 남자와 커피라도 한 잔 하며 두런두런 세상사나 읊어볼 걸 그랬다. 강남과는 다르게 어떻게 보면 시간을 '낭비'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첫날이 시작됐다.

그토록 해 보고 싶던 시골 생활인데, 당장 뭐부터 해야 하지?

정신 차려 이 친구야. "굳이 뭘 안 해도 되는 세상이야"



-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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