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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혁 Aug 04. 2024

퇴근중담(談) EP7. 텔레비전은 바보상자가 아니었다

퇴근하면서 끄적여보는 '쓸 때 있는(write)' 생각

최근 유튜브 및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이 '이 콘텐츠'로 점령당했다.


바로, 필자의 어릴 적을 책임졌던 '그 시절 예능'이다. 지금은 최소 십 단위가 넘어가는 케이블 채널 재방송에서밖에 접할 수 없는 <무한도전>·<1박 2일>·<X맨> 등의 예능 말이다. 3102번 버스에 몸을 실은 오늘도 웃음을 끅끅 참으며 즐거운 퇴근길을 맞이하고 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해당 예능들이 TV에서 나올 때쯤의 필자는 초등학생에서 고등학생 즈음이었을 터다. 말 그대로 유년시절, 학창 시절의 향수를 그대로 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유재석과 강호동의 라이벌 구도, 유재석과 정준하의 미친 케미가 돋보였던 회사 콩트, 야외 취침을 걸고 펼친 박찬호의 미친 병뚜껑 제구, 윤은혜의 귀를 막은 김종국 등 지금 언급한 장면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면 조용히 '하트(좋아요)' 버튼을 눌러달라.


혹자는 '과거는 미화된다'는 말을 하지만, (최근의 예능 콘텐츠를 비하할 생각은 없다), 암만 생각해 봐도 수작이라고 칭송받는 콘텐츠들은 지금까지도 꾸준히 사랑을 받는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물론 이를 기획했던 제작진 입장에선 과거의 콘텐츠들은 스태프들의 공수가 엄청나게 들어간다는 등 다소 '무식했었다'고 평가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 시청자들의 재미와 감동을 위해 모두가 한 마음이었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젠장 또 대병건이야


기습 숭배는 이쯤에서 그만하고,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다음과 같다.


그 시절 예능이 흘러나올 때쯤의 우리네 미디어 문화는 '텔레비전 = 바보상자'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TV 프로그램이 더욱 대중화, 주류화(mainstreaming)되면서 밖에서 뛰놀던 아이들이 하나둘씩 TV 앞에 앉기 시작했다. TV를 보고 있자면 무의식적으로 입을 떡 벌리고 보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된다. TV를 보고 있는 자세도 점점 무너지면서 어느샌가 소파와 누구보다 밀착해 있는 감자(potato)가 되어있다. 그런데, 어른들이 줄곧 입에 달고 말씀하셨던 TV는 정말 바보상자였을까.



현시점의 미디어 문화를 살펴보자. 요즘 사람들에게 TV는 더 이상 제1의 선택지가 아니다. 실제 TV 광고 시장은 점점 줄어들고 있고, 소위 장사가 되지 않는 콘텐츠(다큐멘터리, 교양 등) 장르 또한 그 모습을 감추고 있다. 일례로, 한창 방송되고 있는 2024 파리 올림픽의 지상파 3사 시청률이 평균 0%대를 기록했다. 그만큼 미디어 이용행태가 TV에서 온라인·모바일로 넘어가면서 관련 산업뿐 아니라, 우리네 일상도 송두리째 변하고 있다.


잠시 과거로 돌아가보자. 일요일 밤 9시가 되면 가족 '모두'가 둘러앉아 <개그콘서트>를 보며 주말을 마무리하고, 다가올 한 주를 맞이했다. 구준표와 금잔디, 윤지후의 숨 막히는 삼각관계를 보려고 '친구들끼리 모여' 본 방송을 사수했다. 2NE1, FT아일랜드, BAP 등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의 컴백(come-back) 무대를 보기 위해 학원 수업이 끝나자마자 '집으로' 달려와 <인기가요>·<쇼! 음악중심>을 틀었다. 월드컵이 있을 때면 직장동료, 친구들과 한 데 모여 맥주와 치킨을 뜯었다.



위 과거 모습과 오늘날 우리 모습을 대조해보면 어떨까. 퇴근하고 오면 서둘러 인사를 하고, 각자 방으로 흩어진다. 컴퓨터를 켜거나 SNS에 접속해 각자만의 콘텐츠를 소비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동안 집안은 대화 한 마디 없이 조용할 것이다. 어느 집은 밥 먹을 때도 각자 핸드폰을 바라보며 음식을 먹을 수도 있다. 서로의 표정과 감정을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그렇게 개인주의적인 일상이 점점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즉, 그 시절 TV는 '공동체적'이었다.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 온 가족, 친구들, 직장 동료들이 TV 앞으로 모였다. 함께 모인 이들과 단순히 브라운관만 쳐다보고 있는 게 아니라, 그동안의 근황을 묻고 수다를 떨었다. 서로의 반응을 보며 감정을 공유하고, 추억을 쌓았다. 우리의 기억 속에는 그때의 웃음뿐만이 아니라, 냄새와 온도, 대화가 추억의 형태로 남아 있다. 어쩌면 지금의 우리의 인격체가 완성되기까지 톡톡히 한몫해 냈을 수도 있다.


가만 보니 TV는 바보상자가 아니었다. 어쩌면 훗날 '그때가 좋았지'하며 그날의 훈훈한 장면을 회상해 볼 수 있는 아주 깊고 큰 하나의 추억상자지 않을까. 지금 보고 있는 핸드폰을 끄고, 당장 거실로 나가 TV를 틀어보라.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온 가족과 함께 TV를 보며, 대화를 나누며, 얼굴을 보며 추억을 쌓아보는 건 어떨까. 이 순간은 돌아오지 않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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