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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퇴근중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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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혁 Jan 16. 2024

퇴근중담(談) EP6. 다큐멘터리가 사라지고 있다

퇴근하면서 끄적여보는 '쓸 때 있는(write)' 생각


어릴 적부터 TV 프로그램 <다큐 3일>을 꼬박꼬박 챙겨볼 정도로 좋아했다.

셀 수 없이 다양한 인생사가 담겨있는 프로그램이지만, 그중 '청년'이나 '일상'을 키워드로 다룬 회차를 더욱 좋아했다. 필자의 나잇대와 생활상이 매우 닮아있다고 해야 할까. 필자의 진짜 '현실 인생'을 보여주는 듯해서다.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를 통해 세상을 접하고 있노라면, 종종 요새 유행하는 생성형 AI가 만든 세상처럼 굉장히 인위적이라고 느껴질 때가 많다. 혹은 영화 <트루먼 쇼>처럼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과연 진실인지, 저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 진실인지 헷갈릴 때도 적지 않다. 그만큼 호화스럽거나. 반대로 위화감과 소외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비교 잣대'를 들이밀 수 있는 모습들이 퍽 올라온다는 뜻이다.


이런 세태를 비판하고자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이 또한 한 시대의 대표적인 생활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머리가 지끈지끈하고 심장이 쿵 내려앉는 자극적인 맛보다 '슴슴한 사람 냄새'를 좋아하는 한 청년으로서 다큐멘터리와 같은 우리네 '진짜' 이야기가 사라지고 있는 것 같은 아쉬움에 글을 끄적여본다.



<다큐 3일>에서 순위 안으로 좋아하는 회차는 지난 2017년 3월 방영한 '우리 동네 편의점' 편이다. 현재에도 가끔씩 컴퓨터 게임을 할 때나, 웹 서핑을 할 때 한편에 라디오(백색 소음)처럼 틀어놓곤 하는 나만의 힐링 편이다.


편의점은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부터 일과를 마무리하는 사람까지 24시간 돌아가는 우리네 인생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다. 출근길에 아침 식사용 바나나와 신문을 사는 직장인부터, 하교 후 영어 학원을 가기 전에 잠깐 요기를 때우는 6학년 초등학생, 야간 교대 근무를 이어받는 25살 신입 직원과 늦은 밤 시각에 출근해 다음날 오전까지 빌딩 청소를 시작하기 위해 도시락을 구매하는 중년 부부까지 정말 다양한 이야기가 10평 남짓한 공간에 압축적으로 담겨 있다.


이 편을 얼마나 감동 깊게 봤을 정도냐면, 대학교 학보사 시절 기획 기사 아이템을 발굴할 때, 청년들의 다소 웃픈 세상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던 와중 '편의점'을 떠올렸다. 그렇게 아래 기사가 나오게 됐다. (지금 와서 보니 스토리텔링에만 집중했지, 전체적으로 굉장히 허술한 기사임이 보인다.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시길!)

https://hiupress.hongik.ac.kr/news/articleView.html?idxno=1482



그런 의미에서 요즘의 인스타그램, 유튜브 콘텐츠를 한 번 돌이켜보자.


유튜브에서는 여전히 '스케치 코미디'가 강세인 것 같다. 필자 개인한테는 굉장히 결이 잘 맞는 코미디 콘텐츠였다. 우리네 일상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재밌는 웃음 포인트들을 캐치해 극대화한 콘텐츠였기 때문이다. 웃음 뒤에 오는 '공감적인' 요소가 참 좋았던 것 같다. 하지만, 최근의 스케치 코미디를 보면 조회 수를 겨냥한 듯한 다소 선정적인 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스케치 코미디를 가장한 성인 소설을 보는 듯한 느낌이 적지 않게 받는다. 예컨대 상사와의 하룻밤이라니. 주변에서 '자주' 봄직한 이야기들이 도통 아닌 것 같다.


인스타그램은 우리들의 행복한 순간만 올리는 것이 이미 '국룰'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필자 또한 그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물론 외부적으로 보이기 위한 SNS 특성상, 자신과 관련된 좋은 일과 행복한 모습, 자랑스러운 순간을 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인생이란 게 매번 행복한 순간만 있을 순 없는 노릇이다. 그런 취지에서 보면 가끔씩 '나의 평범한 순간은 과연 어디에 남아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어찌 보면 행복한 순간을 기록하는 것 못지않게 나의 흘러가는 평범한 일상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와 같은 글도 적는 것이기도 하다. 지나가는 순간순간에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그리고 평소에 어떤 생각들이 머릿속에 들어있었는지를 이런 작을 글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마치 어릴 적 같은 반 여학우에게 받았던 고백편지나, 풋풋한 감성이 가득 들어있는 졸업 앨범을 들춰보는 것 같달까.


<다큐 3일> 이후 소위 '사람 냄새'나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없는 것 같아 아쉬울 따름이다. 나름 다큐멘터리 명맥을 이어가던 KBS <9층 시사국 사람들> 또한 최근 폐지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가면 갈수록 사람 냄새가 아득해지는 것 같아 마음 한편이 아리다. 유튜브 EBS 채널 <골라듄다큐> 등을 통해 지난 다큐멘터리들을 거의 정주행 하다시피 하고 있지만, 현시점의 사람 냄새가 간혹 그리워지기도 한다.


다큐멘터리가 사라지고 있다.

그렇게 사람 냄새 또한 점점 아득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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