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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교사 체 May 07. 2021

SF라는 멋진 신세계

아서 C.클라크, 『유년기의 끝』

SF소설을 읽게 된 건 실로 새로운 세계의 문턱에 발을 들여놓은 사건이라 할 만하다. 매일 보는 낯익은 풍경이 아니라 멀리 떠난 낯선 여행지의 놀랍고 이국적인 풍경 속에 들어온 기분이랄까.    

 

『유년기의 끝』을 쓴 아서 C. 클라크는 세계 3대 SF소설 작가로 꼽힌다. 뉴욕, 도쿄, 모스크바 등 전세계 상공을 거대한 UFO가 뒤덮고 있는 첫 장면부터 상상을 초월한다. 외계생명체 오버로드가 인류를 지배하게 되면서 인류는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낙원을 맛보게 된다. 오버로드가 조종하는 세계는 기아, 범죄가 사라진 것은 물론 동물도 안전을 보장받는다. 황소를 찔러 죽이면서 환호하는 투우를 오버로드는 평화로운 방식으로 근절하는데 진짜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처음으로 창이 번쩍이면서 황소에게 가 닿은 순간, 지구상에서는 여태껏 들어본 적이 없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1만 명의 사람들이 황소와 똑같은 상처를 입은 듯이 통증을 호소하며 내지르는 비명 소리였다. 하지만 1만 명의 사람들이 정신을 차린 후 자신의 몸을 보았을 때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그것으로 마드리드의 투우는 끝이 났다. 그 소식은 급속히 전해져 지구상에서는 더 이상 투우 경기가 열리지 않았다. 80p    


진화의 정점에 이른 오버로드를 지배하는 것은 오버마인드이다. 인류의 대다수가 오버로드를 인정하지만 오버로드가 지배하는 낙원에서 탈출해 뉴아테네섬에 정착하는 한 무리의 인간들이 있다. 문제는 이들의 어린 자녀들에게 발생한 이상한 사건이다. 아이들은 시공간, 자아, 언어를 초월해 하나의 정신으로 통합되는데 깔깔거리고 뛰어노는 게 아니라 거의 잠든 상태로 지낸다. 엄마 아빠의 아이가 아니라 오버마드(집단지성체)로 통합(혹은 잠식)되는 경지에 이른 아이들은 결국 모두 빛이 되어 지구를 떠난다. 아이들을 잃은 부모는 자살하거나 죽고 인류, 지구는 거대한 불기둥을 일으키며 빛 속으로 흡수되어 소멸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여태 내가 읽어온 책들과 달리 SF소설을 읽는 동안은 낯선 읽기의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이를테면,

내 인식의 경계를 여지없이 허물어뜨리는 이야기 앞에서 나는 완전 무방비고,

오버로드의 지배에 복종하며 낙원을 누려보다 불기둥과 함께 소멸해버릴 미약한 개인일 뿐이고,  

이야기가 흘러가는대로 휩쓸려 소용돌이에 떠밀려가는, 판단을 상실한 일개 독자일 뿐이다.


SF소설에는 일상의 문을 열면 기다렸다는 듯 튀어나오는 현실의 고민과 고통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강물이 흘러 어디를 가는지, 밤하늘의 별은 왜 반짝이는지 세상 모든 것이 궁금한 아이처럼 나는 호기심 가득 우주를 상상하고 여행한다. ‘자아(형체), 시공간이 없는 세계가 가능할까?’ 상상하는 동안 나는 3차원의 현실 세계를 벗어나 다른 차원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만 같다. SF의 세계에서, 외계인과 귀신을 궁금해하던, 어릴 적에나 했을 공상에 빠져 있는 동안만큼은 바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는 여유 혹은 일탈을 누려보는 것도 좋다. 위대한 SF소설을 읽게 되어 기쁘고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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