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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교사 체 Sep 19. 2022

아무렇게나 일단 써- 아무거나 신나는 걸로

아무렇게나 일단 써- 아무거나 신나는 걸로. 인류 역사에 기록될 몹쓸 전염병에 포획되어 집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몸살 두통에 기운이 없어 커피를 내렸는데 우와 재떨이도 이보다는 낫겠다 싶게 쓰고 더러운 맛이 난다. 이번 바이러스는 특히 더 아프다는 소문만큼 증상이 심하지는 않아 그간 못 읽던 책을 좀 읽을 수 있어 좋았다.   

   

<박찬욱의 몽타주>를 읽었다. ‘헤어질 결심’과 헤어지지 못하고 미련스럽게도 박찬욱이라는 세계가 궁금했다. 폭력, 변태 기질을 은근 기대했으나 딸바보에 지고지순한 스타일인 것 같고 유머러스하고 담백한데 유창하고 쓸데없는데 지적이고. 책 읽기가 참 안 되던 날이었는데...땡큐 박찬욱!!      


사인부터 받아놓고 1년간 처박혀 있던 김혼비의 <전국축제자랑>을 꺼냈다. 의좋은 형제 축제? 차린 건 별로 없겠지만 한번 먹어보겠다...싶었는데...너..무..맛.있.다! 아니, 부부가 쌍으로 미친 거 아냐 싶게 재밌다. 사실 에세이로 만나는 김혼비는 충분히 재밌고 잘 쓰고 좋은 작가지만 실제 만나본 김혼비는 공감 능력이 거의 신적 경지인 것 같았다. 글보다 사람이 더 매력적이거나 사람을 알고보면 글이 더 좋아진다. 왜 한국의 빌브라이슨이라고 하는지 알 만하고, 작가가 왜 유독 이 책을 아끼는지 알 만하다. 김혼비의 B급 감성, 별볼일없는 것들에 대한 넘치는 애정과 유머가 축제처럼 펼쳐져 읽는 동안 역병의 존재를 잊을 수 있었다.      


원조 <빌 브라이슨의 유럽 산책>도 처박혀 있다가 드디어 읽힐 때가 되었다. 아 너무 솔직해서 좋잖아. 남편이 바이칼 여행기를 쓰면서 러시아 미녀들을 보고 쭉쭉빵빵이라는 표현을 썼다가 혼난 적이 있다. 본인도 본인의 성 감수성에 화들짝 놀라 번개같이 지워버렸는데 빌 브라이슨은 개의치 않는다. 여행지에 대한 호불호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데 특히 독일과 나치에 대해서는 혐오감마저 드러낸다. 어쨌거나 원조는 원조. 빌 브라이슨을 따라갈 여행기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작정하고 웃기는 책들을 읽었는데 역시 내 취향인가. 사실 나는 책에 취향이 크게 없다. 우울해도 좋고 엽기적이어도 좋고 이래라 저래라 조언과 충고를 해대는 거 말고는 거의 다 좋아한다. 그렇지만 취향을 좀 갖고 싶기는 하다. 책을 읽는 취향이 삶에 대한 가치관과 비슷해질 것 같은 느낌도 들고. 곧 50이 되니까 삶의 방향성도 좀 정해야 될 것 같고. 30대까지 순진하게 세상 모르고 잘 살았고 40대는 끝자락에 서서 보니 참 힘들게 왔구나 싶다. 서른이 될 때도 마흔이 될 때도 어떻게 살아야지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는데 50은 준비를 좀 하고 맞아야겠다 싶다. 박찬욱, 김혼비, 빌 브라이슨. 나이도 성도 국적도 다르지만 이들이 주는 메시지가 역병에 걸린 처지 때문인지 마흔아홉 수 처지 때문인지 원래 취향이었던 건지 유독 다르게 다가온 여름. 끝이 보일 것 같지 않던 여름도 가고 있다. 시원한 바람이 분다. 책도 읽고 50도 상상해보고 소홀했던 독서일기도 좀 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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