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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교사 체 May 09. 2024

이처럼 사소한 것들, 아침 그리고 저녁

노트북을 열고 전원 버튼을 꾹 누른다. 파란 빛이 깜박 들어오고 모니터 비번을 입력한다. 텀블러에 내려간 모닝커피를 사무실(교무실이 아니라 학년실이 아니라) 전용 내 컵에 옮겨 따른다. 얇고 감각적인 디자인이 아니라 도톰하고 완만하고 어디 하나 튀는 데라곤 없는 무던한 디자인이 멋스러운 컵이다. 던져도 깨지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2만 원의 거금을 들여 구입해 깨지고 갈라지고 싫증나서 버려진 무수한 머그컵들을 제치고 5년째 아침이면 내 손에 안기는 사랑스런 컵이다. 쪼르르륵 커피를 옮겨 따르는 순간이, 하루의 노동을 시작하기 직전 찰나의 긴장감 어린 정적을 달콤쌉싸름하게 깨트려버리는 커피 따르는 소리가 아침을 사랑스럽게 한다. 


어지럽게 널려 있는 전선들과 모니터들이 나뒹구는 휑한 사무실을 상상했건만 지난 학교들과 비할 바 없는 쾌적하고 깔끔한 공간. 과자, 초콜릿, 컵라면 등 간식 바구니에서 오늘 주전부리들을 접시에 꺼내놓고 속속 들어오는 동료들과 인사를 나눈다. 8시 30분 교실 입실인데 몸은 여전히 8시 입실에 세팅되어 있어 아까운 30분을 여유라는 이름으로 쓸데없이 낭비하는 것만 같아 조바심이 나는 것을 꾹 눌러 담는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는 법. 여기가 바로 그 로마인 걸 잊지 말 것. 게다가 오늘은 섬유와 도제 수업이 있는 난이도 최상의 수요일. 


1교시 섬유반 문을 열자 라면 냄새가 훅 뿜어져 나온다. 참깨 라면을 먹었다고 하길래 앞으로 너를 참깨라고 부르겠다고 했다. 참고로 참깨는 밀양집의 아랫집에 대개는 묶여 있고 가끔 풀려나와 잔디밭을 뒹굴며 짧은 자유를 만끽하는, 우리 가족의 총애를 한몸에 받고 있는 개 이름이다. “참깨, 아침부터 라면을 먹고 난 낭랑한 목소리로 한번 읽어보자.” 참깨의 낭독을 들으며 밀양집 아랫집에 묶여 있을 참깨를 떠올린다. 


PC필터를 점검하지 않은 자, 내PC지키미에서 100점을 만들지 못한 자를 찾아내어 간결하고도 공손한 메시지를 보내는 게 오늘 해야 할 일이다. 120명 중 필터를 점검하지 않은 자 25명, 내PC를 못 지킨 자 16명을 찾아낸다. 교감선생님 이름을 보니 반갑다. 부서와 이름을 확인하고 메시지를 보낸다. 늦어서 죄송하다, 수고한다, 완료했다 등등 다양한 답장들이 날아온다. 또 일일이 감사합니다를 보내야 하나 3초 정도 생각한다. 반 정도 감사합니다를 회신한다. 찰나의 순간 아주 만족스러운 결정을 내린 내 자신이 대견스럽다. 친절은 하되 지나친 친절은 사양하겠다는 의식의 발로를 반만 답장을 쓰는 걸로 표현하다니. 머리를 거의 쓰지 않는(어떻게 하면 더 쉽게 찾아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 정도) 단순 노동이 주는 쾌감을 만끽하며 다음에 해야 할 정보공시 안내 공문을 접수한다. 오래 전 사회학 시간에 배운 막스 베버의 관료제가 불쑥 떠오른다. 그러고보니 30년 전이다. 관료제를 비판하던 내가 관료가 되어 있네? 잠깐 상념에 빠져 30년 시간의 강을 따라 흐르는 대로 놓아둔다. 그래, AI가 되지 않은 게 어딘가. 상념이란 게 보통 그러하듯 한눈 파는 찰나 샛길로 빠져 또 엉뚱한 결말에 이르고 만다. 


지난 한 주는 퇴근 이후 별다른 약속이 없었다. 거실에 깔아둔 요가 매트 반 정도 크기의 옥돌 전기장판에 전원을 켜고 뜨끈한 데 허리를 지지며 창밖 풍경을 만끽하는 걸로 퇴근 의식을 치르고 학원과 학교로 아이들을 실어 나르기도 하고 오늘은 사과를 살 수 있을까 기대하며 옹기종기 모여 경쟁하는 마트들을 둘러보기도 한다. 과수원집으로 시집갈 거라며 사과를 포대기째 먹어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마트를 갈 때마다 ‘그래 나는 먹을 만큼 먹었어’라며 사과 앞을 지나친다. 북극곰이 사라진다는 데서 느끼지 못하는 기후 위기를 사과를 보며 절감한다. apple이 먹는 게 아니라 영영 내 아이디로만 남게 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사과보호단체 같은 게 있으면 가입하고 싶다. 무릎 치료를 계기로 시작한 요가를 가는 게 어느 정도 즐겁다. 육십 된 강사가 물구나무 서기를 하고 스트레칭 하는 걸 보면 희망 비슷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오면서 강사의 몸에 내 몸을 대입하게 된다. 스무살이 갓 넘었을 강사의 쭉 빠진 몸매에 감탄하며 일대일 필라테스를 배우는 것보다 반쯤 늙은 요가 강사의 수업이 좋다고 느낀다. 강사의 실력 차이인지 나이로 대변되는 연륜 덕분인지 플라시보 효과인지 알 수는 없다. 별다른 약속이 없어 편하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한데 다음 주는 부서 회식, 주말 가족모임, 계모임이 있어 분주함에서 오는 안도감이 들기도 하고 널부러진 세탁실, 바닥에 쓸려다니는 머리카락과 먼지들을 치우는 보잘것없는 일상이 벌써 그립기도 하다. 편안함과 쓸쓸함 사이, 특별한 분주함과 일상의 안도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책장을 열었다 덮었다 한다.  2024.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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