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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사서 Apr 30. 2023

엄마가 내려놔야 돼

복직을 하면서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했다.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자마자 아이는 태어나 한 번도 걸린 적 없는 감기에 걸려 두 달간 고생 중이다. 소아과 병원도 바꿔가면서 다녀보고 또 주변의 엄마들의 조언으로 이비인후과까지 다니기 시작했다. 떨어지지 않는 감기에 노심초사하고 39도가 넘는 고열에 놀라 연차를 쓰고 병원으로 달려가면 그저 심드렁한 말투로 '코감기네요. 감기가 심해졌다 나았다 하는 중입니다. 해열제 먹이세요.' 하는 말에 맥이 빠져 집으로 돌아오기를 몇 번이나 했다. 문제는 면역력이 약해진 건 아이뿐이 아니었다. 산후조리를 우습게 안 초보엄마의 몸상태는 엉망이라 아이에게 옮은 감기가 역시 두 달째 낫지 않고 있다. 처음엔 아이가 아프니 아이 병원 다니기 바빴는데 요즘은 아이 병원 가는 길에 나도 같이 진료를 받고 온다. 그렇게 하면 된다는 것도 아이가 어느 정도 안정화 되고 나서지 불덩이인 아이를 안고 병원을 가면서 '저도 봐주세요.' 그 한마디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게 병원을 전전하는 중이었다. 신도시의 특성상 아기들이 많아서 환절기 이비인후과 진료는 정말 하늘의 별따기였다. 오후 1시에 이미 6시까지 진료가 마감된 병원도 허다했고, 접수는 가능하지만 대기가 50번 이상이라는 병원이 대다수였다. 마치 온 도시 전체가 감기를 앓고 있는 듯했다. 진료실에 가득한 감기환자를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진료를 받다가 오히려 교차감염이 될 것 같은 기분이라 진료를 포기하려다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지나다가 본 적 있는 검색 순위에서는 뒤에 밀려 있는 이비인후과를 찾아 전화를 걸어보니 다행히 진료가 가능하다해서 부랴부랴 아이를 안고 방문했다. 연세가 지긋한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이 다정하게 맞아주셨다.


"아기는 무슨 일로 병원을 왔을까요?"

"아기가 두 달째 감기가 떨어지지 않고 노란 콧물이 나고 기침이 나서요."

"어디 한번 보자."


늘 하던 대로 청진기로 진료를 하고 입 속을 보고 콧 속을 보고 콧물을 빼고 하더니 안쓰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시며 이야기하셨다. 


"엄마, 아기 어린이집 다니죠?"

"아…네."

"음… 엄마 이건 엄마가 어느 정도 내려놔야 해. 내 보기엔 아기 감기 어린이집 안 가면 나아요."

"어린이집을 안 보내야 나을까요?"

"그렇지. 지금 어린이집에서 단체생활하면서 서로 계속 교차감염 시키는 거야. 이게 감기 증상이 같으니까 마치 감기가 오랫동안 낫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계속 새로운 감기가 걸리고 있는 거야. 어린이집 안 보내면 나아요. 그런데 다시 보내면 또 감기가 걸리겠지."

"다시 보내면 또 걸리겠죠."

"봐봐 엄마. 옛날에 아이들을 코찔찔이라고 불렀잖아. 나도 코찔찔이였어요. 그냥 어린애들은 그냥 노란 콧물을 달고 살았다고, 그런데 봐봐 코찔찔이 었지만 나도 이렇게 의사가 됐잖아요. 우리 아기도 코 조금 흘려도 아무 문제 없이 클 거야. 걱정 말아요. 아기들이 우리 생각처럼 면역력이 강하지 않지만, 또 우리 생각처럼 약하지 않거든."


그 말을 듣는데 왜 갑자기 코가 찡하고 눈이 시큰해지는지 모르겠지만 꾹 참느라 붉어진 얼굴을 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감기가 낫지 않는 두 달 동안 나는 또 마음속으로 나를 탓하고 있었다. 내가 워킹맘이라서, 내가 어린이집을 일찍 보내서, 내가 일을 하느라 아이에게 신경을 쓰지 못해서, 내가 제 때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아서 이렇게 아이가 감기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건가 한 없이 나를 탓하고 몰아세우고 있었다. 그래서 쉬는 날이면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전전하고 차도가 없으면 또 다른 병원을 가보고 병원의 처방이 문젠가 싶어서 나중에는 나도 같이 늘 같은 증상을 말하고 약을 처방받아보면서 약이 독하다 싶으면 병원을 바꿔서 다니고 했다. 아이가 아프면 엄마는 죄인이 된다. 아이가 나 때문에 아픈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된다. 이 생각은 아직 지울 수 없다. 어린이집을 다니게 된 것도 어쩌면 나의 사정 때문이었으므로 내 탓이 아닌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냥 내려놓으라는 말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에 괜히 마음 한편이 녹아내리는 것 같은 아주 작은 안도감이 들었다. 


누구에게나 하는 상투적인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겐 위로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불만이 되는 말이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에게는 위로 쪽이었다. 오랜 시간 맘조리고 여러 병원 전전하면서 뾰족한 차도가 없던 그런 나날에 잠깐 쉬어가라고 내어준 작은 의자 같은 조언이었다.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게 육아를 하면서 복직을 하면서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는 나 혼자만의 등산을 하는 기분이었다. 정상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그냥 헉헉 거리면서 매일매일을 버텨낸다는 심정으로 오르고 있었다. 그저 아이가 잘 자라기 바라는 마음과 내가 하는 모든 것이 아이를 향해있지만 아이와 떨어져서 회사를 다니는 것 역시 아이를 좀 더 잘 키우고 싶은 욕심이었기에 양립하기 어려운 것을 등에 한가득 짊어지고 산을 오르는 것 같았다. 아이가 아프고 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늦어질 때마다 엄마들은 더 짊어질 수 없는 짐에 또다시 짐을 꾸역꾸역 짊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잠시 따뜻한 위로에 쉬었다 다시 힘을 내서 오를 수 있게 되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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