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사서 Sep 28. 2024

의료공백, 내 일이 아니라는 착각

공감하는 척에 대한 반성

"000씨 직장 동료인데요. 000씨가 휴대폰을 두고 병원으로 이송되셔서요. 지금 아버지가 눈 위쪽 뼈가 주저 앉아서 다치셨는데 따님께서는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서 연락드려요. 지금 여기저기 병원 다 거부당하고 00병원에 있는데 가보셔야 할 것 같아요."


청천벽력같은 소리였다. 아버지는 제조업에 평생 종사하셨는데 그러다보니 작고 큰 사고에 가슴 쓸어내릴 일이 많았지만 이번에 얼굴이고 게다가 눈이라니…. 손이 덜덜 떨렸다. 연락을 받고 아빠가 현재 이송되었다는 병원을 검색해보니 병원은 작은 개인병원이었고 게다가 불과 한달전에 개원한 의원이었다. 얼굴이 게다가 눈쪽이 다쳤다는데 신경외과도 아니고, 안과도 아니고, 동네 정형외과라니 까마득했다.  


일단 침착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인터넷을 뒤져 안과가 있는 종합병원으로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응급인 상황이면 저희 병원은 수술할 상황이 아닙니다."

"일단 와보셔야 알지 지금 확답은 드릴 수 없습니다."

"외래를 잡으시면 한달 정도 걸리세요."


눈쪽이 다쳐서 코피와 입으로까지 피가 콸콸 쏟아지고 있는 와중에 접수처에서 하는 말들이 이해되지 않았고 병원을 옮기려는 나의 시도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119구급대원들도 응급이송을 매일 하는 사람들인데 안되니까 여기저기 뺑뺑이 돌다가 수술이 가능하다는 의원에 겨우겨우 닿은 것이었을테니까. 


현실을 받아들이고 아버지가 입원했다는 병원에 전화를 하니 현재 상태를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병동에는 아직 인계전이고 수술 중이라고 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의원에서 수술할 정도로 경미한 사고였으니까 수술을 했겠지라는 희망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괜히 손을 댔다가 부작용이 생기면 어쩌나 막상 수술 중에 안과나 신경과와 협진이 필요한 상황이 생기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내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수술이 끝나있었고 의사한테 어떤 설명도 듣지 못했다. 곁에 계셔주시던 회사 동료분이 열분을 토하셨다.


"너희 아빠 오전 9시 30분에 사고가 났어. 119불러서 00병원에 가서 CT랑 MRI랑 다 찍었는데 12시가 되도록 뭐 처치도 지혈도 안해주고 그냥 사람을 응급실에 두는거야 피를 철철 흘리는데, 수술이 되냐 어쩌냐 물어도 기다려라 자기네도 모른다고만 해. 그래서 여기 있다가는 사람 죽이겠구나 싶어서 다른 종합병원에 갔어. 거기도 접수만 해주고 하염없이 기다리라는거야. 그러다가 00대학병원에 갔어. 거기도 마찬가지야. 거기서 내가 너무 화가나서 소리소리 질렀어 사람 다 죽어가는데 의사들이 병원이 어떻게 사람 죽어가는 걸 지켜만 보고 있냐고 그랬더니 어떤 사람이 오더니 이 병원에 가면 일단 급한 수술은 할 수 있을거라고 알려주더라고, 그래서 여기까지 온거야. 여기서 오후 6시가 다되서야 뭐 응급 수술이라도 한다고 데리고 들어갔는데 사람은 나왔는데 의사한테 뭐가 문제냐 수술이 잘된거냐 물어보고 싶어도 의사를 만날수가 없네. 회진 때 들으라네. 거참."


얼만큼 다친건지 예후는 어떨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다만, 피로 얼룩져 있는 아버지의 얼굴과 콧구멍이고 입이고 한가득 피가 고여있는 얼굴을 보니 숨이 턱하고 막히는 것 같았다. 손발을 소독티슈로 닦았는데 검게 산화된 피가 손의 주름 사이사이에 가득 끼어있었다. 잘 닦이지도 았았다.


"아빠는 9시 30분에 다쳤다면서! 손 한번을 안 씻었어? 이게 뭐야 손이 얼굴이! 수술하면서 피도 안 닦아줘?"


화가나 짜증을 내니 아빠는 마취도 다 깨지 않고 더듬더듬 말했다.


"아니 화장실도 가고 손도 씻고 했지. 그런데 계속 피가 나서 거즈를 움켜쥐고 있으니까. 계속 그렇게 된거야. 코로 입이고 눈이고 피가 계속계속 났어."


회진 때까지 멍하니 기다리다가 겨우겨우 의사를 만나서 물어보니 전두동 골절이 되어 함몰되었고 피스를 받아 재건하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1차 수술은 개방된지 오래된 피부가 붙지 않을까봐 우선적으로 피부를 봉합하는 수술을 진행한 것이고, 뼈는 건드리지도 못했다고 했다. 만약 사고가 나고 바로 수술이 가능했다면 뼈부터 수술하고 상처부위를 봉합할 수 있었겠지만 이미 늦은 부분이라 출혈을 잡고 봉합을 우선적으로 시행하는 것을 우선으로 했다고 했다. 2차 수술이 있을 예정이라는 말을 남기고 의사가 떠났다.


의사의 말은 내가 받아들이기에 응급처치만 진행되었고, 생명이 위독하지 않으니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는 말이었다. 아무런 해결이 되지 않았다. 부서진 뼈는 아무 처치도 받지 못한채 붕대에 칭칭 감겨있고, 다시 피부를 열어 수술을 해야한다는 사실이 까마득했다. 바로 수술했다면 1~2주 후 피부가 아물면 정상생활을 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언제 2차 수술을 할 수 있을지 언제 정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지 까마득한 상태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해당 병원 전문의는 정형외과 전문의라서 두개골을 처음부터 손을 댈 수 없는 의사였다. 얼굴뼈는 성형외과의 분야라 본래 정형외과에서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수술이 가능한 성형외과에 전원을 요청하고 있는데 자리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환자의 가족은 그리고 환자는 아무것도 대응할 수 없다. 무력하게 그저 나에게까지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려야 할 뿐이다. 


의료공백 속에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채로 사고가 난지 일주일째 표류하고 있다. 


의료공백 속에서 국민이 고통을 겪고 고통 속에 죽어가는데도 눈썹을 꿈쩍도 하지 않는 정부와 의사협회가 솔로몬의 재판에서 아이를 반으로 갈라서 달라고 했던 가짜 엄마가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가짜엄마와 가짜엄마와의 싸움이다. 잘라진 아이를 두고 머리는 누가 가지고 다리는 누가 가질지 싸우지나 않으면 다행일까. 전쟁에서 누가 승리할지 모르겠다. 모든 전쟁이라는게 희생과 죽음이 진척에 있을 밖에 없음을 알고 있다. 의사협회든 정부든 그 누가 승리한다고 한들 그렇게 얻은 전리품을 국민들을 위해 나눌 것 같진 않다. 어차피 나이어린 전공의들의 미래를 배팅한 의료계나, 국민의 생명을 배팅한 정부나 가장 이타적이어야 존재들이 이타심을 잃어버린 시대 속에서 피흘리고 죽어가는 국민의 곁에 남아줄 같진 않으니까 말이다. 


나 또한 이 사건이 있기 전까지 "92차례나 전화 돌렸는데 추석 '의료공백'에 30대 환자 사망" 뉴스를 접했을 때 안타깝다 화가난다 정도의 가벼운 마음이었다. 바로 다음이 우리 가족의 차례일줄도 모르고말이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진게 사실이다. 직접 내 눈앞에,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이, 아니면 바로 내가 그 중심에 서지 않으면 공감하는 척에서 끝나는게 보통일 것이다. 분노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은 사라진지 오래다.


이렇게 화가나고 아픈데도 불구하고 나는 대한민국에 살아야 하고, 아프면 병원을 찾아야 한다. 

그게 그들이 가진 무기가 되는 것이 처참하다. 

 



 





 

작가의 이전글 아이들의 악의 없는 행동에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