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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진 Dec 29. 2020

영화 리뷰_<한낮의 피크닉>

모두의 오늘에 만나는 뜻밖에의 여행

사진출처: 다음영화


이 영화는 세 명의 감독에 의해 창작된 단편 영화들이 연결된 옴니버스식 구성을 취한다. 

각 단편들에 대한 짧은 감상을 적어보고자 한다. 


<1> 돌아오는 길엔 


 캠핑을 가는 한 가족. 아들이 운전하는 차의 조수석에는 아버지가, 뒷좌석에는 딸과 어머니가 앉아있는 너무도 평범한 가족의 모습이다.  캠핑을 가는 순간부터 돌아오는 순간까지, 관객은 이 평범한 가족의 내밀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어머니는 남편에게 무시의 발언을 자연스럽게 한다. 아들의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말도 서슴없다. 그리고 딸에게는 유독 엄격하다. 

아버지는 프라이버시를 존중받고 싶어 한다. 돈이 없고 가난한 자신을 사랑하지 않기에, 다른 가족들에게도 사랑을 줄 수 없다. 남자는 돈이 많아야 기를 펴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딸과 아들은 이런 부모님의 프레임에 종속되어 '보인다'. 문제는, 이 보여지는 모습과 양면적인 자녀들만의 모습이 따로 있다.  


 이 짧은 서사의 중심은 단연 어머니다. 

내 딸은 아니겠지.

캠핑장에서 만난 문신한 젊은 부부는 생각보다 훨씬 어리고, 음악을 할 것이며, 속도위반을 했겠지.


하지만 딸은 어머니 몰래 담배를 피고, 배에는 문신의 흔적이 있다. 그리고 문신한 젊은 부부는 그들 부부는 각각 무역회사 회사원, 그리고 프리랜서 디자이너이며, 적절한 시기에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다. 

 캠핑을 다녀온 전과 후로, 어머니가 세상을 보는 방식과 자녀들에게 기대하는 모습이 크게 바뀌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어머니가 자기 자신을 붙드는 일에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 


 어머니의 세대가 지나면, 더 이상 여성이 가족에게 지나치게 희생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오로지 자신이 원하는 자녀상을 정립해놓고 그 틀에 맞추어 자녀만을 바라보고 살거나, 사랑하지 않는 남편의 빚을 갚으며 자신을 잃어가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그리고 앞 세대의 어머니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 자유를 되찾는 여성들이 존재함에 감사한다. 


 가족이 화목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구성원들의 성별과 세대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로를 잘 알기에 서로에 대한 약점을 잘 알고 이는 무시와 모욕으로 이어진다. 특히 외부에서의 분노는 가장 나에게 익숙한 동거인을 향한다. 그들이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길래, 그토록 내 가족의 행동과 말투 하나하나를 못마땅히 여기는가. 실컷 짜증을 내고 나면, 미안한 마음에 화해를 청한다. 하지만 그 화해는 닿지 않는 예쁜 편지이다. 이게 가족들이 화해하는 방식이다. 



<2> 대풍감 

  

 절벽 앞에 가만히 정착해 있으면, 절벽 틈 사이로 아주 강한 바람이 불어 속도를 내줄 것이다. 그러니 그저 때를 기다리는 것이 청춘의 숙명이다. 영화 속 세 청춘은 자신들이 가장 힘든 것처럼 고민을 나눈다. 그들의 고민은 각자에게는 너무도 무거운 것이어서 경중을 가릴 수 없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암 투병 중이신 어머니, 전공을 살리지 못하고 억지로 가진 직업과 헤어진 여자 친구, 그리고 꿈을 이룬 것 같지만 아직은 목마른 열망. 

이들은 영화 속 대사처럼, 봄일 때 봄인지 모른다. 


주인공이 방황하는 장수풍뎅이에게 햇살을 선물하는 마음. 그 마음을 자신에게도 주었으면 한다. 



<3>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  call if you need me 


 감정을 쌓아두기 일쑤인 주인공 우희는, 감정을 표출하면 그 관계가 끝이 날까 두려워한다. 그녀에게는 감정을 표출해도 회복할 수 있는 관계가 절박했다. 화를 내지 못하는 것은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 아니다. 역시 화를 낸다는 행동에 있어서도,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중용이 마땅하다. 


 상대방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보는 것은 상대를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고 그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희는 자신을 감정 배출구로 생각하는 친구 영신에게 화를 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못 볼 사이가 된 것은 아니다. 


 내가 어떤 감정을 표출했을 때, 내가 왜 그랬는지 생각해보는 노력을 기꺼이 감당해줄 친구. 그 친구가 있다면 다른 사소한 관계의 단절 따위는 두려워할 이유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보고, '내'가 필요하면 전화하라고 기꺼이 말할 수 있는 친구, 그리고 그 친구가 필요할 때 고민 없이 전화할 수 있는 사이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갇혀서 외로운 강아지에게는, 새로운 동반자인 우희가 필요했다. 

갇혀서 외로운 우희에게는, 그 강아지가 필요했다. 




세 가지 단편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공통적인 이미지는 빛이다. 

<1> '돌아오는 길'에 창문으로 고개를 내민 어머니의 얼굴에 내리쬐는 햇살과 바람

<2> 재민이 문을 열어주었을 때 장수풍뎅이가 탈출과 동시에 맞은 눈부신 한낮의 밝음

<3> 그리고 갇혀있던 강아지를 구하러 간 우희의 핸드폰 플래시 라이트


가족, 친구, 그리고 나 자신과의 갈등으로 인해 너무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치유 능력이 있고, 세상에는 아직 빛이 있다. 

작가의 이전글 <에이트>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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