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유진 Dec 18. 2020

책 리뷰_<경제철학의 전환>

정치적 변동에 휘둘리지 않는, 굳건한 경제 정책의 대원칙

사진 출처: yes24


 

 노무현 대통령의 '비전 2030'에서 경제정책을 담당했던 '전직 관료' 저자의 책이다. 어제인 17일, 시의적절하게도 문재인 대통령이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2021년 경제정책방향 보고'에서 경제정책 기조를 제시했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경제정책 전환의 방향성 중 하나를 제시하는 책인 만큼, 경제와 정치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한 번쯤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저자는 우리나라 경제의 성장세가 한계에 부딪혔음을 설명하고, 그 타개책으로 미국의 경제학자 슘페터가 제시한 '공급 혁신' 개념을 소개한다. 이 공급 혁신은 생산요소(토지, 노동, 자본)의 자유로운 결합을 배경으로 하는 '창조적 파괴'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지금 통용되는 경제철학, 즉 케인스가 제시한 '수요 확대'를 골자로 한 해결방안은 단기적 해결책은 될 수 있지만 장기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 정부 지출을 늘리는 재정정책과 중앙은행이 돈을 풀고 금리를 낮춰 투자를 자극하는 통화 정책 등을 포함한 총수요 부양정책은 장기적 성장률 상승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분명히 할 점은, 저자는 경제 성장률의 상승을 제1의 목표로 두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문제를 저성장이 아닌 민생위기에서 찾고 있다.  임금의 상승-> 소비-> 투자-> 성장으로 이어지는 사이클의 첫 단계인 임금의 상승은, "인위적인 임금 상승이 아니라 저비용 사회를 뜻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가계소득의 상승을 통해 저비용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하지만, 성장 자체는 우리나라의 생존의 필요조건이기에, 우리는 양극화 문제와 빈부 장벽 문제를 성장의 방법과 함께 고민해야 한다. 저자는 "슘페터식 공급 혁신을 통한 경제성장"은 모든 일련의 고민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우리나라의 경제 구조에 슘페터의 원칙을 적용하기 위한  4가지 방안을 제시한다. 

4가지 방안은 모두 '이익공유'와 '패키지 딜'이라는 원칙을 고수한다. 이익공유는, 각 주체(계층)에게 얻어지는 이익이 있어야 한다는 win-win 원칙이다. 그리고 패키지 딜은, 현안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어야 함을 뜻한다. 

실업률 상승을 감수하고라도,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보장되어야


 첫 번째로, 노동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저자는 노동자 입장에서의 노동의 자유와 기업가 입장에서의 노동의 자유를 분리한다. 하지만 모든 논의에 앞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 기본 수요'의 충족이다. 이 기본 수요는 주거와 교육에 대한 수요로 대표되며, 각각 공공임대주택 지원과 무상교육 지원으로 충족시킬 수 있다. 


 노동의 유연성 보장은 중장기적으로 실업률 감소에 기여한다. 이때, 노동의 유연성은 기업 입장에서는 해고의 유연성인 동시에 노동자 입장에서는 노동자의 권리이다. 양 측에게 받아들여지는 '노동의 유연성' 개념을 바탕으로 저자는 재원 확보와 법 개정의 보다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한다. 이렇게 노동의 유연성을 늘릴 경우, 일시적으로 실업률이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저자는 여기에 대한 대비책도 함께 소개한다. 


그린벨트는 위헌

두 번째로, 토지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국내 고지가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저자는 국가가 '토지 공급 펀드'를 만들어서 투자산업에 빌려줄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한다. 중요한 점은 개발 이익을 확보하는 주체는 사인이 아닌 국가여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수도권 규제완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저자는 "지역균형발전과 국가경쟁력 강화는 양립할 수 없는 어젠다"라고 말한다. 이는 수도권의 입장에서는 발전의 문제이며, 지방의 입장에서는 생존의 문제라는 이분법적 패러다임으로 이루어져 갈등의 원인이 되는 이슈다. 하지만, "국토의 균형 발전은 실현 가능한 정책 목표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는 데서 논의는 시작한다. 대신, "수도권과 비수도권이 이익을 공유하는 방식"을 취해야 하는데, 이는 지자체가 수도권으로부터 인프라 투자를 위한 재원을 확보하고, 완전한 지방자치를 실현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책 속에서 저자는 이 두 가지의 실현 방식을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린벨트는 위헌"을 소주제로 설정한 이유는,  저자가 "토지 자유를 위한 핵심적 조치 중 하나"로 그린벨트의 폐지를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린벨트를 녹지 보존의 관점으로만 바라봤던 나에게, 원래 그린벨트의 설정을 헌재가 헌법 불합치로 판단했다는 점은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궁극적으로 저자는 토지 이용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점진적으로 토지 공급을 늘려야 함을 주장한다. 



정부의 금융규제는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세 번째로, 투자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금융산업은 신산업의 자금을 마련하고 혁신기업에 대한 장기투자를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그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저자는 슘페터가 강조한 "기업가 정신"(이익의 창출과 사회적 책임, 그리고 도전정신)을 혁신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강조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투자의 부족과 낮은 전문성으로 인해 국내 벤처업계에 대한 지원이 매우 미흡한 상황이며 자영업자의 창업자금 지원 기능도 부족하다. 규제된 금융산업에서 피어나는 혁신은 없기 때문에, 저자는 은행의 기업금융 강화, 자본시장의 활성화, 핀테크의 활성화, 자영업자 지원 등의 방식으로 금융규제 완화와 금융의 활성화를 주장한다. 



저출산과 유학생의 관계


마지막으로, 왕래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대외적으로는 지정학적으로 불리한 위치에서 "고래 사이의 새우"로 생존해야 하는 운명이다. 대내적으로는 저출산, 고령화라는 인구문제를 안고 있다. 두 문제에 대한 답은, "세계 최고 수준의 개방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즉 우리나라는 궁극적으로 플랫폼 국가를 지향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우리나라로 들어온 이민자들에 대해 노동시장을 완전히 개방"하고 이민자 인재를 양성하는 데에 어떠한 인센티브도 아끼지 않아야한다. 또한 해외 투자 유치를 확대하는 동시에 유학생 육성 정책을 통해 소프트파워의 확장을 도모해야 한다. 유학생 인재 양성을 통해 저출산, 고령화 시대의 인적 자원 감소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요지이다. 대외적으로는 국제적 허브로, 대내적으로는 다양성이 보장된 살기 좋은 나라로 도약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궁극적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목표는 일자리 창출과 중산층 확보


 위 4가지 자유의 보장이 도모하는 결과는 공급의 혁신을 통한 일자리 창출과 중산층 확보다. 

비록 저자가 제시하는 슘페터식 공급 혁신이 장기적 계획이더라도, 우리나라의 단임 정부와 국민들은 이를 믿고 기다려주어야 한다. 정치에 휘둘리지 않는 장기적 경제정책에 대해 고민하던 중, 같은 결의 좋은 기사를 발견해서 함께 정리해두고자 한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945634 (중앙일보 2020.12.15)

 

위 기사에 따르면, (1) 전반적인 경기 침체로 인한 실업률 상승과 (2) 연금체제의 미완성, 그리고 (3) 주택 가격 상승으로 대표되는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의 3가지 원인이 국민들을 포퓰리즘에 빠지게 한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이 포퓰리즘의 수단이 되는 선심성 재정 및 통화 정책이 다시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킴으로써 

경제적 불평등-> 포퓰리즘-> 경제적 불평등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위 3가지 원인에 대한 교정이 포퓰리즘 수요를 줄일 것이며, 경제 정책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의 규모를 최소화할 것이다. 그 교정의 내용을 다음과 같다. 

(1) 기업 투자와 규제완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과 실업률 감소 

(2) 경제적 불평등의 완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다음 책을 고를 때 고민해 봐야 하는 문제의식이 될 것 같다)

(3) 기존의 규제적 부동산 수요 억제나 수도권 지역 주택의 추가적인 공급보다는, 교통 인프라를 갖춘 주택의 공급 확대책 필요




"It's the economy, stupid."

맞다. 세상에는 문제가 너무나도 많지만 그 모든 문제의 심각성은 경제 정책으로 조금이나마 완화시킬 수 있다. 

그러니 경제정책이 국가의 흥망성쇠와 직결된다는 저자의 주장과, 책 속에서 충분히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음에도 부록으로 더 자세한 수치적 방안을 제시하는 저자의 노파심이 이해가 간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모르는 개념들이 추상적으로만 남는 것이 싫어서 책 내용을 번역하듯이 단어의 의미들을 하나하나 검색해봐야 했다. 

책 자체는 작고 얇지만, 한 때 나라의 경제를 책임져본 저자의 연륜이 그 안에 다 들어있다. 저자는 이 책 내용을 앞으로의 경제정책에 적용될 법한 아이디어쯤으로 봐달라고 겸손하게 말하고 있지만, 나는 책을 읽으면서  왜 진작 이런 정책이 존재하지 않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설득되고 있었다. 


'전환'은 지금 가장 필요한 개념이다. 국가에 닥친 경제적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고, 이미 통용되는 경제 철학(케인스주의)을 전환하여 조금 더 풍요로운 나라를 만드는 것. 그것이 저자가 제시하는 <경제철학의 전환>이다. 

작가의 이전글 책 리뷰_<2020 제11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