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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진 Dec 19. 2020

책 리뷰_<퓨즈만이 희망이다>

코로나 위기 속 복지국가를 말하는 의사의 에세이

사진 출처: yes24



 퓨즈는 "과전류가 흐르면 제일 먼저 끊어져 전기 장치를 보호하고 합선으로 인한 화재를 방지하는 장치"이다. 

작가가 퓨즈만이 희망이라고 한 것은, 퓨즈로 상징되는 위기에 가장 먼저 노출되는 취약한 사람들을 고려해야만 현재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음을 나타낸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가장 취약한 집단들, 즉 우리 사회의 '퓨즈'들에게 가장 먼저, 가장 가혹하게 다가왔다. 정신병원 수용자, 요양시설 장기수용자, 기저 질환을 가진 노인들, 택배 노동 근로자, 고위험군의 보건의료 근로자, 돌봄이 필요한 어린이들 등 다양한 퓨즈가 위기에 반응해 먼저 폭발했다. 그리고 이 폭발로 인한 불안은 혐오와 가짜 뉴스라는 잘못된 방식으로 사회에 퍼지게 되었다. 


 저자 소개를 보면, 저자는 의학과 보건학을 전공했고, 현재 '건강 정치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건강'이라는 개념을 재정의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WHO에서 정의하는 'Well-being"은, 단순히 질병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이 가치를 두는 일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것"을 의미한다. 


 이 책의 키워드는 '온존'과 '연대'이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부분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연대가 필요한 이유


 인간은 왜 연대해야 할까. 

이 책의 <건강은 없다>라는 챕터에서 저자가 생각하는 답을 찾을 수 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고통과 질병, 장애를 완전히 박멸하거나 부정할 수 없다. 

그러니 인간의 실존적 당위는 완벽한 건강이 아닌, 불완전성과 함께 온존 하기 위한 존재들의 끝없는 연대이다. 


그렇다면, 그 연대의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타인의 아픔에 대해 무감각하지 않는 것을 하나의 방법으로 제시한다. "공동체의 유일한 통일성은 서로에 대한 연민이 되어야 한다."는 질 들뢰즈의 말을 인용한다.



초연결 사회라면, 노인도 연결되게


 인간이 늙어갈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존재라면, 이 "늙어감"을 단순히 무능함으로 치부해서는 안된다. 

인간이 나이 들어가는 과정은, 공동체 결속의 과정이며, 저자는 늙어감을 공동체적 경험을 축적한다는 점에서 "마트로시카"인형에 비유한다. 따라서 나는 노인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우리가 겪을 미래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인을 공동체의 일부로서 인정한다면, 노인도 젊은 세대와 어울려 일함으로써 공동체와 단절되지 않아야 한다. 즉 마이클 샌델의 말대로 노동의 본질을 경제적 부분과 공동선에 대한 기여로 나누었을 때, 노인도 이 노동의 기회를 누림으로써 사회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진짜 기원


코로나 바이러스 전파의 탓을 발원지인 중국에만 전가할 수는 없다. 인류가 야기한 생태계 파괴와 세계화가 주 요인이기 때문에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945641

 위 칼럼이 주장하는 바도 같다. 요약하자면 인류와 바이러스는 지구 상에서의 주도권을 위해 오래전부터 갈등해왔고, 코로나 위기는 그 갈등의 한 표현 양상이다. 인류가 지금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이유는, 1950년부터 구축된 '인류세' 때문이다. 야생동물 서식지 파괴, 갯벌 간척, 공장식 축산 등 인류가 제멋대로 급격하게 생태계를 변화시켜 왔으므로, 결국 우리는 바이러스가 아닌 인류를 탓해야 한다. 위 글쓴이는 생물 종 다양성 확보와 생태계 보호 예산을 확보하는 것을 촉구한다. 또한 2050 탄소중립 선언이 일회적 이벤트로 끝나지 않기를 희망한다. 


 책의 저자도 위 칼럼의 저자와 비슷한 결의 해결방안을 제시한다. 

먼저, 정책적으로는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를 신속하게 메꾸어야 함과 감염병 대처 체계를 구축해야 함을 주장한다. 여기서 공공의료의 양적, 질적 강화는 필수적이다.  

 

 또한 "기존 신자유주의적 국제정치, 경제체제의 전면적"인 전환(여기에는 생태친화적 전환이 포함된다), 그리고 기존의 발전 중심의 환원론적 과학이 아닌 "복잡한 전체를 설명하는" 이론적 과학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이 학계는 '언던 사이언스'를 지양해야 한다. 언던 사이언스, 즉 "하지 않은 연구"는 "주류 담론과 다른 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지배집단과 불화할 가능성이 큰 연구"를 말한다. 과학의 정치화는 정치인이 과학자들의 연구 지원에 개입하고 조종하는 현상을 야기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조금 위험한 학문, 비판적인 연구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인용한다. "철학은 언어를 무기로 인류의 지성에 걸린 주문과 싸우는 전투다."



법이념으로서 복지국가

 


 복지국가에 대한 추가적인 공부를 위해, '법이념으로서 복지국가' (전남대학교 법학연구소 김연미 저자, 법학논총 제35권 제3호 , 285~311쪽)라는 논문을 추가적으로 내용을 요약, 정리해보고자 한다. 


 저자는 복지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로 대표되는 헌법 내 여러 기본권들의 총합에 대한 보장의 의미를 가진다고 말한다. 즉 복지는 '통합적 권리'이자 '자유권의 회복 체계'로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권리는 하나의 인격체를 설명하는 존재의 언어"이며, "개인의 통합적 권리는 인간다운 삶을 위한 회복의 근거"를 가진다.


 복지는 자선을 법적인 강제력에 의해 확보한 제도로 여겨진다. 따라서 사회부조의 체계는 "필요에 기초한 사회적 최저치의 하한선 부근에서 논의를 진행"해왔다. 논문의 저자는, 이 최저치를 넘기만 한다면 곧바로 시장의 논리가 적용되는 영역이 되는 것인지, 그렇다면 그 영역은 비도덕적인 영역인지에 의문을 제기한다. 우리는 어떻게 시장의 논리와 복지의 논리를 아우를 수 있을까. 


자유주의 사회에서의 복지의 도덕적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사회생물학적 관점: 다윈의 집단 선택이론에 기반하여, 인간은 본질적으로 공감과 연민을 느끼는 생물임을 알 수 있다. 


(2) 인류학적 관점: 법적, 도덕적, 종교적 의미를 가진 '선물'은-> 연대를 위한 의무를 발생시키고-> 사회적 삶이 지속된다. (복지는 단순히 강제적 자선이 아닌, 사회적 소유의 삶이 도덕적, 법적 의무에 기반하여 순환하는 것을 나타냄)   


(3) 복지는 재산권에 대한 소극적 자제로 표현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자선을 법적 의무가 아닌, 도덕적 권리로 설명할 수 있다.


(4) 저자는 분배적 정의나 교정적 정의가 아닌, 회복적 정의를 강조한다. 

 미국의 철학자인 누스바움은 타인이 처한 상황이 부당하다는 판단, 타인의 불운이 자신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판단을 기반으로 한 연민을 강조한다. 더불어, 이 연민에 기초한 복지를 설명함에 있어서 "인간다움의 실현이야말로 우리가 회복시켜야 할 복지의 대상"이라는 점을 말한다(누스바움은 '인간 번영'을 위한 인간의 핵심적 능력을 '능력 이론'을 통해 설명한다) 또한 그녀는 "자유주의적 정치적 사회가 기초적인 복지후생을 일군의 능력이나 기회로 묘사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위 논문의 저자는 법치국가가 추구해야 하는 복지를 회복적 정의와 통합적인 권리 모델로 상정함으로써, 복지는 자유권과의 갈등관계가 아닌, 자유권을 회복하는 것임을 역설한다. 




 위 책과 논문은 '복지', '온존(well-being)', '건강' 개념의 재정의를 통해 에 대한 나의 관점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중, '연대'의 개념은 책을 읽고 나서도 여전히 추상적이고 공허한 메아리로 들렸다. 정말 개인주의가 만연한 자유주의적 흐름에서 사회적 연대가 수많은 공동체 내에 자리 잡을 수 있을까. 

 

따라서 내가 '연대'에 대해 큰 깨달음을 얻었던 우리 학교 학보사 페이스북에서 발견한 한 칼럼을 다시 찾아가서 읽어보았다.

http://chunchu.yonsei.ac.kr/news/articleView.html?idxno=27002


 연대를 그렇게 어렵고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세계는 거대한 연결망이고 각 개인은 그 연결망의 일부로써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 그리고 그 세계에서 모든 연대를 위한 과정과 활동이 멈추지 않는다는 것.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연대를 응원하고, 내가 선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연대에 기꺼이 동참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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