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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읁 Mar 06. 2020

MMCA 과천

빛의 상, 중, 하


02.02.2020

MMCA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월 2일에 방문한 것 치고는 너무도 늦은 포스팅이지만, 과천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을 다녀왔다.

4호선 서울대공원역 4번출구에서 20분 간격으로 셔틀버스를 운행한다. 우리는 조금 걷고싶었고, 동물원까지 이어지는 리프트를 타고 걸어가기로 했다. 서울대공원은 봄에 사랑하는 연인과 걷기에 참 좋아보였다.


봄에 탔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겨울바람을 맞으며 타는 리프트도 나름 신선했다. 역시 물은 예뻐를 연신외치며, 막계청담이라는 호수와 서울대공원 동물원을 거슬러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도착했다. 접근성이 조금 떨어지긴 해도, 데이트 하러 오는 연인들에게는 조용하니 제격이었다.


1986년에 문을 열었다는 과천관. 금호미술관을 설계한 건축가 김태수는 경북 영주에 위치한 부석사에서 영감을 얻어 설계를 했다. 그는 건축물을 산세에 부응시키고 싶어했고, 따라서 건축물의 드러남이 최소화 되었다. 과천관이 청계산에 살포시 얹혀 있다고 표현하지만, 내가 느낀 과천관의 첫인상은 굳게 뿌리내린 돌덩이 같은 형상이었다. 마감재로 화강암을 사용하여 견고함과 육중함이 느껴졌고, 이는 건물이 산 속에 놓인 돌덩이처럼 보이게 한다. 도심 속에 위치한 서울관이나 덕수궁관과는 달리 청계산 산속에 덩그러이 위치하여 조금은 고집있어 보인다.


10월 03일 개천절을 의미하는 1,003개의 모니터

관 내부에 들어가자마자 마주하게 되는 건, 과천관의 상징과도 같은 백남준 선생의 '다다익선'.

1988년도에 설치된 다다익선은, 백남준의 대표작 중에서도 최대규모의 작품으로 꼽힌다. 무려 18M가 넘는 이 작품은 구겐하임을 방불케 하는 스파이럴 구조의 한 가운데를 턱하니 차지하고 있다.


주어진 공간을 장악하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300개, 500개, 1,000개의 구상을 거쳐 다다익선의 1,003개의 모니터가 설치되었다. "다다익선"은 각국의 문화적 상징물을 담아 동서양, 과거와 현재, 세계 인류가 예술과 과학기술을 통해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백남준의 작품세계가 응축되어 있다. 과천관의 개관과 거의 동시에 설치되어 세월을 함께 지낸 다다익선은 현재 기계의 노후화로 발생한 화재를 계기로 가동이 중단되어 있다.


빛의 상, 중, 하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나선형의 스파이럴 구조. 건물의 형상 또한 우아하다. 30년도 더 된 오래된 건물이지만 곡선의 매끄러움이 어색하지 않게 표현되어 있고, 특히나 오래된 목재난간이 멋스럽게 어울린다.


중앙홀을 비워두길 바랬던 건축가 김태수와는 달리 당시 문화국장이던 김원은 건축물이 구겐하임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구조에 먼저 눈이 가는 것을 막기 위해 다다익선의 설치를 제안했다. 하지만, 나선형 구조물이 없었다면 다다익선이 가져오는 웅장함 또한 반감되었을 것이다. 공간과 전시물 두가지 요소가 서로가 가진 요소를 극대화 시켜준다.


천창에서 내리쬐는 자연빛부터 디딤판에서 새어나오는 은근한 국부조명까지 이 공간이 지니고 있는 빛에는 위계가 있었다. 빛의 상, 중, 하를 느낄 수 있었다. 중앙의 천창에서 내려오는 자연빛과, 올라가는 동선에서 발견할 수 있는 스며내려오는 듯한 주황색 조명빛이 잘 어우러진다. 직접조명하지 않고, 루버를 통해 빛이 새어나오는 것처럼 빛을 유도한다.




현재는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50주년 기념전《광장: 미술과 사회 1900-2019》와,《한국 비디오 아트 7090: 시간 이미지 장치》가 전시중이다. 비디오아트 하면 백남준. 어릴 적 교과서에서나 보았던 기억이 있다. 가장 인상깊었던 "탈 장르 실험과 테크놀로지". 1990년대 초 중반, 장르의 혼성과 새로운 매체의 도입, 테크놀로지와 뉴미디어에 대한 관심은 현대 미술계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고 새로운 한국형 비디오아트를 전개시켰다. 이 시기의 비디오아트는 영상이미지를 평면적으로 전시하기 보다는, 조각과 설치에 영상을 개입시켜 장치적인 구성을 전개한다. 영상전시는 구성이 단조로울 것이라는 편견을 깨주었던 전시였다.



평면적 전시만 보다가, 비디오아트를 처음 접해보니 굉장히 자극적이고 직설적이었다.

이도 그럴것이, 1990년대는 대내외적인 시대변동의 계기로 사회전환적 분위기가 고조된 시기였고,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음은 확실했다. 당시 비디오 작가들은 장치로서의 비디오 매체가 가진 시간성, 이미지를 적극 활용하여 시대의 쟁점들을 소재로 삼았다. 


작품 하나하나가 담고 있는 의미들이 강렬했고, 이를 수 분의 시간동안 집중해서 보다보니, 점점 지쳐갔다.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드는 요즘에 과연 이 전시들을 다 관람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어둡고 자극적인 영상들만 접하다보니 답답함과 메스꺼움을 느꼈고, 전시를 채 다 보기도 전에 한 숨 돌리자며 복도로 나왔다. 복도에 나와서 마주한 장면은 지친 머리를 환기시키기에 적절했다.



복도에 나와서 마주한 천창과 내리쬐는 햇빛. 역시 나는 전시물보다는 건축물을 관람하러 다니는 듯 하다.

"다다익선"이 설치된 중앙 원형 전시홀에는 수평 천창이 설치되어 있어, 빛이 깊게 들어오지 않는다. 따라서 간접조명들을 다수 설치하지 않으면 조금은 어두운 공간이 된다.


반면에, 천창을 경사창으로 설치한 중앙홀은 채광이 깊고 은은하게 들어와 신선하고 한적하다. 전시관의 어둡고 캄캄한 내부와 복도와 중앙홀의 하얀 내부마감, 그리고 천창에서 내리쬐는 빛들이 대조되어 극적인 느낌을 준다. 우리는 의자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내리쬐는 빛을 바라봤다.



다시 중앙 원형홀의 다다익선을 마주하며 과천관을 나왔다. 주로 현대미술을 전시하며 VR 등 새로운 과학적 접근들을 시도하는 과천관이지만, 현대성을 전시하는 미술관이 산 속에 위치하여 접근성이 너무 떨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미술관은 우리 삶 속에서 일상적 공간으로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은 목적성을 가지고 움직이지 않으면 방문하기 꽤나 어려운 위치에 존재한다. 미술관이 마치 서울대공원의 한 요소로써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떤 이는 과천관을 현대 미술의 유배지라고 표현한다. 이에 적극 공감하면서, 현대를 표방하는 미술관이 도시에서 격리되었다는 점이 조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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