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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읁 Oct 19. 2020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I-2'

[서평] 일상생활의 구조 下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I-2' 

도시는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먼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도시로 몰리는 것은 매한가지이다. 그들은 자유를 찾아서, 더 나은 임금을 찾아서, 이른바 도시의 빛을 찾아서 스스로 모여든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도시’는 ‘사람이 많이 사는 지역’으로 정의되지만, 단순히 인구가 많이 몰려든다는 이유만으로 도시가 될 수는 없다. 이 책에서 말하듯 ‘도시’라고 명명될 수 있는 조건은 인구 수치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도시가 도시로서 존재하는 것은 반드시 자신보다 열등한 생활을 하는 지역을 앞에 놓고서만이 가능한 것이다(p699).” 이 책에서 브루델은 도시가 지닌 권력에 대해 강조하듯 끊임없이 설명한다. 도시는 도시로서 존재하기 위해 아무리 작더라도 자신만의 제국을 만들어내고, 이를 끝내 지배하고 만다. “작은 도시들은 가까운 시골 지역을 ‘눌러 이기게’되고 ‘시민의식’을 가지고 그곳으로 뚫고 들어가는 반면에 그 자체는 더 인구가 많고 더 활동적인 대도시에 잡아먹히고 종속당하게 된다(p701).” 도시의 권력구조는 끊임없이 지배하고 종속당하며 확장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도시에 더 많은 자본과 인력이 존재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좀 더 확실히 말하자면, 이러한 재화들은 도시 주변의 지역에서부터 공급받은 것일 수밖에 없지만, 활발한 재화의 집중 속에서 “모든 도시는 움직임을 받아들이고 움직임을 다시 만들어내며, 상품과 사람을 흩어내고는 다시 새로이 모아들이는 일을 한다(p730).” 도시는 곧 시장인 것이다. 이곳에서는 재화들이 교환되고 생산되며, 동시에 소비된다.      


도시는 계속 움직인다. 이 움직임은 도시의 물리적인 확장과 같은 움직임을 말할 수도 있고, 다른 도시와의, 혹은 외곽지역과의 권력구조 내 움직임을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도시는 끊임없이 주변 작은 도시나, 외곽 시골지역들과 무수한 관계를 맺으며 그들을 착취하고, 자본을 취하면서 그들만의 권력을 확인하고, 몸집을 불려나간다. 브루델은 “‘사치’와 ‘빈곤’이라는 삶의 불평등한 두 측면(p821)”이 귀결시키는 결과들에 대해서 중세 서유럽의 많은 국가들을 사례로 들며 강조한다. ‘사치’와 ‘빈곤’이라는 이 두 카테고리는 처음 도시가 형성되는 지리적·환경적인 측면에서부터 다방면으로 도시의 존재와 함께한다. 지리적·환경적인 측면에서 사치와 빈곤은 도시의 흥과 쇠를 결정한다. “위치상의 유리한 특권이라는 것은 도시가 융성하는 데 필수 불가결(p729).”하다. 이는 도시가 습득할 수 있는 자본의 크기와 연관되며, 자본은 도시와 주변 지역 간의 권력관계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도시는 자본에 의한 권력에 의해 확장되고, 다른 도시를 권력구조 안에 종속시키며 성장한다.    

  

브루델은 서유럽을 “상당히 일찍부터 세계적으로 특출한 곳, 말하자면 일종의 사치(p742p).”에 비유했다. 로마제국이 멸망하면서 서유럽의 도시는 쇠퇴했지만, 포도밭이나 과수원 등 시골이 발전됨에 따라 다시 재기할 기회를 찾을 수 있었다. 더불어, 국제무역이 성행하면서 시골을 다시 지배하고 보호하는 도시의 ‘권력’을 되찾았다. 시골과 분리된 도시는 언제나 “강력한 힘, 풍부한 돈, 세력의 표시(p744)”였다. 너무나 커져버린 도시에는 더 이상 국가의 힘은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이른바 ‘도시국가’가 탄생한 것이다. “몇몇 도시들은 자신을 둘러싼 정치적인 공간을 완전히 깨버리고 스스로 독자적인 우주를 만들어갔다(p745).” 그렇다면, 지배하려는 힘을 가진 것이 도시이고, 보호받으려는 것이 시골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시골은 그들만의 독자적인 우주를 만들려고 하지 않은 것일까? 이 책에 의하면 시골은 오히려 도시의 지배와 보호에 적응해나가는 듯 보였다. 중세시대 사람들에게 국가는 너무나 먼 존재였고, 그들을 직접 지배하며 보호해주는 것은 그들의 군주이자, 영주이자, 그들의 도시였다. “도시는 서유럽의 최초의 ‘조국’이었으며, 이곳의 애국심은 그 뒤에도 오랫동안 영토국가의 애국심보다 더 일관성 있고 훨씬 더 의식적인 것이었다(p747).” 서유럽이 오래된 도시의 역사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도시민들의 충성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도시민으로서 도시가 운영되기 위한 일의 일정부분을 맡고 있다는 자부심, 그들 간의 끈끈한 유대관계, 먼 국가보다는 가까이에 있는 도시가 나를 직접 보호해준다는 신뢰감이 도시발전의 큰 바탕이 되었다. 도시에 대한 애국심이 있는 도시민들을 중심으로 서유럽의 도시들은 점점 독창성을 띄며 하나의 사회로써 고유하게 발전해나갔다. 도시로서의 ‘자유’, 그것이 도시를 크게 성장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도시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 ‘공동체’였지만 동시에 갈등과 형제 살해적인 전쟁을 내포하는, 근대적인 의미의 ‘사회’였다(p746)” ‘사치’와 ‘빈곤’은 하나의 도시 내에서도 다양한 양상을 낳는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중세 서유럽의 도시에 대한 애국심은 국가에 대한 애국심과 이루어 비교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시의 그 중심까지 모두 평화로운 것은 아니다. 중세 유럽의 계급사회가 불러온 빈부격차는 도심 구성원 내의 불평등을 야기하였다. “서유럽에서 자본주의와 도시는 그 근저에서는 같은 것이었다(p749).” “산업, 길드, 그 특권, 그 이윤이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하는 문제로 도시는 끊임없는 분란(p756)”을 겪었다. 캉티용이 말한 것처럼 도시들의 부는 환락을 불렀다. 상업도시로 몸집을 키우던 도시들은 대부분의 산업을 전적으로 사치품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 곁에서는 끼니를 잘 잇지 못하는 장인들과 옹색한 소시민층이 역시 근근히 연명하고 있었다(p778).” 귀족계급은 무도회나 벌이며 근근이 그들의 사치를 메꾸는 삶을 살았고, 노동자계급은 도시의 사치를 메꾸기 위해 끊임없이 일할 수밖에 없었다. 도시는 그렇게 돌아갔다. “국가 덕분에, 교회 덕분에, 귀족 덕분에, 그리고 상품 덕분에, 그리고 농민과 목동, 광부와 장인, 짐꾼 등의 고된 노동 덕분에 … 모든 잉여가 이 도시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도시는 외부의 노고를 먹으며 살아갔다(p779).”     


“이 세계를 활성화시키고 상층의 구조를 끊임없이 변형시키는 것은 크든 작든 이 불평등, 이 부정의, 그리고 이 모순이다(p822).” 브루델은 이 책을 마무리 지으며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특권임에 틀림없다고 말한다. 이 세상은 불공평하며, 누구는 돈과 사치를 누리는 반면에 누구는 빈곤 속을 헤맨다. 지배하고 지배당하는 구조는 예나 지금이나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본인 스스로도 지방에서 나고 자라며 배웠지만, 서울로 상경한 이유는 중세 시골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 도시의 빵 부스러기를 먹기 위해, 더 많은 일자리, 더 많은 기회를 찾아서 올라온 것이다. 도시는 이 점들을 아주 잘 이용한다. 필요한 인력을 쉽고 빠르게 쓰고 소진할 뿐, 그들에게 보장된 미래와 안락한 보금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도시에서 살아가면서, ‘이곳이 과연 내가 살아갈 곳이 맞는가?’와 같은 의문이 자주 들곤 했다. 내가 누리고 있는 문화, 교통, 편리함, 복지 등은 도시에 살면서 얻을 수 있는 빵부스러기 정도였다. 도시는 불안하다. 내 것이 아닌 것만 같은 느낌. 결국 모든 것은 자본에 의해 굴러갈 것이라는 부정적인 기대감들이 도시민들을 좌절에 빠트리곤 하는 것이다. 부는 더 큰 부를 만들고, 빈곤은 언제나 소외된다. 브루델이 언급한 것처럼 “불균형 때문에 한 국가의 차원이든 전 세계의 차원이든 상황에 따라 언제나 정복할 곳이 생기고, 다른 것보다 더 큰 이윤을 얻을 수 있는 착취 분야가 생기는 것이다(p823).” 이에 딱히 반박할 수는 없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중세 서유럽보다 더욱 더 심한 불균형과 착취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유감스럽게도 더욱이 공감할 수밖에 없다. 부에 의해 경험이 나뉘지 않는 것, 사회에서 소외받는 이들을 도시가 보호해주는 것, 그런 도시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도시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던 과거의 날이 떠올랐다. 과연 나는 지금, 그 격차를 줄이는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인가? 나도 빵부스러기를 먹기 위해 올라온 시골사람으로서, 그 부에 다가가기 위해서, 선택하려는 특권을 누리고 싶어서, 공부를 시작한 본질을 잃고 부와 명예만 좇으려고 하고 있진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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