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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스트의 우기기에 슬기롭게 대처하려면 OO하라

B는 우기기 시작했다. "녹취라고 하지 않았어. 난 녹음이라고 했어!"

화자와 청자가 의미의 덩어리를 주고받는 과정이 대화다.


내가 말한다. 

상대가 듣고, 관련된 답변을 한다.

이런 무한한 상호작용의 서사가 대화다.  


대화의 순기능은 각자의 마음을 비교적 뚜렷하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음은 생각이자 정신이다.  

보이지 않지만 실존하며 물성처럼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래서 대화는 중요하다.

대화는 말이 씨줄과 날줄처럼 얽히고 설켜 새로운 맥락을 만들어 내는 결정체다.  

무형의 마음을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이 말인 것이다.


그러니까 누군가를 알려면 말이라는 실체로 생각을 나누면 된다.

건강한 소통은 복잡하고 심오한 인간의 정신세계를 이해하기에 유익하다.


하지만 양질의 소통이 근본적으로 힘든 유형이 있다.


바로 나르시시스트다.


자기 중심적인 나르시시스트는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

다만 나르시시스트 특유의 성향상 자신의 기분을 맞춰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친절하다가 점차 본색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의 관점에서 인간은 도구다. 


책상이 특정 주장을 하거나 감정을 표현하면 누구나 놀랄 것이다.

물체가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현상은 예상치 못한 일이기에 충격적이다.

나르시시스트가 희생양을 바라보는 시각이 딱 그 정도다.


하지만 우리가 경험과 가치관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발언하면 나르시시스트는 놀라워하면서도 경계심을 발동시킨다. 

친밀감을 느껴 마음 속 이야기들을 풀어놓으면 그는 모욕감과 수치심을 경험한다. 

상대가 무조건 끄덕거리는 존재가 아니라 평가하고 판단하는 주체임을 알게 될 때 나르시시스트는 큰 충격을 받는다. 

자신의 선입견이 틀렸다고 비판하는 맥락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나르시시스트가 얼마나 일그러진 관점을 지녔는지 드러나는 단면이다.


인간은 누구나 생각하는 존재로 태어난다. 

생각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데 일조한다. 

그리고 고민하거나 판단하는 것은 우리가 인간임을 증명하는 행위다. 


항상 우리는 나르시시스트가 스스로 만든 고정관념 바깥에 존재해 왔다.

그도 이런 진실을 알길 원한다. 

나르시시스트는 인간의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을 떠받들여 주는 도구로 보니 신경 쓸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의 입장에서는.

누구나 어떤 영역에서 시간을 투자해서 생각하지 않으면 무지해지기 마련이다.


결론적으로 나르시시스트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굳게 닫고 살아간다.

그러면서도 상대편이 마음을 열어주길 바란다.

막상 마음을 열면 경계하거나 경멸하면서 말이다.   


나르시시스트는 동문서답을 하곤 한다.

이럴 때 우리는 상당히 곤란하다.

나르시시스트는 본인에게 불리하면 다른 화제로 논점을 흐린다.

그러니 애초에 대화가 잘 성립되지 않는다.


그는 청개구리처럼 군다.

핀 조명을 피해 다니는 배우처럼 행동한다.

사실 그는 지적을 받을까 봐 종종 심장이 작아진다.  


보통 사람들은 갈등을 해결하려고 대화한다.

하지만 나르시시스트는 문제 해결은 중요하지 않다.

그는 자신이 어떤 상황에서도 돋보이길 원한다.

그래서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종류의 대화를 아예 받아들이지 못한다.

문제 해결이 아닌 회피를 택하기에 그와 대화하면 의미가 흩어지고 날아간다.


이 행위는 두서없는 것과는 다르다.


예를 들자.

아이가 방을 어질렀다.

부모는 질서 없이 흐트러진 물건을 치우려고 들어선다.  


그런데 이제 아이는 자아가 생겨서 부모가 방에 들어오는 게 불편하다.

방이 지저분한 걸 아이도 잘 알고 있다.

혼날 것도 잘 안다.

그래서 들어오는 게 싫은 거다.   

또 나만의 공간에서 제약 없이 놀고 싶다.

부모가 꼭 간섭하는 것만 같은 거다.


그래서 아이는 불안을 해소하려고 몸집을 최대한 크게 부풀렸다.

소리를 지르고 있지만 아이는 약자다.

이 상황에서 제일 불안해하니까 말이다.


부모는 잘못이 없다.  

아이가 어린 마음에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리는 것이다.

아이의 목적은 내 방에 아무도 안 들어오는 거다.

편하니까 말이다.

그게 다다.  

나르시시스트의 마음가짐은 이런 아이의 악다구니와 유사하다.

그의 언행은 단순하고 유치하다.

거기에는 얕은 목적이 숨겨져 있다.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한 목적 말이다.  


나르시시스트의 대화 목적은 낮은 자존감을 올리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와 얘기하면 불쾌하다.


무시당하는 것 같다.

존재를 부정당하는 기분이다.

조롱당하는 것 같다.

그래서 대화하고 마음의 기운이 빠진다.

언젠가부터 내 감정과 판단력을 의심하게 된다.

자괴감을 느끼는 순간이 일상에 자연스럽게 배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안 좋은 감정을 느끼는 게 아리송하다.

원래 나르시시스트는 좋은 사람처럼 보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 누구보다 이상하다.  

날 공격한 건지 친절한 건지 마음을 열어서 진지해진 건지 나르시시스트의 저의가 모호하다.

나르시시스트도 진실을 말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희생양은 결국 복잡한 심정을 내면의 밑으로 누른다.  

내가 착각했다고 결론짓는다.  

오늘따라 기분이 이상하다고 치부한다.

가시가 숨겨진 언어를 넘겨버리는 것이다.

비슷한 순간이 반복되고 쌓인다.

그제야 희생양은 나르시시스트의 실체를 의심한다.

나르시시스트는 누군가를 알아가려고 대화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얼마나 괜찮은지 알리려고 노력한다.

그게 나르시시스트가 자존감을 채우는 공식이다.


하지만 그런 목적에 반하는 상황이 발생하곤 한다.

바로 희생양이 태도를 바꿔 나르시시스트를 비판할 때다.

나르시시스트가 가장 당황하는 순간이다.


이제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그가 소극적으로 변하게 된다.

곤충이 변태를 하듯 나르시시스트 특유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다.


갑자기 나르시시스트는 어리바리해진다.

뭘 잘 모르는 사람이 된다.

잘못을 합리화하는 궤변을 펼친다.

남 탓을 한다.

이때 대화는 우리가 나르시시스트가 친 엉성한 방어막을 걷어내는 작업으로 채워진다.  


다음의 대화에서 나르시시스트가 얼마나 자기만 보호하려고 악을 쓰는지 감상해 보자.


아주 작은 영역에서도 그는 상대의 말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친다.

                      

진실공방은 어렵다.

상황은 하나인데 각자의 기억이 다르기 때문이다.

양쪽의 말이 상반되기도 한다.

그럼 이 지점에서 제삼자는 무엇을 기반으로 진실을 판가름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물증이 있는 쪽이 우세하겠지만 둘 다 심증일 때도 또 다르다.

그래서 진실공방은 참 어렵다.   

 

그런데 나르시시스트와의 진실 공방은 다른 관점에서 봐야 한다.

높은 확률로 나르시시스트가 틀리기 때문이다.

본질적인 원인은 그에게 있다.

나르시시스트가 진실을 밝히는 걸 원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상황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흘러가길 기대할 뿐이다.


지금 B는 대화의 주제에서 벗어나고 있다.


그래서 A는 답답하다.

애써서 전달한 의미가 흩어지고 있다.  


B는 상대선수가 던지는 탁구공을 쳐내듯이 A의 모든 말을 최대한 밀어내고 있다.

분명 아까 전까지만 해도 그는 잘못을 인정하는 척하면서 사과하는 시늉도 냈다.

그런데 진심은 아니었다.

처세술에 더 가까웠다.

끝에 가서 결국 ‘너도 마찬가지다’라고 무작정 우겼기 때문이다.

A와 B는 같은 입장이 아니다.

A와 B는 반대편에 서 있다.

무엇이 마찬가지냐고 추가적으로 질문하면 B는 구체적으로 답변하지 못했다.

  

이럴 때는 태도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게 좋다.

내 의견을 접거나 약간 수정해서 다시 발언하려고 하지 말라.

나르시시스트는 최대한 상대의 말을 부정하는 뉘앙스를 펼친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거다.

그에게 대화란 명확한 진실을 파헤치는 게 아니라 이기거나 지는 싸움이다.

그리고 그게 나르시시스트의 자존감 높이기 처세술이다.


그러니까 돌밭에서 돌을 골라내듯이 그의 의견에서 결점만 찾아내라.

살짝이라도 동조해주지 마라.

A는 말의 요지를 분명하게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A: 내가 말하고 싶은 건 B가 말한 걸 기억해서 전달하면 이제 와서 B가 아니라고만 얘기하니까 그게 답답했다는 거지. 난 기억해서 얘기한 것뿐인데. B가 기억이 안 나면 기억이 안 나는 거지. 이게 없던 일이고 네가 이상하다는 식으로 나오니까 난 당황스럽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지.


B: 그래.


이전의 통화에서 B는 바득바득 우기면서 결백함을 자부했다. 그냥 기억이 안 나서 그런 적이 없단다. A가 혼란스러워서 망상을 했단다. 물론 주장에 따른 증거는 없었다. 다만 그는 본인의 기억력이 좋다고 자체 평가했다. 믿을 만한 말은 아니었다.


이럴 때 되도록 평정심을 유지하자.

어차피 그는 우리 예상대로 행동했을 뿐이다.


물론 막상 예상한 시나리오가 그대로 펼쳐지니 감정적으로 힘들 수 있다.

하지만 통증을 일단 부여잡자.

그리고 내가 아는 진실을 밀어붙이자.

끝까지 의견을 관철해라.

또 나르시시스트가 주장하는 내용 중에 비논리적인 점을 찾아내서 자세하게 비판하자.    


이전 통화에서 B는 바득바득 A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순순히 대답하고 있다.


지쳤을까. 아니면 속으로 이상한 주문을 외우고 있을까. 예를 들면 ‘난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거야. 내가 진짜 그렇다는 말은 아니야’ 이런 식으로 잘못을 합리화하는 주문을 말이다.


A는 B가 작정한 것처럼 무조건 자신과 반대로 이야기하는 것에 의문을 표현했다.


A: 그리고 B가 넌 좀 욱하는 거 있다고 말했잖아. 그런데 내가 그때 얘기를 하니까 네가 욱하는 건 아니지 내가 욱하는 거지 또 이렇게 얘기하는 거야. 물론 내가 욱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다만 B가 날 그렇게 평가했었다는 거지. 그러니까 B이 그 말을 했던 건 맞아.


B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너는 나랑 비슷한 면이 있네.

너도 좀 욱하잖아.


의외의 발견을 했다는 듯 말했었다.


그런데 저 말은 결국 ‘나는 욱하는 성격이다’가 주제다. 타인에 관한 평가를 징검다리 삼아 자신의 성격을 규정하는 쪽으로 얘기가 흘러갔다. 그의 자기중심적인 성격을 엿볼 수 있다.

 

후에 이 말을 듣고 B는 정색했다.

아니야.

넌 욱하는 성격은 아니지.

내가 욱하는 성격이지.


A는 욱하지는 않는다. 그럼 B는 생각 없이 저렇게 말한 걸까. 어쩌면 본인의 성격을 자랑하고 싶어서 눈앞에 보이는 대상을 끌어들였을 수도 있겠다.   


막상 A가 이 부분을 언급하자 B가 반대로 말했다. 그래도 얘기의 결은 이전과 같다. 그는 자기 성격을 말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짓는다.

A: 내가 자꾸 이 말을 반복하는 건 B가 내가 기억하고 B가 기억 안 나는 부분은 덮어두고 없던 일이라고 말하거나 혼동했다고 말하잖아. 마치 나를 억울하게 만드는 가해자처럼 말하니까. 나는 B한테 들었던 얘기를 한 거야.


A는 다시 강조했다. B가 억울해하지 않아도 된다. 그는 상습적인 막말 논란을 일으킨 당사자다. A는 B가 했던 말을 기억해서 말했다가 이런 사태까지 이어진 거다.


A: 그런데 그랬던 이유도 B가 나는 기억력이 좋잖아 이렇게 말하면서 본인을 추켜세우는 것도 납득이 안 가고.


A는 기억력이 좋다고 스스로 말하는 B에게 거부감이 들었다.


예전에 그는 흡족스러워하며 이렇게 말했다.

난 객관적이야.


이번에 기억력을 이야기할 때도 비슷한 태도였다. 정말 저렇게 생각하는 게 맞나 싶기도 했다. B는 A가 맞장구라도 쳐줄 줄 알았을까. 당황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니 긍정적인 반응을 기대하는 게 맞는 것 같다.


A: 기억력이 좋으면 왜 다 기억을 못 하는 건데?


A는 B의 아픈 부분을 찔렀다.


A: 그러니까 B의 기억력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사람이니까 기억을 못 할 수 있잖아. 그런데 자꾸 나는 완전무결하고 네가 다 잘못된 거라고 하는 게 불편했다는 거지.


A는 B를 배려해서 부연설명을 했다. 또 상대를 주어로 두지 않았다. 내가 느낀 감정을 중심으로 말했다.


B: 그래. 불편했겠지.


B가 조그마한 목소리로 동조했다. 그는 목소리가 워낙 얇고 성량이 작다.


A: B가 초등학생 같다고 날 비하한 것도 맞고.


B는 면전에서 A를 욕했다. 그런데 자신은 기억이 없단다. 그래서 없던 에피소드란다. 들은 입장에서는 꽤 답답한 발언이었다.


A: 내 말을 곡해하면서 비하하니까 기분이 나빴다는 거지. 그런데 그것도 생각도 안 해보고 C도 같이 있었으니까 우리 둘이 기억을 못 하는 거야? 이런 식으로 말하니까. 좀 그랬지.


당시 A, C, B는 같이 있었다. B는 A의 기억을 부정하려고 C를 끌여들인 전적이 있었던 것이다.

잠시 이전의 대화를 복기하자.

그때 B는 처음 듣는 얘기하는 듯 말했다.


A: 김밥집에서 초등학생이라고 했어. 웃으면서 말이 안 통한다고 말한 거랑-

B: 얘기가 늘어나네


A: 뭐가 늘어나?

B: 그날 나랑 셋이 같이 있었어. C도 같이 들었잖아. 만약에 물어보는 거야. 너는 들었다고 했는데 우린 둘 다 기억이 없다면 그건 우리가 기억을 못 하는 거야?


당연한 걸 왜 질문할까. 당연히 B와 C가 기억을 못 하는 거다.

C는 녹음기가 아니다. 연약한 인간이다. 기억 못 할 수 있다. 그 주장의 전제는 오류 없이 모든 말을 기억하는 인물이 존재한다는 가정이 기반이다. 논리성이 부족하고, 신빙성이 없는 발언이다.


A: 들은 사람은 누구지?

B:.. 셋이 같이-


B는 멈칫했다. 당연히 A는 궁금해서 질문한 건 아니다. B는 저의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대답하려고 잠깐 숨을 고르는 듯했다.  


A: 그러니까 그 말을 들은 사람은 나야.

B: 그러니까-  


A: 기억이 없으면 그게 없던 일이 되는 게 아니야.

B: 내가 너한테 초등학생 같다고 기억을 했다고?


B는 마음이 흔들렸는지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이미 A가 언급했다.   


A: 응. 정말 기억 안 나? 이거 너무 충격인데. 말한 당사자는 기억을 못 하더라. 들은 사람만 기억해. 왜냐면 그게 상처가 되니까.

B: 그러게. 앞으로는 대화할 때 녹취를 해야 하나.


B는 코너에 몰렸다고 판단했는지 녹취를 운운하며 무리수를 던졌다. 이는 나는 그런 말을 안 했다는 결백을 우회적으로 말한 거다. A는 화답했다.


A: 나야말로 녹취를 해야겠다.

재밌는 현상은 나중에 이 말을 전해 들은 B의 반응이었다.

A가 녹취 발언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자 B가 또 인정하지를 못하고 부정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렇게 말이다.


A:  이번엔 나도 비판을 한 거지. 그런데 B가 오히려 막 신경질 내면서 뭐 녹취를 해야겠다 이런 식으로 나왔잖아. 마치 녹취를 안 해서 본인이 억울한 일을 당한 것처럼 이야기를 하니까-


B: 녹취라고-


B가 급하게 이야기를 끊었다.


A: 녹취라고 했지.


B: 아니, 녹음을-


설마 단어가 문제라는 건가.

됐다.

녹취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그것도 B의 입에서 먼저 말했다.

이럴 때 의견을 굽히지 마라.

어차피 쓸데없는 시비다.


A: 그러니까 녹음을-


B: 서로 정확하게 이야기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니까. 그리고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고 그래서-


B는 ‘서로’ 기억하지 못했다고 A의 바짓단을 물고 늘어졌다, 치사하게. B는 자신이 기억하지 못했다는 걸 부정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었다. 이미 그런 적이 없다고 강경하게 주장했었다. 그러니 기억 못 한 걸 인정한 셈이 됐다.


B는 A를 끌어들였다. 세세하게 기억하는 A와 B는 상반된 입장이다. 같은 묶음으로 갈 상황이 아니다.


입장을 확실하게 가르자. B만 기억 못 했다. 그것도 ‘정확하게’ 기억 못 한 게 아니다. B의 머릿속에 그 기억은 아예 삭제돼 있다. 정확도와 무관하다.


나르시시스트의 생각은 논리가 조악하다. 우기면 상대가 받아 줄 거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A:  그런 뉘앙스 아니었거든?


A는 가볍게 맞받아쳤다. 대화의 맥락과 B의 말투를 보자. 기억을 그대로 보존하자는 계몽적 발언이 아니다. B는 평소 즐겨 쓰던 비아냥거리기를 시전 했을 뿐이다. 녹취했다면 무결함이 밝혀질 텐데 그게 없어서 아쉽다는 뜻이다. 의도를 우회적으로 말한 거다. 듣는 사람이 유추할 수 있게끔 말이다. 그 태도에 A는 화가 났다.

B:  어쨌든 녹취라고 말하지는 않았어.


B는 흔들리고 있었다. '어쨌든'이란 접속사는 현재 이 주제에 반격할 논리가 없다는 거다. 대신 어떤 단어를 말했는지 표면적인 의도에 집착했다. 자기에게 불리한 주제니 더 이상 언급하고 싶지 않다는 거다.


그리고 B의 기억은 틀리다. 분명 녹취라고 말했다.


A: 녹취라고 했어.


B: 녹음이라고 했어요.


B는 반말로 일관하다가 갑자기 존댓말을 썼다. A는 당황했다. B가 존댓말까지 써가면서 사활을 걸 대목이 아니다. 우선수위라는 게 있다. 흐름상 단어가 중요하지는 않다. 심지어 의미도 같다. 그가 단어 중 딱 한 글자에 기묘하게 매달릴 명분이 없다. 설마 혼자 다른 의미라고 착각한 건가. 그렇다면 B의 부족함이 원인이다.


A: 녹취나 녹음이나 그 말이 그 말이지.


B: 블라 블라


A: 이런 걸 말하는 거야. 의미만 통하면 되지. 녹취라고 하셨고. 어쨌든 녹음이든 녹취든-


B: 그런 의미로 받아들여졌을 거에 대해서는 그래. 내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쨌든 그래 그리고 나는-


B의 저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그런 의미’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에 대해 ‘그렇다’는 걸 들은 자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대충 훑으면 ‘악의는 없었다’ 정도가 되겠다.


그런데 B는 원래 비꼬는 걸 잘한다. 그는 되도록 ‘기분 나쁘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상대방을 무조건 비난한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 부분을 지적하면 ‘그런 의도’가 아니라고 우긴다. 못되게 굴고 싶은데 지적받는 게 두려워니 늘 퇴보한 길을 마련해 두는 것이다. 나르시시스트는 비판받는 걸 정말 무서워한다. 그래서 도망가는 거다.  


지금 비슷한 상황이다.


지난번 통화에서 B와 C는 같이 있었다. 그리고 B는 C에게 실시간으로 A가 말한 내용을 전달한 전적이 있었다. 제삼자에게 A를 욕한 것이다.


잠깐 그 상황을 복기하자.

A: 그동안 통화를 하면서 간사가 나 기분 나쁘라고 하는 말도 있었지.

B:.................


이렇게 운을 트고 말했다.


A: 싸가지가 없다고 한 건 정말.. B를 되게...

B: 내가 너한테 싸가지 없다고 말했다고?


A: B를 믿고 따르고 좋아했는데 B는 선배 놀이하고 싶어 하는구나.

B: 하하. 내가 너한테 싸가지가 없다고 말했다고?


B는 웃는 시늉을 냈다. 그는 당황한 티를 내고 싶지 않으면 억지로 웃음소리를 내곤 했다.   


A: 응. 맞아. 그런데 나한테 싸가지 없다고 한 게 아니라 내가 다른 사람한테 하는 행동을 말했는데 네가 그렇게 하면 싸가지가 없다고 했어. 정확히 말하면 바가지가 없다고.


B: 바가지가 없다고 했다고?

A: 응, 맞아.


B: 나는 그런 말을 쓰지도 않는데?


그런 말을 쓴 적이 없단다. 들은 사람은 있는데 말이다.


A: 그러니까. B가 기억을 못 하는 거야. 나는 다 기억한다니까.  

B: (목소리 크기를 줄이지 않고 옆 사람에게 일러바치는 말투로) 내가 기억 못 하는 것뿐이래.


바로 이 구간이다.

A: 나는 다 기억한다니까. 누구한테 말하는 거야? 지금 나 앞에 있는데 다른 사람한테 말하는 거야?

B: 아니. 옆에 C가 있다니까.


옆에 누가 있는지 질문하지 않았다. 알고 있으니 말이다. 다만 옆 사람에게 말을 전한 태도를 지적한 거다.


A: 그건 알아. 그런데 지금 나랑 통화하는 거잖아.

B:.... 어..


B는 뜸을 들이다가 대답했다. A는 B의 예상과 다른 반응을 보였다. 아, 옆에 누가 있어서 그랬군요, 제가 착각했네요. 이런 대답을 기대했다.


A: 지금 다른 사람한테 내 이야기하는 거 지금 내가 생중계로 듣고 있는 거야?

B:  아.....


A가 기분 나빠할 줄 몰랐다는 듯한 말투를 연기했다. 처음 깨달았다는 듯이 말이다. A가 넘어가지 않자 일단 B는 수그렸다.


A: 나 그런 거 모욕적인데?

B:...................


B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진작에 모욕적이라는 걸 알았기에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왜? 기뻐해야지. B가 원하는 대로 됐잖아? A는 모욕감을 느꼈다. 충분히.

A는 그때 상황을 다시 설명했다.


A: 그리고 B가 C한테 내가 기억을 못 할 뿐이래 이런 식으로 말했잖아, 내가 들으라는 듯이 말한 거잖아. 그런 행동 자체가 유치하다고 생각했거든? 그렇게 나를 대해야 해? 그 지점도 불쾌했어. 뭐, 의도했겠지만.


B:....................


지난번처럼 B는 이 구간에서 아무 말도 못 했다.


A는 B의 행동이 유치하다고 해석했다. 그리고 상황에 대한 감정을 표현했다. 불쾌했다고. 그리고 B가 일부러 그랬다고 짚었다.


B는 대충 넘어가고 싶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길게 해봤자 실익이 없다. 결국 그가 원하지 않는 상황으로 치닫을 뿐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이 상황을 넘어가서는 안 된다.


일단 상대가 기억을 못 하고 버벅대면 상황 설명을 최대한 자세하게 하자. 그리고 그 상황을 명료한 언어로 평가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물어라. 왜 그랬는지 스스로 말하게끔 유도하라.


A: 그런데 이유가 있었어? 왜 그렇게 옆 사람한테 내 얘기를 한 거야? 기억이 안 날 뿐이래. 이게 그렇게 충격적인 이야기인가?


A는 B가 옆사람한테 말을 전할 정도로 격노할 말이냐는 거다. 기억을 못 한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 못한다는 건가.


B는 누군가가 자신을 기억력에 관해 안 좋게 평가했던 게 기분이 나빴던 걸까. 기억력이 좋다는 근거 없는 확신을 거부당해서?


B: 기억이 안 날 뿐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았고-


B가 쥐어짜듯이 답했다.


A: 그렇게 이야기했어.  


B: 차를 타고 갈 때 네가 전화를 해서 계속 이야기를 했잖아. 내가 당황하니까 C가 운전하다가 왜 뭐 그랬어. 그래서 내가 A한테 짜증 나게 하네라고 했다네라고 전한 거야.


A: 아니야.


B는 A에게 짜증 나게 하네라고 큰 소리로 짜증을 낸 적이 있었다. 그 부분을 지난번 통화 초반에 말했다. 그리고 그가 말을 전한 건 통화 중반 정도였다.


당시에 C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물론 C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의구심이 드는 건 A의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B가 옆에 말을 전했기 때문이다.


그럼 A가 말하는 동시에 C가 물어봤다는 걸까. A가 말하기 전에 미리 C가 물어봤다는 건가. 그런데 어쩜 그렇게 타이밍이 기가 막힐까.


전화통화 초반에 질문할 것일 수도 있겠다. 진실은 하나인데 A의 관점에서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제기하는 게 최선이다.


B: 내가 너한테 짜증 나게 한다고 말했다고 그랬잖아. 처음에 듣고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냐고 했는데 C가 뭐 때문에 그러는지 물어봤어.


아까 한 말을 또 읊었다.


B: 내가 그날 이후에 그 통화에 대해서 생각을 하도 많이 해서... 그런데 결국에는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멈칫하면서 말끝을 흐린다) 내가 좀 더 심하겠지. 그런데 나는 그런 의도로 이야기한 게 아닌데.

B는 다시 자신과 A를 엮으려고 시도했다. 기억을 못 한 것도 서로 그런 거고, 심한 말을 한 것도 서로 그런 건가? 둘 다 틀린 주장이다. B는 혼자 기억을 못 했다. 그리고 막말한 것도 B다.


생각을 많이 했다는 말은 맞을 것이다. 그런데 그 뒤의 말이 문제다. B는 A와 자신을 같은 카테고리에 묶으려고 했다. A와 B는 엄연히 다르다. 지금 상황은 B의 막말에 A가 사과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 라니. B는 A가 지적을 할까 봐 신경이 쓰였는지 내가 좀 더 심했겠지라고 덧붙였다. 영혼 없이 말이다.


처음에는 막말이 기억이 안 나고 없던 일이었다.

지금도 기억이 안 나지만 아마 본인이 막말을 했을 거란다. 그때 A가 소리를 질렀다고 느껴서 ‘너무 많이 화가 났단다’

그런데 B는 이후에 교묘하게 말을 바꾼 것이다.


처음에 B는 A가 소리를 질렀다고 느꼈단다. 그런데 기분 나쁜 적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다음에 통화에서 B는 A에게 ‘너무’ 화가 났단다. 그래서 막말을 했단다. 그렇다면 이건 인정한 거다. 미안하단다. 사과도 했다. 그런데 그다음에 자꾸 B는 사족을 덧붙였다. ‘서로’ 막말을 했다는 거다. A는 막말하지 않았다. B의 막말을 기억해서 전한 거다. B는 막상 사과한 다음에 비판받은 게 억울했는지 주장을 은근히 바꿨다.


A: 아니-


B: 의도가 다르게 받아들여진 것에 대해서... 너도 그런 이야기를 한 게 아니었는데 나 혼자 곡해하고 왜 그렇게 말하냐고 그런 것처럼 나도 비슷한 부분들이 또 있어. 그러니까-


갑자기 주장의 결을 바꿔버리는 B의 태도가 A는 당황스러웠다. 의도가 다르다고? 모르겠다. 싸가지가 없다고 하거나 초등학생 같다고 한 게 나쁜 의도가 없었다는 건가? 방금 화가 나서 막말을 했다고 인정하고 나서 저런 말을 한 거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A: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그게 무슨 말이야?


B: 뭘 뭐가 무슨 말이야? 내가 너한테 했던 말 중에 나한테 이렇게 말했다고 이야기할 때 아 내가 그런 의도로 말한 건 아니었는데라고 생각되는 부분들이 있었는데 그건 어차피 서로의 의도였기 때문에 설명하기 (개인적으로 어려워) 하.. 어쨌든 어려운 것 같아.


설명하기 어렵지 않다. 그 설명이 보편적인 관점에서 타당하면 된다. 그런데 B의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무조건 기억이 안 나니까 없던 일이라고 한다든가. 내용을 구체적으로 말하지 못하고, 아니라는 말만 반복한다든가 하는 식이다. 지금 대화가 길어지는 이유는 B가 사실을 사실이라고 인정을 못해서 대화가 힘들어질 뿐이다.


B는 의도를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환경 탓을 했다. 나르시시스트는 책임지는 걸 싫어한다. 책임은 비판을 받을 가능성과 긴밀하게 맞닿아 있다. 말 그대로 책임지는 것은 비판마저도 수용한다는 행위가 포함돼 있다. 그래서 나르시시스트는 모든 상황에서 내 탓이 아니라 남 타시알고 고슴도치처럼 방어하느라 바쁘다.  


B: 그런데 무엇이 됐든지 간에 너한테 내가 어떤 말로 그리고 나의 그런... 뭐라고 할까 그... 좀 음 좋지 못한 태도들 그리고 나의 어떤 그런 부분들 때문에 네가 힘들었다는 것은 분명하니까.


바로 잡자. A가 힘들었다는 게 중심 축이 아니다. 제대로 다뤄저야 할 부분은 B의 못된 언행이다. 그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흐릿하게 처리하는 습관이 있다. '어쨌든'이라고 말하면서 얼렁뚱땅 넘어간다. 아니면 자신의 행동 때문에 타인이 힘들었다는 심정을 강조한다. A가 원하는 건 이해가 아니다. 이건 상담이 아니다. 비판하는 시간이다. B가 확실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길 바란다.


A: 의도를 제가 오해한 건 아니고.


B: 그거는 내가 미안해.


A: 그리고-


B: 그러니까 오해가 아니라-


A: 나한테 나쁜 의도로 말을 했다고 생각해.


B: 조금 다르게 전달이 됐다고 나는 느끼는 거지.


A: 어떤 점에서? 뭐가 잘못 전달됐지?


B의 주장이 지금까지의 대화의 방향과 너무 달라서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A는 정말 사실 확인 차원에서 질문한 거다.


B: 지금 우리가 계속 그 이야기를 했는데. 그러니까 또 얘기해도-


A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저 말이다. 지금까지 다 이야기해 놓고 무슨 말이 전달이 안 됐다는 건가.


A: 그러니까 뭘 이야기해? 내가 자꾸만 오해했다는 식으로 말하지 마. 뭘 오해했는데?


B: 아니 너도 나한테 오해를 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B는 알맹이가 없는 말만 하고 있다. ‘무엇’이 의도였고, ‘무엇’이 잘못 전해졌다고 말하는 건지 내용이 없다. 실체 없는 내용이라는 의미다.  


그리고 소소한 것에 과도하게 집착한다. 오해한 게 아니라고 잘못 전해진 거란다. 크게 다르지 않다.


A: 마찬가지라는 말 하지 말고.


B: 얘기가 또 돌아가잖아.


그러니까 B는 ‘무슨’ 이야기가 돌아갔는지 그 내용을 하나도 말을 못 한다.


A: 내가 할 말이지. 잠시만. 내가 묻고 싶은 건 지금 이 말은 아니야. 기억을 못 했을 뿐이래 이 이야기를 하셨던 건 맞고. 전에 전화통화하면서 기분 나쁜 게 몇 개 있었다. 그중 하나가 나한테 바가지가 없다고 이야기했잖아.


이럴 때는 대화의 주제를 다시 잡자. 화제의 길을 옳은 데로 틀라.


A: 바가지가 없다고 했다고 반문하면서 B가 나는 그런 말 안 썼다고 했잖아.


B: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A: 그러니까 그 말투 때문에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상황 설명을 하는 거야. 그런 말을 안 쓴다면서?


B: 아니- 그러니까 네가 나한테 예를 들면 뭐 싸가지 없다고 처음에 말을 그렇게-


A: 바가지가 없다고. 바가지가 없다고.


B: 아니- 처음에는 네가 B이 나한테 싸가지가 없다고... 나는 그런 말을 안 쓰는데 하니까 (약간의 연극톤 첨가) 네가 바가지가 없다고 이야기를 했잖아.


A: 그래. 내가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 일단-  


B: 그러니까 내가 한 적이 없다는 말은 싸가지가 없다는 말을 안 쓰니까 내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


A: 아니지. B가 처음엔 반문했지. 내가 너한테 싸가지가 없다고 했다고 이야기를 했어. 이래서 내가 그랬지. B가 싸가지가 없다고 한 게 아니라 내가 다른 사람한테 한 행동을 B한테 말을 했는데 니가 그렇게 하면 싸가지가 없다고 했어. 정확히 말하면 바가지가 없다고 말했다고 나는 분명히 밝혔어. 그래서 B가 내가 바가지가 없다고 했다고? 이렇게 이야기를 했고. 내가 맞다고 이야기를 하니까 B가 난 그런 말을 쓰지도 않는데라고 말했어.


B: 그러니까 나는 싸가지가 없다고 말을 안 쓴다고 한 거지.


저 말도 사실이 아니다.

B의 주장은 틀렸다.  


A: 그래서 B이 단지 기억을 못 하는 거라고 말했고. B이 기억을 못 할 뿐이고 나는 다 기억을 한다고 하니까 옆에 C한테 내가 기억을 못 하는 것뿐이래 이렇게 이야기를 한 거야.


B: 아니야. 그거에 대해-


A: 아닌 게 아니야. 맞아.


실제로 B는 어떻게 말했을까. 복기해 보자.

B: 하하. 내가 너한테 싸가지가 없다고 말했다고?


A: 맞아. 네가 그렇게 하면 싸가지가 없다 정확히 말하면 바가지가 없다.

 

B: 바가지가 없다고 했다고?

A: 응 맞아.


B: 나는 그런 말을 쓰지도 않는데?


자, 여기까지 이전의 통화를 다시 살펴 봤다.


B는 바가지가 없다는 종류의 단어를 쓰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싸가지'란 단어를 안 쓰고, '바가지'라는 단어도 안 쓴다고 '주장'했다. 그러니까 A의 기억이 맞다. B의 기억이 틀리다.


이렇게 나르시시스트는 틀린 말을 많이 한다.


B는 계속 우겼다.


B: 그러니까 내가 이야기했을 때 네가 나한테 짜증나게 하네 라고 이야기해서 네가 너무-


A: 그것 때문에 아니야.


B는 바가지 논란에서 다른 주제로 갈아탔다.


B: 아니야. 그래서 내가 C한테 이야기를 했어. 내가 싸가지 내가 어.. 내가.... 짜증 나게 하네라고 했대. 내가 그렇게 이야기를 했어. 그러니까 네가 바로 막 나한테 화를 내면서 지금 누구랑 뭐 왜 나랑 통화하면서-


A: 그게 바가지가 없다 그 이야기였어.


B: 아니. 그 부분이 아니고.


A: 아니야-


B: 내가 너무 황당해서 C한테 말을 한 거야. 그때 내가 그렇게 말했다고 하는데 그 이야기를 한 부분이야.


황당했다는 감상은 여기에 어울리지 않다. 단어 선택을 보면 알 수 있다. 아직 B는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까도 상황을 면피하려고 사과하는 시늉을 했을 뿐이다.  


A: 아니야. 아니야.


B: 네가 막 바로 화를 내서 그다음부터 중간에 C랑 이야기를 안 했어.


B는 다시 주제를 갈아탔다. 말을 전한 것은 사실인데 한 번만 그랬다는 거다. A가 말 전한 걸 반복했다고 한 적은 없다. B는 한 번만 말을 전한 거니까 자신을 비판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A: 얘기하면 안 되지. 나랑 이야기하는데. 당연하지.


B: 아니-


A: 그런데 이제-


B: (애교 비슷한 콧소리 첨가) 너도 나랑 통화하면서 엄마랑도 이야기하고 다 하잖아~~


A는 B의 처세가 황당했다. 어머니가 문을 열길래 문을 닫아달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상황이 B의 약점을 건드렸을 가능성을 떠올렸다. B는 혹시 자기에 대한 말을 한다고 상상했을 수도 있다. 그럼 그때 그는 티내지 않았지만 감정적으로 상처를 받았을 수도 있다. 그래서 보복성으로 A의 행동을 따라했을 가능성도 있다.


A: 그렇게 핑계 대지 마.


B: 하....


A: B는 고의적으로 나 들으라고 내가 기억 못 했을 뿐이래 이렇게 말한 거지.


B: 고의적으로 말한 게 아니고 옆에서 C가 말을 하니까 하는 거지. 그리고 나는 너무 답답하니까 이야기를 한 거야.


B는 C에게 책임을 돌렸다. 그리고 살짝 자신의 심정을 피력했다. 그럼 B는 꼭 외부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말을 전한 게 아니다. 결국 이 말도 B에게 유리한 언급은 아니다. 결국 말을 전한 동기에 자신의 감정도 흘러들어갔다는 거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고의적으로 말한 게 아니라는 주장과 상반되는 것이다.


A: 그러니까 저는 그런 태도가 불쾌하다고.


B: 그래. 알아. 너는 불쾌하겠지.


A: 그러니까 의도한 거지, 그거는. 솔직히 의도한 거지.


B:...............

B는 아무 말도 못 한 채 어쩔 줄 몰라했다. 그는 더 이상 방어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 듯했다. 고의적으로 말했다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으니 말이다. 결국 자기 말에 자기가 넘어진 거다. 불쾌한 걸 알았단다. 그는 뭔가 안다는 걸 자꾸 피력하는 습관이 있다. 저 말도 그 습관에서 비롯된 것인가. 불쾌한 걸 알았다고 말했으니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저런 말을 한 거면 의도한 것 맞다.


A: 왜 나를 그런 식으로 대해? 그동안 B한테 얼마나 호의를 보이고. B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잖아?


B: 그럼 내가 너한테 계속 못되게 굴었니? (나는 간헐적으로 못되게 굴었을 뿐이야)


이 부분에서 B는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게 됐다. 계속 못되게 굴었냐고 반문하는 것은 B에게 유리한 말이 아니다. 그럼 간헐적으로 못되게 굴었다는 걸 인정하는 게 된다. 그리고 잘못했다는 간접적 고백이 된다. B는 자신을 보호하려고 저 말을 했겠지만 오히려 인정하는 꼴이 됐다.


A: 그런 나한테 왜 그러는 거야?


B: 아니. 그러니까 계속 그동안 너한테 내가 안 좋게 하고, 깎아내렸다고 생각한 거야?


역시 저 말도 본인의 약점을 부각한 게 된다. 포인트는 ‘계속’이다. 계속 깎아내린 건 아니고, 간헐적으로 깎아내린 건 맞다고 말한 게 된다. 지나친 방어는 자신에게 독이 된다는 걸 B가 알았으면 한다.


A: 물론 B과의 뭐 좋은 추억도 있지. 그래서 오랫동안 후원을 한 거야. 자랑하는 게 아니라 나는 마음이 있었던 거지.


B: 사실 나는 무슨 말인지.. 뭐 그래. 내가 기억을 못 하고...


A를 B를 몇 년 간 후원했었다. 이 상황에서 중요하게 다뤄질 사안은 아니다. A는 B를 지적한 거다. 이 지점에서 B는 A의 인식을 문제 삼았다. 자신은 고칠 점만 본다고 주야장천 노래를 불러댔다. 하지만 입장이 바뀌니 그의 관점도 변했다. B는 가끔씩 내가 급발진했을 뿐인데 왜 잘한 점은 좋게 보지 않느냐는 거였다. 가끔은 아니었다. B는 전반적으로 그랬다.    


A: 기억을 못 하는 거지.


A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대화의 소재가 자꾸 비켜나가는 게 불편했다.


A: 기억을 못 할 수 있어. 그런 것 때문에 내가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니까.


B는 자신이 기억을 못 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충격받은 듯했다. 아까부터 A는 기억을 못 하냐고 타박하지 않았다. 다만 본인의 기억이 사실이라고 말했던 거다. 하지만 B의 관심은 거기 없었다. 오로지 이 상황에서 본인에게만 포커스를 맞추고 있었다.


B: 그러니까 기억을 못 하는 것 때문에 뭐라고 하는 건 아닌데. 어쨌든 그런 이야기를 했다고 네가 말하면... 내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했을까. 내가 왜 그런 이야기를 했을까. 도대체 왜 이런 이야기를 했을까...


B는 도돌이표처럼 말했다. 왜 ‘그런’ 이야기를 했을까 스스로 궁금해하는 걸까. 아니면 막말한 본인을 자책하는 걸까. 그런데 반성의 기미는 별로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B가 굳이 이유를 찾는다고 친다면 A는 해답을 제시하고 싶다. 바로 B가 나르시시즘을 발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태가 악화됐다.  


B는 자신이 모든 사람보다 나아 보이길 원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B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인정하질 못했다.

그래서 그가 취한 방법은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는 것이었다.

그런 병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심리를 해소하려 들었던 것이다. B는.


A: 그러니까 기분이 나쁘니까 기억을 하는 거겠지.


B: 어. 그러겠지.


A: B가 결례되는 말을 자꾸 하니까.


B: 어, 그래.


A: 좀 기분이 많이 나빴지.


B: 그래 그렇게 들.. 그렇게 했으면 그랬겠지.


여기에서도 B는 말실수를 했다. 그의 두꺼운 방어기제는 단순하다. 그는 비판으로부터 도망치려고 일단 말장난을 한다. 무조건 상대가 그렇게 ‘들었다’고 주장한다. B는 논리적으로 내용을 반박하지 못한다. 말로만 ‘들렸다’는 우기기 화술만 되풀이한다.  


B는 아까처럼 들렸다고 말하려다가 숨을 고르고 다른 서술어를 골랐다. A가 말을 하나하나 짚고 있으니 조심스러워진 것이다. 그런데 신경써서 겨우 바꾼 말이 ‘그렇게 했으면 그랬겠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주장도 어폐가 있다. '그렇게 했으면'이라는 표현은 가정법이다. 그럼 그렇지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하는 것이다. B가 말한 걸 A가 당사자에게 전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당사자는 기억을 못 한다. 재밌는 상황이다. 그러니까 B가 인정을 못 하니까 대화를 질질 끄는 거다.


그리고 B는 단어보다는 대명사를 쓴다. 안 좋은 화법이다. 한편으로는 빠져나가기 좋은 구멍을 만드는 셈이다. 대명사를 쓰면 자기 상황에 유리한대로 말바꾸기에 편하다.


A: 기억이 안 날 수 있지만 없던 일이라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하여튼 그 지점도 기분이 나빴고. 그때 B가 바가지가 없다고 한 말도 자꾸만 없던 일이라고 우기니까. 선명한 기억인데 그런 일이 없다고. B한테 막 누명을 씌우는 것처럼 얘기를 하니까. 당연히 B가 인정 안 할 거라고 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화가 나는 거야.


B: 그래.


A: 그런데 B에 거기에 기름을 부어 넣은 게 기억을 못 했을 뿐이래라고 생중계로 내가 뻔히 듣는 걸 알면서-


B: 아니야. 그전에 짜증 나게 하네라고 했대라고 말했을 때 이미 네가 나한테 화를 내서 그 후로는 이야기를 안 했어.


A의 핵심은 그 이후에 이야기를 했는지 안 했는지가 아니다. B가 A가 들으라는 듯이 의도적으로 말을 전달했다는 게 골자다. 그런데 B는 이 주제와 큰 상관 없는 주제로 말을 돌렸다. 아마 회피성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말일 거다. 비판받고 싶지 않으니까 그나마 잘했다고 생각한 행동을 부각시키는 거다.  


A: 아니야. 바가지라고 말할 때 C한테 말을 전했지.


B: 아니야. 짜증 나게 하네라고 이야기를 했을 때 내가 짜증 나게 하네라고 했대라고 그 이야기를 한 거야. 그리고 그 이야기하자마자-


A: 아니야.


B: 왜 딴 사람이랑 이야기하냐고 해서 그다음부터는 이야기 안 했고.


아까 한 말과 같은 말이다. A가 언급한 주제와 연관이 없다.


A: 그러니까 바가지 이야기할 때 그랬던 건 맞고.


B: 그러니까 통화할 때 네가 그 이야기한 건 생각나. 그런데 그 이야기를 할 때 또 C랑 이야기하지는 않았어.


B는 자꾸 다른 말을 한다.

 

A: 또 이야기했다는 말이 아니야. 짜증 나게 하네 그게 아니야. 내가 화냈던 건 내가 기억을 못 했을 뿐이래 그 말을 전했다는 거지. 그러니까 바가지 이야기를 할 때 B가 C한테 이야기를 했다고.


주제가 다른 결로 흐를 때 명시적으로 못박아서 말해두는 게 좋다. 또 이야기했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라고 A는 짚었다.


A: 그렇게 말하면 내가 뭐가 돼? 학생이 왕따 시키는 것도 아니고. 날 앞에 두고 다른 사람한테 내 이야기를 한다는 시도 자체가 불순하게 느껴져. 전반적으로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하시는데 의도가 있다고 생각이 들어.


B: 어, 그래.


B가 순순하게 대답하는 건 어쩌면 A가 말한 말 중에 '불순하게 느껴진다' 혹은 '의도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에 몰입해서 일수도 있다. 희안하게 그는 말의 특정 언어에 지나치게 꽂히는 경향이 있었다. 상대가 그렇게 '느끼다' '생각하다'고 말하면 자신은 그렇지 않은데 상대가 '착각했다' 정도로 비약하는 듯했다. A의 의도와 무관하게 말이다. 대화 내내 B는 귀엽게도 그 말에 굉장히 집착했었다. 


A: 그리고 B가 나한테 '알아서 기어'라고 얘기했다는 것도 사실이야.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도 B는 거부했었다.


B: 어, 맞아. 나도 그거에 대해서 집에서 생각해 봤는데 그런데.. 하...(여전히 기억이 안나)


A: 그러니까 사실 제가 기억하는 부분에 대해서 B가 아무리 상황적 당위성을 이야기해도 저는 기억을 하니까 어떻게 하겠어. 내가 기억을 하는데. 내가 한 말을 B이 기억 못 한다고 하면 모르겠지만.


B: 알았어.


A: B가 한 말을 기억해서 전달했을 뿐이야.


B: 어, 그래.


나르시시스트의 말은 자꾸 바꾼다. 그때 우리가 가장 중점을 둬야 할 스탠스는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억지 주장에 찬성해주지 말라. 어차피 그는 맞는 말을 잘 하지도 않는다.


대화로 진실이 제대로 규명되는 게 가장 좋다. 하지만 문제는 상대가 그럴 마음이 없을 때다. 그러니 최선의 길은 나르시시스트를 이기는 거다.


이기려면 나르시시스트를 비판해야 한다. 그의 주장에서 오류를 찾아내 선명하게 설명하는 것이다. 나르시시스트의 사고체계는 조악하기에 논리적 결점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


솔직하지 못한 말은 허점이 많을 수밖에 없다. 진실한 말이 가장 합리적이고 자연스럽다. 


나르시시스트는 자기를 보호하려고 내밀한 마음을 편하게 발설하지 못한다.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타인에게 지적받는 걸 상당히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솔직하게 말하면 그는 어쩔 줄 몰라하며 마음을 꾸며낸다. 그래서 부자연스럽고 앞, 뒤가 안 맞는다. 우리가 대립할 때, 나르시시스트의 주장은 대부분 논거가 비논리적이다. 그래서 비판거리가 많다.   


소박한 탐정 놀이를 한다고 생각하자. 놀이의 부제는 '달걀의 껍데기를 벗기듯 나르시시스트의 실체를 실시간으로 도려내 전시하기'다. 생각보다 흥미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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