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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란다 고양이 Oct 27. 2023

10월 27일

행복이란 무엇일까

요 근래 기분이 좋지 않았다.

왜냐고 묻는다면 그저 모른다고 대답할 따름이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데 가장 최근 읽었던 소설이 마음에 흡족하지 않아서 그럴까.

중간고사가 모두 끝난 뒤 찾아오는 일중독자의 공허함 같은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유튜브에서 보았던 삶이 고통스러운 사람들의 이야기 때문일까.

아침부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무거운 몸을 들어 발을 끌며 한걸음 한걸음 움직여본다.


우울은 참으로 재미가 없다.

가끔 이렇게 우울함에 푹 젖어 가라앉을 때에는 내가 무엇에 즐거워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리 딸 일어났어?"

어머니가 건네는 평범한 아침 인사말에도 불쑥 어떤 마음이 치밀어 올라 대답을 가로막는다.

"응"

이 짧은 한 글자가 어찌도 이렇게 고통스럽게 튀어나오는지 모래를 한 움큼 집어먹는 것처럼 세상이 칼칼하게 느껴진다.

"점심에 짜파게티가 그렇게 먹고 싶더라고, 그래서 사 왔지. 감자랑 해서 끓여 먹자. 좋지?"

높고 빠르게 나열되는 단어들이 들린다. 타인의 해맑음이 나에게는 고통이 되는 순간이 얼마나 비참한지.

내 비참함을 들키고 싶지는 않았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딸 얼굴이 왜 이래. 왜 이렇게 부었어. 밤에 울었어?"

"아 부었어? 아니야 그런 거."

아마도 어머니는 바로 알아차리셨을 것이다. 내가 새벽까지 울다가 겨우 잠에 들었다는 것을.

라면을 사발로 먹고 잠이 들어도 얼굴이 붓는 일이 없는 나다. 26년 동거인인 어머니가 눈치를 채지 못하셨을 리 없다.

그래도 어머니는 더 이상 묻지 않으셨다. 이제는 어머니도 우울증 환자를 대하는 법을 터득하신 것이다.

적당히 맛있는 밥. 적당히 돌아가는 텔레비전. 동시에 돌아가는 핸드폰. 수저가 맞닿는 소리.

"맛있지? 짜왕이 몰랐는데 이거 엄청 비싸더라고. 이렇게 비싼 줄 알았으면 다른 거 사는 건데!"

어머니의 말들이 귓전을 스쳐 지나가지만 머리로 인식하지 못하고 튕겨 나간다. 기계적으로 끄덕이고 있노라면 어머니는 계속해서 말들을 쏟아내신다.

60대 중반인 어머니에게도 인생에 새롭고 즐거운 일들이 계속 생기는 것 같다. 그런 할머니가 될 때까지 살아있을 수 있을까 아주 조용히 생각해 본다.

아니 어쩌면 어머니에게 즐거운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우울한 딸을 위해 즐거운 일을 만들고 계실 수도 있겠다.

왠지 나이 먹은 딸이 불효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이런 생각은 해봤자 나의 우울이 나아지는 데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도 앉아서 밥을 먹는 것만 해도 장족의 발전이다. 이전에는 기분이 가라앉는 날이면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 굶는 것이 일상이었다.

약을 챙겨 먹고 있는 지금에는 입맛이 없어진다거나 굶어버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현대의학 만만세.


밥을 먹은 뒤 방 한쪽에 몸을 구겨 앉아본다.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생각하지 않는 일이 가장 어렵다. 


책을 꺼낸다. 밀려있던 책들을 해치우듯 밀어내고 경건한 마음으로 맞이하고 싶었던 책이다.

'하루 종일 울다가 자다가를 반복한 기분으로 펼치고 싶지는 않았는데'라는 별의미 없는 생각도 더해본다.

내가 SF를 좋아하는 이유는 지금의 세상과 아주 멀리 떨어진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SF소설이 현실과 닿아있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고개를 돌리고 싶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렉 이건'은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구세주와 같은 작가이다. 지금의 현실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불쾌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그려낼 수 있다는 것은 축복받은 재능이다.

문득 타인의 재능이 나에게 불쾌하게 느껴지는 것 또한 내 기분의 문제로 넘겨버릴 수 있을까 싶다.


그렉 이건의 <내가 행복한 이유> 중 표제작 '내가 행복한 이유'에는 수술을 통해 만들어진 행복을 느끼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언젠가는 포만감을 느끼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어느 한 가지를 지목해서 선호하는 식의 개적인 취향이 생겨나야 하지 않는가. 아직도 이런 상태라는 건 이상하지 않나? 이건 완전히 무차별적이잖아?’

그는 뇌종양 수술 이후 행복을 잃어버리지만 행복에 관여하는 호르몬을 인위적으로 생산해 주는 수술을 다시 받게 된다.

수술 이후에는 취향을 만들어내기 위한 훈련을 받게 되는데 어째서인지 주인공은 특정 자극에 더 기쁘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자극에 동일하게 행복을 쏟아내게 된다. 주인공은 마치 취향 없이 모든 것을 사랑하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그는 이것을 '무차별적 행복'이라고 이야기한다.

책을 읽으면서 무차별적 행복이라도 좋으니 저런 수술이 있다면 당장 받으러 가고 싶다는 욕구가 들었다.

만들어진 행복이면 뭐 어떤가. 나 또한 약으로 만들어진 행복을 매일 주입하고 있는 사람인데.

귀찮게 아침저녁으로 약을 챙겨 먹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고 느껴졌다.

진짜 행복과 가짜 행복, 그리고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이 과연 진실인지에 대한 논의는 철학을 거쳐 심리학과 인지과학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주요 관심에 있는 문제이다.

책에서도 주인공은 지금 자신이 느끼고 있는 행복이 과연 가치 있는 행복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뇌한다.


이에 대해 잘 다룬 고전 소설이 하나 있다. 바로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이다.

멋진 신세계 속 사람들은 모두 역할을 부여받은 채 태어나고 자신의 직업에 만족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행복과 안정감을 주는 마약인 '소마'가 지속적으로 공급된다.

부작용이 없는 마약이라니! 이 얼마나 놀라운가.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멋진 신세계 속의 세상을 동경한다.

기괴하고 어딘가 뒤틀려 있지만 구성원 주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없는 사회.

원칙적으로는 그곳을 멋지지 않은 세계라 칭해야 맞겠지만 정말 그런가? 부작용 없이 행복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행복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간다면, 그 누구도 서로에게 열등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이 바로 멋진 신세계가 아닌가.

나는 이 책을 너무도 사랑하여 아주 여러 번 탐독하여 읽었지만 여전히 무엇이 맞는지 정답을 내리지 못했다.


책장과 함께 시간도 지나간다. 책이 흥미로운 만큼 시간도 속절없이 지나간다.

무작정 지나가기만 하는 시간을 잡아두고 싶다면 일부러 재미없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무가치한 일을 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시간은 자신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않는 존재일까.


생각하지 않는 법을 잊어버린 나는 책장 사이사이에 이렇게 끝도 없이 펼쳐지는 생각의 페이지들을 함께 끼워 넣었다.

결국 흘러갈 시간이고, 흘러갈 감정이다. 괴로운 시간도 지나 보면 별 것 아닌 것이 되어있겠지.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게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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