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란다 고양이 Oct 20. 2023

10월 20일

가을이 너무도 완연하게 물든 날 수족냉증 인간은 이렇게 생각한다

올해의 여름을 마치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9월 중순이 넘도록 더위 속에서 허덕여야 했던 나는 오늘에야 비로소 가을의 한 중간을 거닐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발의 온도로 가을이 왔음을 체감했다. 극한의 수족냉증을 가지고 있는 나는 손발이 차가워지는 정도로 계절을 판단한다. 올해는 작년보다 조금 더 늦게 가을이 찾아왔다. 그리고 이 시기는 해마다 느려진다. 아침이면 발 근처의 공기가 차가워짐을 느끼며 잠에서 깬다. 마치 피가 흐르지 않는 것처럼 차가워진 발은 체온을 보호하기 위해 있는 이불을 오히려 차가운 냉골로 만들곤 한다. 아침에 가만히 누워있다 보면 마치 발 근처로 겨울바람이 부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방 한가운데에서 북유럽의 차가운 바람을 느낄 수 있다니! 이것은 수족냉증을 가진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우리들의 여행 방식이다.


좁은 방에서 벗어나 거실로 나오면 한기는 더욱 심해진다. 발이 시린 주제에 집 안에서 양말을 신는 것만은 피하고 싶어 한다. 그 대신 어디든 이불을 찾아서 그 속으로 발을 집어넣는다. 우리 집 거실에는 가을 겨울이 오면 수족냉증 인간들을 위한 이불이 자신의 자리를 찾아 나온다. 집안 어디서든 발이 시린 나와 엄마는 거실에서도 나란히 앉아 무릎에 이불을 덮고 발을 그 안으로 집어넣는다.

 "야 니 발이 더 차갑네 빨리 가서 양말 신어. 어휴 차가워라."

 "아이 귀찮아... 엄마 발이 차가워서 지금 내 발이 더 차가워지는 거라고."

 "나도 귀찮단 말이야. 젊은 네가 얼른 갔다 와."

 "엄마 딸이라 젊어도 기력이 없어."

우리는 옥신각신 하며 빨리 양말을 신으라며 서로 닦달을 한다. 그리고 아주 당연하게도 먼저 일어나는 사람은 없다. 양말 신으러 가는 데에 천리길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고작 거실에서 안방으로 들어가 간단하게 서랍을 뒤져 수면 양말을 꺼내면 되는 일인데 그 간단한 일마저 귀찮아지는 것을 보니 또 한 번 가을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양말이 비단 집에서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여름동안 즐겨 신었던 발목 양말과도 이별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왔다. 이제는 목이 짧은 양말을 신고 밖으로 나가면 공기와 한 겹의 장애물도 없이 맞닿는 나의 발목이 차가움에 괴로운 소리를 지른다. 몸 전체에서 차지하는 면적으로 보자면 별 볼 일 없는 정도를 차지하는 이 발목이 실상 체온을 앗아가는 힘은 얼마나 강력한지 발목이 시리면 온몸이 떨리는 기분이 든다. 

이렇게 며칠 동안 살 떨리는 추위를 경험하고 나면 그제야 목이 긴 양말을 신고 나오게 되는 것이다. 오늘이 바로 이 목 양말을 신고 나온 첫날이 되겠다. 이 양말이 없었다면 버스 정류장에서 불귀의 객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오늘 퇴근 후에는 집에 들어가서 현재 이용 가능한 방한 용품의 상태를 점검해 볼 요량이다.


이렇게 살아가는 가을이다. 

새삼 짧아지는 가을에 지구가 정말 위험한 것은 아닐까 하며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겨울은 금방 우리의 곁으로 찾아올 것이고 그러면 나는 또 한 번 차가운 손발을 부여잡고 살아가겠지. 수족냉증 인간인 나에게 가을은 겨울이라는 고통스러운 계절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순식간에 다가올 추위에 대비하는 딱 그 경계선의 시간, 그런 계절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그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