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살다 Apr 24. 2023

화장실에서 생긴 일

말도 안 되는 단편 소설

'어제저녁에 먹은 미나리? 콩나물?'


분명 뭔가 걸려있는 느낌이 들었다. 화장지를 평소보다 좀 넓게 접은 뒤 엄지와 검지로 잘 잡아 빼내고 나서 닦기로 했다.


물컹


미나리나 콩나물 치고는 꽤 부피가 있었다. 느낌이 몹시 좋지 않았지만 일단 뭔가가 걸려있는 것은 맞았다. 지렁이 젤리 같은 부피였는데 빼내서 변기에 떨어뜨리는 순간 꿈틀거림이 느껴졌다.


'으악'


사람이 너무 놀라면 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왜 사람은 자신의 항문을 보지 못하는 거야! 대상 없는 원망을 하며 다리 사이로 변기를 내려다보았다.


물기에 젖은 휴지 밑으로 베이지색 납작한 뭔가가 보였다. 양옆으로 대칭의 수많은 손 같은 것이 달려있었다. '그것'은 꿈틀거리며 휴지를 빠져나오려 하고 있었다.


'기생충인가? 잡아서 병원에 가져가봐야 하나?'

'어떻게 죽이지?'

'빨리 물 내려서 제발 안 보이게 해야 해!'

'나무젓가락으로 잡아?'

'휴지를 두껍게 뭉쳐서 눌러 잡아?'

'저게 뭔데!'

'기생충에 발 달린 것도 있었어?'


또 한 번의 깨달음. 사람은 짧은 시간에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답은 필요 없었다. 반사적으로 물을 내렸다. 병원이고 뭐고 일단 '저것'을 내보내고 싶었다. 물이 내려가는 동안 뒤처리를 하고 변기 안을 보다가 다시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그것'은 변기 안에 딱 달라붙어있었다. 내려오는 물이 멈추자 '그것'은 변기 위쪽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엄마야!"


"엄마도 옆에 계셔?"


'드디어 내가 미쳤구나. 이게 조현병인가? 헛것이 들린다.'


"물 내리지 말아 줘. 나 나가고 싶어."


변기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것'은 말을 할 줄 알았다!


"네가 말했어?"


"어. 니 뱃속에서 말을 많이 배웠지."


'그것'의 목소리는 뭔가 울림이 있었다. 내 배를 통해 들리는 소리를 흉내 내서 그런 것 같았다.


'저거 생각을 할 줄 아나 봐. 진짜 내 뱃속에 있었다고? 뱃속 어디? 저게 뭔데? 영상 찍어야 하나? 어디 올려도 되나?'


온갖 생각을 하는 동안 '그것'은 변기 위를 지나 화장실 바닥에 도달했다. 발 근처에 있다는 생각을 하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멈춰!"


'그것'은 움직임을 멈추었다. 반투명 베이지색 납작한 지렁이 같은 몸에 양옆으로 작은 손 같은 것이 빽빽하게 붙어있었다. 숨을 쉬는지 몸이 살짝 부풀었다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나... 숨.... 힘들어.... 물에.... 넣어줘."


'그것'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전혀 모르는 생물이지만 죽어가는 것을 그냥 보는 것은 불편했다. 화장지를 접어 살짝 잡아 변기물에 다시 넣었다. 몸이 크게 몇 번 부풀었다 원래 크기로 돌아갔다.


"고마워. 여긴 어디라도 네 몸속과는 다르구나. 불편해. 차갑고."


"넌 정체가 뭐냐?"


"넌 네가 생겨났을 때가 기억나?"


놀란 목소리였다. 하긴 어떤 생명체가 자신이 생겨났을 때를 알겠나.


"아니, 질문이 이상했네. 넌 내 뱃속에서 얼마쯤 살았어? 배에서 생긴 거야, 배로 들어온 거야?"


"잘 몰라. 처음 기억은 따뜻한 마사지와 맛있는 먹을 것. 네 노래를 듣고 따라 해본 것?"


"노래?"


'음치라서 노래방에 가도 박수만 치는데 무슨 노래?'라고 생각하는 사이 흥얼거림이 들렸다.


"내 거친 생각과~~"


아, 음이탈. 내 노래가 저렇게 들리는구나 한탄했다. 머리 감을 때 부르는 노래였다.


"네 몸속으로 다시 가야겠어. 여기는 몸이 따가워."


"뭐라고?"


"여긴 몸이 너무 아파."


'몸에 어떻게 들어가는데? 삼켜? 항문으로? 내가 눈 걸? 이걸 몸에 넣고 다니라고? 기생충을 먹은 학자가 있었다고 어디서 읽은 기억이...'

또다시 짧은 시간에 많은 생각을 하고, 그것은 몸을 비틀었다.


"아아! 아! 으! 네게 다시 넣어줘! 아악!"


'웩, 비위 상해. 진짜 삼켜야 하나? 안 죽이고 살균소독을 어떻게 하지? 밖에서 키우는 방법은 없나?'

고민을 하는 사이 그것의 움직임은 서서히 멈추었다.


"나도 생각을 해봐야지! 그냥 무작정 해달라는 대로 해줄 순 없잖아!"


당황한 나머지 소리를 쳤다. 그것은 미동도 없었다. 그렇게 빨리 죽을지 몰랐다. 내가 지적인 생명체를 죽였다는 죄책감보다 안도감이 앞섰다. 그것을 삼키거나 넣지 않아도 된다. 조사받거나 보고하지 않아도 된다. 미친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있다. 말만 않으면 돼.


변기 물을 내렸다. 그것은 빙글빙글빙글 몇 바퀴를 돌아 시야에서 사라졌다.


몇 개월 뒤 본가에 내려가 목욕을 하고 나오니 어머니께서 웃으며 말씀하셨다.


"너 이제 샤워하면서 노래 않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