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도심 동구
# 백제 1927(구 백제종합병원)
새해 첫 마을 여행을 부산시청으로 가기로 했지만, 어쩌다 가려고 하면 공휴일 또는 시청에 도착할 시간쯤이면 점심시간이 된 경우가 한두 차례, 핑계가 되었다. 그렇게 1월이 지나가고 굳이 얽매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첫 마을 여행을 1월 중순경 신평소공원으로 갔다가 공룡발자국화석과 청노을이 인상적이었다. 이어 2월 초, 부산의 원도심 동구에서 백 년의 시간에 머물기로 했다.
부산 여행의 시작점이자 끝점인 원도심 동구는 항구와 철도 중심으로 발전해 온 도시로 변화를 거듭하면서 오랜 역사와 문화가 깃든 명소가 되었다. 그곳에 백 년 시간의 가치를 찾아 백제 1927로 갔다.
일요일 오전 8시 30분, 해운대 신시가지에서 1003번 직행버스를 타고 부산역에서 내렸다. 4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찾아가는 길은 부산역 7번 출구 근처 CU 편의점 골목으로 올라가면 영동밀면 영동 국밥을 지나 허름한 붉은 벽돌 4층 건물이다. 부산 사람이라면 거의 다 아는 건물이지만, 언제부턴가 타지에서 여행자들의 발길이 잦은 장소가 되었다.
가는 길에 텍사스 거리와 차이나타운 거리를 거닐면서 동구의 오래된 맛집 '신원'과 '홍성방'을 눈여겨봤다. 중국 여행을 온 것처럼 온통 빨간 거리다. 가로등에 매달린 용 그림이 눈에 띄었다. 환전소와 복권방도 흔히 볼 수 있다. 화교학교 담벼락 타일에 삼국지에 나오는 위인들의 그림을 그려 넣은 삼국지 거리를 걸어서 백제 1927에 도착했다.
100년의 세월이 켜켜이 쌓인 공간에 사람과 이야기를 품고 재탄생한 백제 1927 문화공간
1927년에 붉은 벽돌 건물로 지어진 부산 최초의 민간인 종합병원 건물로 옛 모습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근대건축물의 기술적인 특성들이 그대로 남아 충분한 가치를 인증받아 국가등록문화재 647호로 지정되었다.
구 백제병원은 민간인 종합병원이다. 1932년 병원이 문을 닫고 봉래각으로, 1942년에는 일본 아카즈키 부대의 장교 숙소로, 해방 후에는 부산치안사령부와 중화민국 임시 대사관으로, 1953년에는 신세계 예식장 등 다양한 용도로 변경되어 사용되다가 1972년 화재로 건물의 5층은 철거하였으며, 현재는 4층 건물의 일반 상가로 사용 중이다.
지금까지 근대식 건물의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어 근대건축의 공간 구성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건축물로
입구에 녹슬고 낡은 철문이 양쪽으로 열려있고, 문짝 틀이나 벽돌에 불탄 흔적들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현재 1층은 브라운핸즈백제 레트로 감성 카페가 여행자들에게 매력적인 공간으로 널리 알려졌다. 2층은 창비부산이 출판사 겸 서점으로 작가와 시민들을 연결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3, 4층은 사무실과 입주작가들의 공간으로 활용되고, 시민들에게는 1층, 2층만 개방된다.
1층에서 4층까지 둘러보고 우선 2층 창비부산으로 들어갔다. 창비부산의 연대기를 읽어보고 큐레이션 된 책장에 눈길을 두고 찾아낸 책 '도시는 왜 역사를 보존하는가?' 책 한 권을 골랐다. 개발과 보존, 그리고 복원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주저 없이 첫머리만 읽고 샀다. 어쩌면 책 속에 해답을 찾을 수 있는지도 모른다는 예감이다.
부산에 42년 동안 살아왔지만, 처음으로 수정동과 초량동의 좁은 골목길을 오래 걸었다. 듣도 보도 못한 것들의 향연이 펼쳐진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바라보게 된다. 과거는 기억 속에 존재할 뿐, 과거의 기록이 역사가 된 오늘 우리는 그 장소들을 경험하고 다가올 미래를 짐작케 한다. 현재 우리는 무엇을 보존하고 복원하고 개발해야 하는가를 많이 고민해야 한다.
역사는 알아갈수록 깊이가 더해지는 지극히 보수적인 면면을 들여다볼 때가 있다. 과거의 기억이나 기록에 빗대어 그 속에 오늘의 경험을 더해 나아가는 우리 일상이 먼 미래에 역사의 한 조각이 되지 않을까. 원도심 동구 또한 오래된 건물 백제 1927의 백 년 시간의 흐름에 오늘의 경험을 덧칠하면서 먼 미래의 시간으로 나아간다.
백 년 시간의 가치를 찾아 나선 동구 마을 여행에서 백제 1927을 통해 물리적인 장소가 시간과 사람이 의미가 되어 역사가 된다는 사실과 역사와 이야기를 품은 공간이 흔들리지 않는 정체성을 지켜나간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부산에 오래된 시간을 켜켜이 쌓아 정체성을 지켜나가는 공간 백제 1927에서 백 년 시간의 흐름에 오늘을 덧칠했다.
# 문화공감수정 (구 정란각)
꽃샘바람이 코끝을 스치는 날 일본식 가옥이 있는 부산 동구 문화감수정으로 가는 좁은 골목에 허물어질 듯한 건물 사이로 걸어갔다.
항구도시 부산의 기억을 품고 현대로 잇는 문화유산 국민신탁, 문화공감수정
문화유산국민신탁은 2006년 4월에 제정된 <문화유산과 자연환경자산에 관한 신탁법>에 근거하여 2007년 4월 문화재청 산하 특수법인으로 설립된 문화공감수정은 문화유산국민신탁이 2011년부터 관리를 맡아 2016년 재개관한 근대 건축물로 일제 강점기 근대 주택 건축사와 생활사 연구에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평가받은 공간으로 현재는 지역민과 방문객을 위한 문화사랑방으로서 ‘문화공감수정’이라는 이름으로 개방되고 있다.
문화공감수정은 1939년 일본식 가옥 건립, 일본식 목조 2층의 기와지붕 건물이며. 일본 무사 계급의 전형적인 주거 양식인 ‘쇼인즈쿠리’라는 건축 양식을 나타낸다. 1943년 현 일본식 가옥 신축, 목조 2층의 기와지붕 건물로 부산 동구 홍곡로 75에 자리한 일본식 고급 주택으로 건축학적으로 매우 가치가 높은 목조가옥으로 인정받아 2007년 7월, 국가등록문화재 제330호로 지정되었다.
문화공감수정은 수정동에 남겨진 일본식 가옥으로 내부공간과 목조가구, 정원이 잘 보존되어 있는 근대건축의 일본식 전통 생활공간과 서양식 접대 공간이 섞여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 구 정란각은 지금은 문화공감수정으로 불린다. 건물 속으로 들어가면 다다미방과 긴 마루가 인상적이다. 미닫이문과 유리창살 등 일본 가옥의 특성을 드러낸다. 겨울이라 황량하지만 잔디마당과 정원이 잘 가꿔져 있다. 대문에 들어서면 양쪽으로 금목서와 은목서가 관람객을 반긴다.
역사와 문화를 기억하는 공간 문화공감수정은 맞배지붕 대문 3칸 몸채 1동이 남쪽으로 향하고 있고 건물 오른쪽은 붉은 벽돌로 지어졌다.
문화공감수정은 지난해 10월 전국 ‘지역문화매력 100선’에 선정되었으며, 아이유 밤편지 뮤직비디어 촬영지로 관광객들이 모여드는 명소로 널리 알려졌다. 이 공간은 전시공간 및 생생문화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지역연계 체험 및 프로그램을 협력 운영하고 있다.
관람 시간 은 평일 · 주말 오전 10시 ~ 오후 5시(휴관일 제외)
휴관일: 매주 월요일, 명절 당일 휴관
열린 공간 작은 도서관을 운영((작은 도서관 이용은 신분증 제출 및 도서대장 작성 후 무료관람 가능하다)
(출처: 내용의 상당 부분은 문화공감수정 리플릿)
아픈 역사의 공간에 문화가 속닥거리는 치유의 공간으로 거듭나는 문화공감수정에 금목서의 향기가 가득한 가을날 다시 방문하고 싶다.
# 오초량(부산 초량동 일본식 가옥)
동구 백 년의 시간 여행 첫날 갔을 때는 화요일이라 휴관일이었고. 두 번째 가는 날은 국제커피박물관에 갔다가 예약을 하지 않고 갔더니 대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주변이 어수선한 걸 보니 공사 중인 것 같았다.
오초량은 다음에 다시 오기로 하고 대나무 담장에 둘러싸여 있는 녹슨 대문 앞에서 돌아섰다.
오초량은 2007년 9월 21일, 정원과 공간 구성이 건축물의 가치를 인증받아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349호로 지정되었다.
최성우(일맥문화재단 이사장)는 오초량은 초량이라는 풀밭의 길목이라는 지명 앞에 '오!'라는 감탄사를 붙여 '오초량'이라고 부른다고 밝혔다.
오초량은 1925년 당시에 오카야마현 출신의 히데요시라는 일본의 토목업자가 경부선 철도 토목공사를 하면서 한국에 들어와 지었던 자택이다. 1925년부터 1945년까지 20년 동안 일본 사람들이 살았고, 1945년부터 2023년까지는 한국 사람들이 거주하면서 취향과 기능에 따라 많이 바뀌었으나, 지금까지 한옥 건물의 특성과 일본식 가옥의 절충된 건물 양식으로 초량동에 백 년 된 목조가옥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오초량 내부를 들여다보지 못해 아쉽지만, 봄날에 다시 오초량을 찾아 부산의 아름다운 기억의 공간 오초량에서 과거의 흔적을 살펴보고 싶다.
원도심 동구, 백 년의 시간 여행을 하면서 오래된 건물에서 부산의 역사와 정체성을 어렴풋이 넘보고 '도시는 왜 역사를 보존하는가'와 맥이 와닿지 않을까 싶다. 원도심 동구, 백 년의 시간여행은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오래된 미래'가 잡힐 듯한 보람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