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의 유통기한
추웠나. 그건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긴장이 풀리면서 온몸에 열이 올랐다. 소각장을 찾느라 두리번거리며 운동장을 가로질렀다. 바리바리 싸온 교과서와 참고서들을 소각장에 후드득 털어버리고 홀가분하게 학교를 빠져나왔다.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던 동생과 피자를 먹으러 갔다. 한 손에는 피자를 들고, 눈은 정신없이 답을 맞췄다. 나쁘지 않은 성적. 그때 마침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고3 시절 내내 붙어 다니던 단짝이었다. 수화기 너머로 친구 목소리가 들리자 볼멘소리로 '우리 수고했다, 고생했다' 하며 서로를 토닥였다. 그런데 이 친구가 내 점수를 들은 뒤로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당황스러운 침묵에 '여보세요?'하고 몇 번 불렀다. 그때 이 아이가 했던 말.
"야, 너는 나보다 돈도 없으면서 왜 수능을 잘 쳤어?"
댕-하고 울리는 그 말은 친구의 본심이었다. 친구였던 아이는 더 이상 숨길 이유가 없다는 듯, 날이 선 말들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내가 다닌 학원이 몇 개고, 과외를 얼마나 받았는데 이건 너무 불공평하지 않냐. 네가 인강이나 들을 때 내가 쓴 돈이 얼만데'. 지금 같으면 '네 머리가 얼마나 나쁘면 그 돈을 쓰고 수능을 나보다 못 쳤냐'하고 전화를 끊었을 거다. 하지만 순간 날아들어온 칼날 같은 말들, 머리를 꽝하고 내리치는 도끼 같은 생각들에 전화기를 들고 뚝뚝 눈물만 흘렸다. 배신감에 더듬더듬 바보같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하냐고 대꾸했다. 맞은편에 앉은 동생이 '그냥 끊어라!'하고 벙긋거렸다. 전화를 어떻게 끊었는지 모르겠다. 하필 먹고 있는 피자가게는, 난생처음 용돈을 벌려고 아르바이트했던 곳이었다. 기특하고 대단하게 생각하던 일인데 순식간에 비참한 공간이 되어버렸다. 고3 생활하는 동안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지 배신감이 몰려왔다. 그 친구의 어머니가 전화가 와서 나름대로 나를 달랬다. '그릇이 큰 사람은 모두 이해해야 한다, 이네야.' 딸이 실언을 했다는 걸 알긴 아셨나. 나는 답답이처럼 '... 네' 하고 대답했다.
그 친구와 대학을 와서도 종종 연락을 했었다. 그릇이 큰 사람이고 싶어서. 하지만 또 비슷한 상황이 반복됐다. 아무리 봐도 문제의 원인은 나를 대하는 이 아이의 태도여서, 더 이상 이해해 줄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다. 무슨 짓을 해도 다 이해하고 참아주는 건 그릇이 큰 인간이 아니라 그냥 커다란 호구다. 인간관계에는 유통기한이 있는데, 독이 되는 사람인 걸 알았을 때 끊어내지 못하니 내 속만 상했다. 마지막으로 통화를 했을 때 그녀는 일하느라 가정을 돌보지 않는 아버지가 밉다고 했다. 그렇게 일을 할 거면 대구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에 살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며 분통을 터트렸었다. 저런 생각을 하고 사는 네 속도 어지간히 텅 비었겠구나 싶었다. 그녀는 저 속을 채우고 살고 있을는지. 아니어도 어쩔 수는 없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