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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네 Aug 09. 2022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현미경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를 읽고

<작아서 쉬워 보이는 것들, 지극히 개인적인 시선>

Jacqueline in a Straw Hat

눈과 코와 입이 여기저기 붙어있어 마치 어린아이가 그린 것 같은 피카소의 작품들. 선 하나로 뚝딱 강아지를 그려 내기도 하고 슥슥 3초 만에 그렸을 것 같은 인물 드로잉들도 많다. 이 삐뚤삐뚤한 피카소의 그림을 보면서 어떤 사람들은 ‘야 저건 나도 그리겠다’하고 말하기도 한다. 미술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로 본다면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언젠가의 나도 그 비슷한 말을 했던 것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하지만 어린 시절 피카소의 작품들은 우리가 흔히 아는 그림과는 전혀 다르다. 그는 우리나라 나이로 초등학교도 입학하기 전부터 대상을 놀랍도록 깊이 관찰한  세세히 묘사했다.  실력은 이미 성인 화가 못지않았다고. 하지만 우리는 피카소를 그런 이유로 기억하지 않는다. 절친한 친구의 죽음과 첫사랑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으로 만들어진 피카소의 시선이 작품에 어떻게 표현되었는가'(두리뭉실한 표현이지만) 그의 작품에 가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창작자는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이야기할 것인가.’하는 질문은 굉장히 거창하고 동시에 지극히 개인적이기도 하다. , 이야기, 그림,  모든 창작물은 굉장히  세계의 조각을 창작자의 시선을 통해 들여다보는 일과 같기 때문이다. 창작물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그것을 만든 이의 시선이 흥미롭다는 말이기도 하다.


<물음표를 만드는 >

일본 영화를 딱히 좋아하지 않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좋아한다. 한국으로 수입되는 일본 영화의 대부분이 고레에다의 것이라고 하는 걸 보면 아마도 나만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이다. 일본 영화라고 하면 너무 평범하고 별거 없는 이야기라 지루하다는(때로는 도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지 알 수없어 혼란하다는) 감상이 대부분이었다. 소소한 주제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특유의 일본 감성이 왠지 오버스럽게 다가와서 거북하기도 했다. 고레에다의 영화도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그가 표현하는 평범함은 어딘가 특별한 구석이 있다.


그 특별함이란 관객과 함께 객석에 앉아 영화 속 인물들을 관찰하는 듯 한 감독의 시선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어디에 현미경을 조준할지를 고민할 뿐, 콕 집어서 무엇을 보라고 말하지 않는다. 세계의 한 꼭지를 잡고 요리조리 사람들을 관찰하는 영화의 시선 끝에는 항상 크고 무거운 물음표가 찍혀있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다 같이 이 세상에 분노합시다!' 하며 목소리를 높이기보다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인간은 그저 살아가기 위한 선택을 할 뿐입니다. 만약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고 싶나요?'라며 친절하게 (그러나 묵직하게) 물어보는 것 같다.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라는 책 제목은 고레에다의 다짐이자 작품의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한 등대라고 생각한다. 커다란 세상 속에서 발견한 부조리와 부도덕함, 그로 인한 차가운 분노를 작은 인간들을 통해 이야기하겠다는 다짐. 고레에다가 책에서 이야기했듯, 창작자의 관점은 '자기감정의 배설' 혹은 '자기표현이라는 모놀로그'가 아닌 '커뮤니케이션의 확산'을 목표로 가다듬어진 성숙한 물음표일 때 가치와 무게를 더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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