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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진 Mar 18. 2024

대전부르스

그 빵이랑 야구 말고 다른 것도!


대전 아니고 인천에서


류현진이 한화이글스에 복귀했다. 한화 팬들은 몇 년간이나 바랐던 소망을 드디어 이뤘다. 18년도에 반짝 3등을 한 기록을 제외하고, 한화는 아직도 늘 꼴찌 싸움을 한다. 우리 아빠는 젊었을 적 한화이글스의 팬이었다. 어린 우리들의 손을 잡고 야구 응원석에 데려가기도 했다. 한밭구장엘 가면 한화가 공격하는 매회 말에는 내 키 두 배는 되는 주황색 어른들이 일어나서 소리도 지르고 노래도 부르고 심지어는 율동도 하는 게 신기했다. 멋모르고 이끌려갔던 야구장에 이제는 스스로 출석 도장을 찍는다. 매번 하위권에서 놀고 있는 한화를 아직도 놓지 못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문득 대전이 그리울 때가 있어서다. 고향을 ‘태어난 곳’으로 할지, ‘성장기를 보낸 곳’으로 할 지에는 의견이 분분히 갈리지만 내 고향은 태어난 곳인 대전뿐이다. 따지고 보면 가장 오래 살았던 곳은 경기도 고양시이지만 대전만큼의 포근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얼마 전엔 아빠를 보러 대전엘 내려갔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신 시골에 가려고 대전을 거치거나, 셀프 휴가를 핑계로 대전에 놀러 가기도 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기차인 Itx-새마을호를 타면 잠깐 쉬는 동안 안전하게 날 대전에 데려다준다. KTX를 타고 대전으로 가면 너무 금방 기차에서 내려야 해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기차를 타고 있는 상태, 그것도 여행과 쉼의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창 밖으로 햇살이 따갑게 쏟아지는 바람에 기찻길 풍경을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대전 가는 길에 보이는 산과 들 그리고 나무와 꽃은 언제 만나도 새로운 풍경이다.


마킹이 벌써 인터넷 품절되어 직접 구장에 갔다.


짧은 낮잠에서 깨면 광장에 모여있는 비둘기가 제일 먼저 날 반긴다. 대전역에서 나오면 아스팔트의 넓은 광장이 나를 압도하는 느낌이었데, 어느샌가부터 무슨 구조물이 많이 생겨나서 예전보다는 좀 비좁은 느낌이 든다. 전부터 대전역의 만남의 장소 역할을 하던 빨간 대한통운 건물 1층엔 분명히 큰 한복집이 있었던 것 같은데, 엊그제 가보니 드럭스토어로 바뀌어있었다. 까만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지켜보았던 가채 쓴 마네킹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곱게 한복 차려입은 하얀 마네킹은 어디로 갔을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모습이 변화한 것이겠지만 뭔가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택시 승강장을 지나가는 길에 보이던 나물이나 잡곡을 파는 상인의 정겨운 모습도 이제는 찾아보기 어렵다. 전에 대전에 섰던 오일장이 아직 기억에 생생하다. 엄마 손을 잡고 아파트 뒤쪽으로 조금만 걸어 나가면 좁은 골목에 빼곡히 길게도 늘어선 가게들이 있었다. 오일장 초입에는 채소랑 나물을 파는 가게가, 중간에는 오백 원 하던 핫도그 집이, 마지막 즈음엔 수세미나 장난감 같은 걸 파는 가게도 있었다. 플라스틱 바구니에서 검은 봉지로 갑자기 옮겨가게 된 양파랑 감자를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설탕 잔뜩 묻힌 핫도그를 들고 집에 가는 게 그렇게 좋았는데. 이제는 그냥 손가락만 까딱하는 걸로도 야채도 핫도그도 장난감도 몇 십 분이면 현관문 앞에 있게 되니, 과연 좋은 세상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



강렬한 오렌지빛 건물이 대전역 대한통운 그 곳.


대전은, 분명히 말하건대 커피가 맛있는 곳이다. 빵은 이미 너무 유명하니 제외하고 그 다음으로 커피를 꼽는 이유는 대전역 근처에 다양하게 자리한 개인카페 때문이다. 대전역사 외부에서는 프랜차이즈 카페가 영 힘을 쓰지 못한다. 역 뒤편인 소제동에 제대로 커피를 하는 집들이 있고, 역 앞에도 지점을 두 개나 갖고 있는 카페가 당당히 1층에 자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점이 두 개면 평균 이상이겠거니 했던 가게에서 왠지 주력메뉴인 것 같은 콜드브루를 시켜 자리에 앉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깔끔하고 깨끗한 맛이었다. 아마 커피 맛뿐만이 아니라 수도권보다는 좀 한적한 대전의 분위기가 더 마음에 들었을지 모른다. 커피를 마시다 보니 전에 살던 동네 뒷산을 오르는 길 입구에서 마셨던 자판기표 따뜻한 코코아가 그리워진다. 생각해 보니 코코아도 진짜 맛있었는데. 올해 시간이 나면 대전에서 카페투어를 해 봐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대전에 먹을게 없다고? 아니다. 역 근처 번화가인 은행동 거리에 유명한 돈까스집이 있다. 매번 외식을 하던 날에 찾아갔던 곳인데 식전에 크림 스프를 내어준다. 후추를 적당히 뿌려서 스프를 다 비우고 나면 곧 옛날식 경양식 돈까스가 나온다. 치즈돈까스도 있고 그냥 돈까스도, 함박스테이크도 있으니 기분에 따라 원하는 메뉴를 고를 수도 있었다. 자리도 전부 칸막이로 나뉘어 있어 오붓하게 외식하기 정말 좋은 곳이다. 후식으로 차나 음료수까지 주는 완벽한 식당이다. 밀가루의 도시답게 국수 요리도 대전의 자랑이다. 아주 저렴한 가격에 칼국수를 파는 노포가 여럿 있다. 대전에 내려간 김에 아빠의 선택으로 들깨칼국수와 수육을 먹었다. 그냥 칼국수가 아쉽다면 면이 초록빛인 부추칼국수를 먹어보는 것도 추천한다. 대전의 명물이다.


커피를 오마카세처럼 계속 내어주는 소제동 카페에서


이동을 위해 올라탄 시내버스 앞자리에선 오랜만에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를 듣는다. 억양이 다른 사투리에 비해 세지 않을 뿐, 충청도말도 표준어와 비교하면 확연히 구별되는 재미있는 리듬을 가지고 있다. 미디어에서 재미있으라고 강조하는 충청도 사투리인 ‘~유’ 체와 느린 말투는 지역에 따라 쓰지 않는 곳도 있다. 우리 외가랑 친가가 그랬다. 대신 ‘그려, 기여, 혀‘처럼 어미에 ㅕ를 붙이는 말투는 아직까지도 많이 사용한다. 대전에서도 사투리를 자주 쓰지는 않았지만 부모님과 얘기하거나 통화할 땐 사투리 억양이 조금 묻어 나오는 것 같다. 듣지도 못하고 쓰지도 않으니 잊어버릴까 그게 걱정이다.


일자리만 있다면 대전에 살고 싶었다. 일자리가 인천으로 고정되는 우리 회사가 아니라 다른 곳에 들어가 여러 도시를 돌면서 근무를 하게 된다면 청주공항으로 보내달라고 말해 볼 셈이었다. 청주에는 야구팀 2군 구장도 있는 데다가 나름 충청도의 주류 도시이니 살기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아주 어렵게 되었으니 아쉬운 일이다. 요즘은 너무 복잡하고 사람이 많은 수도권을 떠나고 싶을 때가 많다. 주말에 근처 쇼핑몰이라도 가게 되면 미어터지는 주차장, 맛이 별로인 식당에 늘어지게 서는 줄, 커피라도 마실까 치면 빈 곳이 없는 카페 테이블 같은 걸 보며 갑갑할 때가 있다. 요즘 사람들은 평일에 서울에서 일하고 주말엔 지방에서 지내기도 한다던데 그게 왜인지 십분 공감된다.


수도권을 제외한 곳은 일자리가 없으니 계속 젊은 인구가 줄고, 일할 사람이 없으니 도시 경쟁력이 낮아지는 악순환의 반복이 계속된다. 수도권 빼고는 전부 다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지방 도시의 소식을 들으면 괜히 마음이 아프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지방에서 태어난 청년 구직자의 대부분이 일자리 문제로 정든 고향을 떠난다고 한다. 나처럼 어릴 때의 고향에 대한 추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환경’이 젊은 사람들을 수도권으로만 밀어내는 것 같아서 슬프다. 지금 다니는 직장을 포기하면 어디로든지 갈 수 있으면서, 또 환경 탓을 하며 비겁해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소심하게도 은퇴 후에나마 대전 근처에서 살아볼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만다. 이상하게 자꾸 대전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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