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잎부터 예민했던 나의 네 살 그 언저리
엄마, 어떡해! 걸레가 죽었어...!
아니, 거실에 가서 걸레를 좀 가져와달라 했더니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잔뜩 헝클어진 머리에 캐릭터 내복 차림이었을 게 분명한 그날의 나는 울먹이며 헐레벌떡 안방으로 뛰쳐 들어와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도대체 뭘 보고 이러나 싶어 거실로 쫒아나온 엄마를 기다리고 있던 건, 한참을 방치해 둔 데다 뜨뜻한 보일러가 하루종일 돌아간 탓에 바짝 마른, 샤페이의 등허리처럼 쪼글쪼글해진 '마른걸레'였다.
그게 그렇게 슬프고 무서웠단다. 네 살 무렵의 나에게 걸레는 항상 촉촉하고 생기 있는 대상이었어야 했으니깐.
내 기억에는 없고 엄마 기억 속에만 남아있는 이런 경험들. 가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응, 역시 나 좀 유난이었던 듯.'
어느 봄, 엄마와 교토를 여행하던 중 기요미즈데라를 둘러보고 한 걸음 한 걸음 산책하듯 내려오던 길이었다.
엄마가 문득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너는 어려서도 '와앙-'하고 크게 울어재끼지 않았어. 큰 소리 나지 않게 꾹꾹 누르면서 울었지.
어린 게 도대체 뭘 그리 참으면서 우는지 내가 보면서도 궁금했다니깐."
이건 또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순간 그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 것도 아니면서 괜스레 억울하고 서러운 마음이 앞다퉈 밀려왔다. 상황이 무엇이었건 나는 왜 맘 놓아 엉엉 울지 않았을까. 그 어린 나이에 뭘 안다고, 뭐가 그렇게 마음에 걸린다고 펑펑 울지 못했을까.
아이 성격 검사, 기질 검사부터 심리 검사에 이르기까지 요즘은 교육에 관심이 많은 부모라면 우리 아이도 꼭 한 번쯤 해봐야 할 것만 같은 검사들이 꽤나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30여 년 전에는 그런 검사들이 보편적이지도 않았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 엄마는 그런 일련의 검증 과정을 거칠 필요조차 없었다. 매일매일의 일상 속에서 나에 대해 차고 넘치는 힌트를 얻을 수 있었으니깐.
초등학교 4학년쯤이던가? 여느 날과 같이 'ㅛ'자 모양으로 2인 책상 3개가 한 조로 합체되어 둘러앉은 우리에게 조별 과제가 주어졌다. 특정 주제에 대해 6명의 조원이 조사해 온 내용을 다 같이 새하얀 전지에 알록달록하게 담아내는 것.
전지의 규격은 '93.9 x 63.6cm'다. 무려 A4 용지 16장을 펼쳐놓은 너비이니 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에게 이 어찌나 광활한 벌판인가. 그 벌판을 고사리 손으로 채워 넣기 시작한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예상했던 일이 벌어졌다. 하나둘 이탈자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역시나 10살 꼬맹이들의 집중력은 그리 멀리 가지 못했다.
선생님은 수업 시간 안에 다 끝내지 못한 조는 방과 후 한 친구의 집에 다 같이 모여 마무리해오라는 숙제를 주셨다.
"우리 그럼 누구네 집에 모여서 할까?"
"나는 안되는데, 피아노 학원 가야 돼."
"나도 안돼, 지훈이네 놀러 가기로 했단 말이야."
그렇다. 그 나이대 아이들에게 '책임감' 또는 '성실함'은 딱 교실 안에서나 강력하게 터지는 와이파이 신호와 같았다. 교실을 벗어나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흐려지고 잊히는 그런 신호. 근데 그 미비한 신호가 용케도 나에게는 찰싹 붙어 우리 집까지 따라왔다.
결국 그날 나는 모두에게 내팽개쳐진 색연필, 사인펜 세트를 책가방에 꾸역꾸역 넣고, 전지를 돌돌 말아 옆구리에 낀 채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을 먹자마자 재료를 방바닥에 촤악- 펼쳐놓고는 혼자 한 줄 한 줄 채워가기 시작했다. 밤 9시, 10시, 그리고 11시가 다 되었는데도 방 밖을 나오지 않은 채 바닥이 뚫려라 그리고 칠하던 내 모습을 보며 엄마는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그렇게 한 살 두 살 커가고 더 많은 에피소드들이 퍼즐처럼 맞춰지며 나의 타고난 기질이 빼꼼 얼굴을 내비쳤다.
내 안에는 기쁨이, 슬픔이, 버럭이도 있지만 그 누구보다 존재감이 큰 '예민이'가 있었던 거다.
'안녕, 나야.' (하...)